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직업일기
한 달하고도 2주.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최근에 글을 작성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내가 글을 쓰지 않은 것에는 다양하고 자잘자잘한 이유들이 있겠지만,이 이유들 중에서도 가장 대장격들에는 바로 '귀찮음'과 '매너리즘'이 앞장섰겠다.
내가 근무했던 첫 호텔. 한창 더 큰 호텔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솟구쳤던 시기에 한 전직 대한항공 승무원이던 예쁜 후배이자 언니가 프론트 데스크로 입사했었다. 마치 인형처럼 이목구비가 화려하고 뚜렷했던 언니였다. 그런 언니는 당시 우리 프론트 데스크는 물론,다른 부서에서도 화제였다. 전직 승무원이 우리 호텔 프론트에 입사를 하다니!
시간이 지나면서 어색했던 언니와는 일 적인 대화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대화를 나누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나를 비롯한 프론트 직원들은 다 물어봤었다. 왜 유명한 항공과가 있는 대학교에 나와 대한항공 승무원이 되었는데 결국 퇴사를 결심했는 지 말이다. 세계를 누비는 국내 최고의 항공사를 말이다. 그 때 언니가 무심하게,그러나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담담하게 말했던 말이 있었다.
"나는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하면서 한번도 내 스스로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 본 적이 없어. 나는 엄마가 좋아하니까 승무원이 됐던 것 뿐이야. 엄마의 목표였달까. 승무원을 하는 그 기간 동안,나는 진짜 내가 아니였어. 진짜 내가 좋아하는,내 진짜 모습이 아닌 유니폼과 남들의 시선에 가려진 채
웃음을 짓는 가짜인 나로 살았었던 시절이였어."
언니의 담담하면서도 많은 의미가 담긴 말 속에는 얼마나 그 속에 타인들은 이해하지 못할 고충들이 꾹꾹 눌려담겨져 있었는 지 알 수 있었다. 아니.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사실 정말 언니가 말하고자하는 모든 고충들을 다 이해하고 알기엔 나는 그 세계를 알 지 못했기에 다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겉으로는 "아,정말요? 그러셨군요."라는 걱정어린 진심과 가짜 이해를 대충 건네면서 내 맘 속은 이렇게 생각했었다.
'그래도 승무원이라니 멋있다. 나도 언젠가 승무원의 발 끝이라도 따라잡는 순간이 오기는 할까? 글쎄. 모르겠네. 그래도 경험해보면 멋지지,승무원.'
그렇게 시간은 무색하게 흘렀다. 언니 역시 해당 호텔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한다는 소식을 간간히 다른 선배의 입을 통해서 들을 뿐,연락이 끊긴 지는 오래되었다. 그리고 나는 외국항공사승무원이 되어 약 3여년의 시간을 비행으로 삶의 작디 작은 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당시에 언니가 건넸던 말을 여실하게 온 몸으로,온 마음으로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진짜 내가 원하는 건 뭘까? 앞으로 3년이든,5년이든,10년이든 여전히 비행하고 있는 내 모습이 과연 나는 도저히 상상히 안되는데. 그렇다면 이걸 언제까지 해야하는 것일까? 진짜 내 모습은 어디갔을까?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닌데..."
내가 여러분들에게 건넸던 귀찮음과 매너리즘이 바로 이것이다. 진짜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살아가는 현재의 내가 내 스스로에게 가지는 매너리즘. 그리고 이로 인해 글을 쓰는 마음마저 이제는 귀찮음과 무슨 소용이 있으리랴는 회피로 되어버렸다.
당시에 전직 대한항공 승무원이던 언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됐다. 회사에서 정해진 규칙,규범에 맞춰서 나를 맞춰야한다. 나는 맘껏 소리지르고 내 맘대로 나만의 춤을 추고 싶은데 나는 회사에 맞춰서 정해진 박자와 리듬에만 맞춰서 회사에서 정해진 춤만을 춰야한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안된다. 그러면 나를 제외한 다양한 수 천개의 눈들이 나를 향했고,수 백개의 다양한 모양을 가진 입들이 나를 향해 단어와 길이는 다르지만,결국은 하나의 의미로 집합되는 문장들을 그들만의 냄새가 가득한 침과 뒤섞여서 내 얼굴로 향했다. 그렇게 나는 진짜 내가 아닌 회사가 좋아하고 정해진 가짜의 나로 살아가고 있다. 외항사인 나도 이렇게 생각하는데,과거 대한항공에 있었던 그 언니는 얼마나 더 심했을 지 참 생각이 많아졌다.
나만의 리듬과 시선으로 자유롭게 살아가지 못한 지 꽤나 오래되는 이 시점에 나의 인내심이 한계선이라는 지점에 거의 다다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되돌아보니 내가 여러분들에게 글로 하소연을 표현한 것도 약 1년도 더 전부터였다. 그렇게 꾸역꾸역 나는 가짜인 나로 살아가는 것이 익숙하면서도 나만의 춤을 추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생활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익숙하면서도 꾸역꾸역 이끌어 온 내 모습처럼 다시 한 달하고도 2주만에 다시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그것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기 보다는 어쩌면 여러분들에게는 무거운 마음을 주는 글이겠지만.
하지만 이것을 너무 안타깝고 부담스럽게 바라봐주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마음은 곧 내가 새로운 도전을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이고,당장의 내 눈 앞의 나무들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당장 몇 백 킬로미터,아니 몇 년 뒤의 숲을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나의 글들을 보고 승무원의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당장 겁을 주고 싶지는 않다. 그 꿈은 인간으로서 살아가면서 꼭 이루고야 말겠다는 정말로 몇 안되는 소중한 경험이자 성취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정말 승무원의 좋은 것들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오늘의 내 이야기가 어쩌면 그들에게는 한 번 쉬어가는 나무 그늘 속의 벤치같은 글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진짜 내가 원하는 춤이 아닌 회사가 정해주는 춤을 추고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가 겪는 이 마음은 곧 여러분들이 현직이 되면 반드시 한 번쯤은 생각하게 될 주제가 될 것이다.
나는 그러면 어떻게 할 거냐고? 글쎄. 이제 모든 것들이 하나 둘 씩 정해지면 여러분들에게 이런 제목으로 글을 작성하고 싶다. 다시 나만의 춤을 추게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