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혹시...전생에 도라에몽이세요?

EP.직업일기

by 꼬마승무원

다른 직업들과는 다르게, 승무원들이 일하는 비행기 안의 환경은 모든 것들이 한정되어있다. 내가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해서 밖에 나가서 사올 수도, 가져올 수도 없다. 실예로, 승객들에게 주어지는 기내식에서 닭고기 요리가 다 떨어졌다고해서 비행기 문을 열고 하늘에서 뛰어내려서 닭을 가지고 올 수 없다. 승객이 마시고 싶어하는 제로 콜라가 다 소진되었다면, 없다. 비행기 밖으로 뛰어내려서 편의점에 들려서 제로 콜라를 사가지고 올 수도 없으니까. 그렇다. 비행기 안에 애초에 없는 건 구할 수 없는 것이고, 소진 되어서 사라졌다면 더이상 아예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한정되어있는 자원을 유연성있게 활용하여 최대치의 효과를 만드는 것이 승무원들에게는 중요하다. 고급스러운 영어로 표현하자면, Utilize limited resources with your Flexibility and produce best effects를 해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승무원이 되어 일하고 보니 깨달았다. 이러한 창의적인 능력과 행동, Creative한 승무원의 능력과 생각들이 바로 이 사람이 얼마나 일을 주도적으로 잘하는 사람인지, 얼마나 이 직업과 사람들에게 진심인지를 알게 되는 척도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과 행동이 승무원으로서 굉장히 중요하구나라는 걸 말이다.

기내 승객들 뿐만 아니라 승무원들의 목마른 목을 책임져주는 다양한 음료와 와인들. 이 음료와 와인들을 보관하는 Chiller, 즉 냉장고가 있다. 냉장고의 문은 비행기 안전 상 손잡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문을 열고 닫는 것이 손가락으로 버튼을 밑으로 내리고 올리는 형태이다. 이 때문에 힘이 많이 들어가기도 하고, 간혹 잘 안 열려서 손을 다치기도 한다. 이런 크루들의 고충을 아는 몇몇의 승무원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플라스틱 가방의 손잡이만 똑 떼어내서 그걸 손잡이에 잘 끼운다. 덕분에 플라스틱 가방을 앞 뒤로 움직이면 버튼도 같이 움직여서 손가락의 힘을 쓰지 않고 쉽게 열 수 있다.


크루들 뿐만 아니라, 승객들에게도 이런 창의성은 도움이 될 때가 많다. 한 승객이 생리통으로 너무 힘들어해서 화장실을 기다리다가 결국 배가 아파서 울면서 주저앉아했던 기억이 있다. 이에 크루싯 (크루들이 앉는 의자)에 승객을 앉혔다. 생리가 심하면 아랫배가 딱딱해져서 정말 고통스럽다. 하기에 이런 뭉친 근육을 풀어줘야함을 잘 아는 한 여자 시니어 크루가 보여준 행동은 참 기발했다. 기내 Amenity cart (여러 용품이 들어있는 카트)를 열어 빈 지퍼백을 찾았다. 그리고는 유아용 기저귀를 하나 꺼내 지퍼백에 넣었다. 그리고 기저귀가 든 지퍼백에 뜨거운 물을 담았다. 그러면서 뜨거운 물을 흡수한 기저귀는 금새 촉촉해졌고 엄청난 뜨거움이 아닌, 견딜 수 있는 뜨듯함으로 바뀌었다. 이에 터지지는 않는지와 온도를 꼼꼼하게 체크하면서 그녀는 '간이용 기저귀 핫팩'을 승객에게 건넸고 그렇게 승객은 감사하다며 아픈 배를 잠시 풀었다.

기내의 모든 것을 활용하는 크루들 뿐만 아니라, 내가 직접 '창의력'과 '행복'을 들고 다니는 크루들도 있다. 저번에 함께 비행했던 여자 시니어 중국인 크루. 그녀는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승객 커플을 위해 딱 봐도 엄청나게 무거워보이던 그녀의 개인 가방을 열고서는 본인이 직접 구매한, 카드를 펼치면 3단 케이크가 펼쳐지는 입체 카드를 꺼냈다. 그리고는 본인이 구매한 드라이 플라워를 케이크가 준비되어 있던 트레이 위에 정성스레 뿌리렸다. 그리고 본인이 매일 들고다니는 불을 키면 오색빛깔 번쩍이는 촛불 장식을 꺼내서 함께 트레이 위에 올려놓았다.

더욱더 하이라이트는, 그녀는 바리스타였던 경험을 살려서 직접 위스키 텀블러에 갈색 설탕들을 예쁘게 묻히고서는 본인만의 칵테일을 만들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음료를 만들기 위해서, 우유 거품 미니 기계를 본인 가방에서 꺼내고서는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본인만의 것들로 승객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도라에몽처럼 꺼내서 준비한 그녀는, 유리컵에 드라이아이스를 넣고 뜨거운 물을 넣어 연기를 만들고서는 컴컴한 기내를 축하가 가득한 트레이를 들고서는 크루들과 함께 나가서 기념일을 축하해드렸다. 그 누구보다도 정성이 가득한 축하에 승객들고, 크루들도 기억에 더욱 남았다.

모든 것이 사람과 연결되어있는 직업인 승무원. 이 직업을 통해서 나 역시 매 비행마다 느끼고 배우는 것들이 많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여러분들에게 오늘 소개한 크루들이다. 본인만의 창의력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고, 편안함을 주는 이들을 보면서 나 역시 감명을 받고, 따라 배운 뒤 실제로 실천한 경우가 많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생일인 승객을 위해, 기내에 실린 머핀과 초콜렛들로 멋진 케이크를 만들어드린 경우도 있었다. 생리통에 괴로워하는 승객을 위해서 빈 물통에 따듯한 물을 담아서는 간이 핫팩통을 만들었던 기억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다른 사람들을 통해 배우고 느꼈기에 가능했던 창의적인 서비스였다.

비행기 안에 한정되어 있는 자원에 대해서 무조건 "없어요." 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비록 우리에게 없고, 부족하지만 당신과 우리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한번 시도해보고 생각해볼게요."라는 것이 승무원들에게 필요한 태도인 것 같다. 그리고 이런 태도를 가진 승무원들이 확실히 일도 잘하고, 승객들과 크루들에게 좋은 인상과 추억으로 기억되는 것이 사실이다. 정말 전생에 도라에몽인지 의심이 되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나 역시 내가 이 일을 하는 마지막 날까지 그들을 통해 많이 배우고 실천해보기를 바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한국인크루로서 제일 힘든 것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