: 작 안톤 체홉
희곡 「청혼」 - 안톤 체홉 작
러닝타임 15-20분
배우 총 3명 (여 1명, 남 2명)
10페이지 남짓의 짧은 단막희곡이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도 한데, 내가 처음으로 보게된 안톤 체홉의 작품이기도 하다. 극의 구조도 대단히 고전스럽고, 간단깔끔하면서도 재밌다. 다만 시사하는 바는 단순하면서도 씁쓸하다. 내용을 확인해보자.
로모프는 나딸리아에게 청혼을 하러간다. 츄브꼬프 가와 로모프 가는 매우 친밀한 사이인 듯하다. 갑작스러운 청혼 소식임에도 그녀의 아버지 츄브꼬프는 굉장히 기뻐하면서도 나딸리아를 불러온다. 다만 그녀를 기다리는 로모프의 상태가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무언가 지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를 츄브꼬프 가는 잘 알지는 못하는 것 같다.
나딸리아와 로모프가 얘기를 나누다가, 소심한 로모프가 횡설수설하며 청혼을 시도하려던 상황에 부지 얘기로 갈등이 생긴다. 츄브꼬프 가의 자작나무 숲 토지와 늪 사이에 있는 목초지가 누구 명의의 토지냐로 다투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의 것이냐로 점점 크게 다투다가, 츄브꼬프가 와서 싸움을 말린다. 하지만 말다툼은 끝나지 않는다. 츄브꼬프 역시 그 땅이 본인 집안의 것이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점점 갈등이 커지더니, 지병을 앓고있는 로모프가 상태가 안 좋아지면서 집을 나간다. 이를 향해서 계속해서 두 사람은 계속해서 비난을 퍼붓는다.
로모프가 나가고 아버지와 그의 비열함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도중에서야 나딸리아는 그가 청혼을 하러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에 그녀는 매우 당황하고 다시 불러오라고 츄브꼬프에게 어서 데려오라고 소리친다.
나한테요? 청혼을요? 아이구머니! 사람을 데리고 와요! 데리고 와요! 아이구! 데리고 와요!
딸의 히스테리에 하는 수 없이 로모프를 데려오고는 츄브꼬프는 지쳐서 방으로 들어가고, 나딸리아는 어지러워하는 로모프에게 사과하고 인정한다. 화제를 돌리려고 하다가 최근에 한 사냥에 대한 내용으로 이야기의 방향을 잡는다.
하지만 여기서도 갈등을 피하지는 못한다. 옷까따이가 우가다이의 비교로 이번엔 로모프가 발끈한 것이다. 로모프는 옷까따이가 아랫턱이 짧아 사냥에 유리하지 않다고 조롱한다. 이에 참고있던 나딸리아가 폭발하여 사그라들려고 했던 갈등이 터져버리고 만다.
츄브꼬프가 다시 들어와서 답답해하며 왜 이런 것으로 싸우냐고 지쳐하지만, 다시금 옷까따이만한 개는 없다면서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 이에 서로가 서로에게 무자비한 욕설을 퍼붓다가 결국 계속해서 몸 상태가 안 좋아지던 로모프가 기절하고 만다.
기절한 로모프를 보고도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다가 정말로 기절한 것을 깨닫고 나딸리아가 다시 히스테릭 해진다. 나딸리아는 숨을 쉬지 않는 그를 보고 죽었다고 생각하고, 이에 츄브꼬프 또한 죽었다고 생각하여 크게 절망한다. 자신도 죽어버릴 것이라며 우울해하던 그 때, 기절했던 로모프가 깨어난다.
지긋지긋한 상황이 싫었던 츄브꼬프와 나딸리아는 바로 결혼을 승낙하고, 로모프는 어지러워하면서도 결혼을 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너무 어지러웠던 사건이 끝나고 츄브꼬프는 샴페인을 외치지만, 나딸리아는 인정할건 인정하라며 욧까따이가 낫다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하고 다시 싸우며 막이 내린다.
극의 기승전결이 매우 깔끔하다. 로모프가 찾아와서 청혼을 하고, 이에 토지 이야기로 갈등을 빚다가 사냥개 이야기로 피크를 찍고 결국 로모프의 기절로 로모프는 결혼에 성공한다. 고전 양식의 코미디이지만, 특정 유행을 타는 유머로 웃음을 만든다기 보다 상황적인 요소와 서로의 갈등으로 웃음을 자아낸다는 점에서 지금에 와서도 재미없지 않다. 유명한 고전 작품의 특징이 현대 상황으로 빗대어도 충분히 세련되다는 점인 것 같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무대 구성이 매우 단순할 것 같다. 장소의 이동도 없고, 장면 구조도 명확하게 7장이라고 희곡에 표현되어 있다. 장면 구분을 생각해볼 필요가 없고, 인물의 행동도 잘 묘사되어 있고 행동의 유기성도 생각하기 쉬운 것 같다. 내용이 단순해서 인지 그런지도 모르겠다. 무대나 조명, 음향보다는 배우가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포커스가 더 맞춰질 것 같다. 가령 방백을 어떤 식으로 처리할 것인가, 혹은 자칫하면 진지해 보일수 있는 부분에서 연기를 어떻게 하면 전체적인 흐름에 녹여서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등의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승낙했다구! 알겠어? 키스하게…그리고…아니 뭐 하고 있어!
살아났네요. 네, 네, 승낙해요.
키스해!
국가 간의 문화 차이에서 오는 이런 대사들의 반응 차이로 우리나라에서 똑같이 연극화되면 되려 굉장히 재밌을 것 같은 포인트도 있다. 한국식으로 바꾸어도 되지만, 그대로 인용하는 것도 센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이 외국의 희곡으로 극을 올릴 때의 흥미로운 점인 것 같다.
내용적으로는 참으로 유치해보이는 싸움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다. 토지 문제를 자산의 문제로 커다란 범주의 시야로 생각해본다면, 재벌끼리 자산 문제로 서로 다투는 것과 닮아있다. 이는 현대에서는 웃기는 문제로 끝나지는 않는다. 가족 내애서도 자산의 상속 문제나 증여 문제에서도 서로 다투고 급기야 죽음으로 끝을 보는 상황도 생기는 상황에서 겉으로는 가볍게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가볍게 보이지는 않는다. 걸작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이나 연출가들은 대단히 단순한 이야기를 구성은 복잡하지만 최종적으로 메세지가 이해가 되게 만드는 사람들인 것 같다.
큰 사건으로 인해서 불이 지펴진 상황에서 작은 사건으로도 쉽게 불이 지펴지는 상황도 구조적으로 날카롭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이야기일 수는 있으나, 이를 코믹한 상황으로 풀어낸 점이 멋진 것 같다. 해학적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구조가 필자에게도 통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시대가 지나더라도 인간 관계에서의 갈등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찰은 과거나 지금이나 같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W. 에디터 아마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