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비행일기
"세상에, 너 괜찮아? 이런 일이 흔해?"
"네! 저 저번주에 학교에서도 이렇게 피 흘려가지고 선생님이 도와주셨어요. 헤헤. 저는 거의 일상이에요."
"웃지마.. 나 놀랐어. 이 옷 좀 봐!! "
우리 엄마는 간호사이다. 정형외과서부터, 내가 어릴 때에는 산부인과에 근무하시기도 했다. 엄마가 일했던 산부인과에서 내가 태어났었다고 한 것을 얼추 기억한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러 엄마는 현재 한 한의원에서 간호사로서 15여년을 일하고 있다. 우리 엄마의 꿈은 수간호사였다한다. 아쉽게 수간호사가 될 수는 없었지만, 내겐 누가 뭐래도 강하디 강하고 멋진 엄마이다.
엄마는 나와 동생들 중 한 명은 엄마를 따라 간호사가 되기를 한 편으로 바랐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의 기대를 우리는 철저하게 저버렸지. 그 누구도 간호사가 되지는 않았다. 딸내미 하나는 외국항공사승무원이 되었고, 하나는 컴퓨터 개발자가 되었고, 나머지는 바리스타가 되었으니깐. 나는 사실 엄청난 겁보라서 절대 간호사가 될래야 될 수가 없다. 아니, 처음부터 간호사가 되어야지라는 생각은 죽어도 못했었다.
이 생각을 더욱더 굳게 만든 비행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오늘 여러분들에게 풀어드리는 이야기이다. 해당 비행에서 나는 이코노미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나를 심장 떨리게 만든 이 꼬마 숙녀는 초등학교 4-5학년으로 보이는 귀여운 노란머리에 파란 눈동자색이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보딩 때부터 엄청난 대가족이어서 처음부터 눈에 띄었다. 갓난 아기부터 정신없이 탑승을 한 이 대가족의 요청을 위해서 이것저것 도와주느라 정신없었기도 했지. 그렇게 이 승객 가족들을 기억하면서 서비스까지 무사히 마쳤다. 그렇게 쉬는 시간이 되었고, 내가 일하던 복도 쪽에 띵동하고 콜벨이 깜깜한 기내를 밝히면서 울렸다. 그리고 내가 나갔다.
대가족 중에 할머니가 누른 벨이었고, 보자마자 나는 놀랐다. 옆에 앉은 꼬마 숙녀가 코피를 너무 많이 흘리는 중이었고, 소녀의 옷이며 손에는 피가 범벅이었던 것. 할머니는 내게 티슈를 요청하기 위해서 콜벨을 누른거였고, 나는 놀라서 기다리라고 말하면서 티슈를 가지고 왔다. 너무나 많은 코피를 흘린 소녀. 급하게 좌석 조명을 키면서 고개를 뒤로 젖히는 아이에게 고개 숙이라고 말하면서 콧망울을 SEP First Aid 응급처치 수업에서 배운대로 집었다. 너무 많은 피로 인해서 대신 화장실에 가자고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갔다.
이런 일이 흔한 지, 왜 일어났는 지를 화장실에서 코피를 닦아주고 피가 흥건하게 묻은 고사리 같은 손을 비누로 닦아주면서 물어봤다. 그러면서 내 코 끝을 그녀의 코피에서 나오는 피비린내가 강타했다. 순간 깨달았다. 아, 사람한테서 나는 피비린내로 인해서 토를 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말이다.내가 좀 비위가 약하기는 하지만, 피비린내로 인해서 비위가 약하다고 다시 깨닫게 될 줄은 몰랐다. 호텔리어 시절에, 술에 찌들어서 엘리베이터 버튼이랑 바닥에 토를 잔뜩해놔서 그걸 올라오는 토를 견뎌가면서 닦아내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알고보니 이 아이는 학교에서도 코피가 자주 나는 아이였고, 이런 일은 일상이라고 했다. 해서 다음부터는 코피가 나면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코 옆을 꼬옥 누르면 된다고 가르쳐주면서 나는 그녀의 코피가 멎을 때까지 함께 화장실에서 같이 있었다. 예쁜 옷을 흥건하게 젖게 만든 코피도 물에 티슈를 적셔서 닦아주었다. 그러면서 아이는 수줍게 "땡큐!"하고 내게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정리를 하고 화장실에서 나온 뒤, 이 모습을 본 아이의 부모는 연신 고맙다면서 내게 인사를 건넸다. 뭐, 부모님은 뭐하셨던 걸까...싶긴 했지만 내가 도와줬으니 됐다라는 생각으로 괜찮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아마 비행이 피곤해서 그런거 같다고 웃으면서 말했고, 의자 커버에도 코피가 묻었길래 새로운 담요를 가지고 와서 의자에 깔아주었다. 그렇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달라고 하면서 이 일을 혼자 다 처리하고나니 피곤이 몰려왔었다. 그리고 내가 일한 존의 대장에게 보고했다.
승무원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바이러스 노출에 굉장히 심한 직업이기에 다른 사람의 피를 직접적으로 장갑도 없이 만지는 건 예민한 사항에 다른 크루들에게도 위험할 수 있으니 당부하라는 보스의 말을 들었다. 그러면서 고맙다고 말해주길래 감사하다면서 내 자리로 돌아오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처럼 간호사는 절대 못 된다. 간호사 됐으면 큰일날 뻔했다.
나중에 이것보다 큰 피가 터지는 응급상황이 생기면 나는 잘 대처할 수 있을까? 두렵다...그 피비린내를 잘 견뎌낼 수 있을까?'
라고 말이다. 아무리 수 많은 응급 SEP 수업과 트레이닝을 배웠어도, 인간인지라 막상 그 상황에 닥치게 되면 멍해지고 당황하기가 일수일텐데. 과연 내가 침착하게 잘 할 수 있을지 문득 겁이 났다. 이 작은 소녀에게서 나오는 코피의 피비린내에도 힘이 드는데 말이다. 뭐...제일 좋은 건 내 비행기간 내에 이런 위험한 상황은 안 일어나는 것이 베스트지만 말이다.
여전히 배울 것도 많고, 헤쳐나갈 것도, 두려운 것도 많은 나는 겁쟁이 비위가 약한 외항사승무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