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it Go _ 외국인 크루로서 살아남는 멘탈

EP.비행일기

by 꼬마승무원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대한항공처럼 외항사는 보면 팀 비행으로 일을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우리 회사도 코로나 시기에는 팀 비행으로 일했다고는 하지만, 코로나가 지난 지금은 예전처럼 매번 비행마다 다른 크루들과 함께 비행을 한다. 그러다 보니 비행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나 같은 주니어 크루들은 물론이고, 상사들도 크루 리스트를 보면서


‘아, 오늘 같이 비행을 할 크루는 어떤 사람일까, 개 또라이쉑히는 아닐까.’ 하면서 긴장한다. 브리핑 룸 때, 서로 처음으로 얼굴을 보는데, 그때의 긴장감이란.. 서로 돈을 벌려고 일하러 온 건 마찬가지였지만, 역시 어딜 가나 ‘사람’이 제일 중요한 법. 내가 같이 일하는 크루들이 누구냐에 따라서 그 비행의 분위기가, 상사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주니어로서 내가 감당해야 하고 배우는 것들, 이겨내야 하는 것들이 매우 달라진다. 뭐 다들 학창 시절에도 그렇고, 알바에서도 그렇고, 직장 생활에서도 그렇고 제일 우두머리에 따라서 일하는 스타일과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는 것 같다.


나와 같은 주니어들은 이 비행의 대장님, 즉 사무장과는 전혀 다른 클래스에서 일하기 때문에 딱히 부딪히거나 얼굴을 마주칠 일이 별로 없지만, 대장님 밑에 계신 부대장님 (부사무장) 의 지시에 따라 일하게 된다.


하루는 사람 자체가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굉장히 본인만의 철학이 있어서 깐깐하신 부사무장님을 만났었다. 아무래도 나는 초초초 주니어다보니 항상 비행에 있어서는 막내 포지션이다. 위의 선배들도 그렇고, 상사들도 그렇고 그들의 눈은 오롯이 나를 향해 있다. 내가 하는 일거수일투족이 그들에 있어서는, 이 비행 동안 주시해야하는 대상. 가르쳐줘야 하는 대상. 그리고 평가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깐깐하신 분들은, 만난다면 나에게는 그날의 비행이 다른 비행에 비해서 모든 순간이 긴장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나중에 시간 지나서 알고보니 그 부사무장 또라이 리스트 중에 하나였음ㅋㅋㅋㅋ어쩐지)


에피소드 하나를 말해보자면, 밀 서비스가 나가기 전에 열심히 음료수, 와인 그리고 기타 필요한 것들을 담는 카트 탑을 셋팅하고 있었다. 갑자기 부사무장이 물어봤다.


“꼬마승무원, 너 오른손잡이야?”

“네, 맞습니다.”

“근데 왜 사과주스, 오렌지주스 등을 네 왼쪽에다가 두는 거야? 오른쪽에다가 두면 서비스하기도 편하고, Spillage (음료 쏟기) 할 걱정도 줄어들잖아. 안 그래? Work Smart."

뭐, 그의 다 년간의 비행 경험에서 나에게 말해주는 것이기에 나는 기꺼이 알려주셔서 감사하다는 뉘앙스로, 그리고 한국인들의 특성 중에 하나인 상사가 뭐라고 피드백을 주면 죄송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습관 아닌 습관이자 나의 버릇이라 그리 말했다. 그러자 그의 대답은

“히히쓰. 나는 너에게 Sorry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이런 Sorry가 아니지.”

“아,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나한테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생각해서 나중에 말해.”


참 난감했다. 일단 서비스가 중요하니까 서비스를 하러 나갔고, 끝난 뒤에 나는 사번이 나보다 높은 크루에게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내가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그녀는 “어이없긴 한데.. 그냥 Thank you for your guidance and assistance"라고 말해. 몇몇 상사들은 그런 말 듣기를 더 좋아하거든.” 라고 대답했고 나는 알려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고 쪼르르 부사무장에게 가서 말했다. “아까 제가 대답을 제대로 못한 것 같습니다. 저는 죄송하다고 하는 것보다는 Thank you for your guidance and assistance라고 말하는 게 더 낫다고 깨달았습니다. 가르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꼬마승무원. 이번 비행을 통해서 많이 배워가기를 바란다.”


다들 보면 아니 저건 또 뭐야 라고 생각하겠다. 나도 참 어이없기도 했지만 막내들의 삶이란, 그리고 외국인 크루로서 살아남기에는 그렇다. 기본적으로 우리들의 영어 실력이 본인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기에, 적절한 대답과 단어 사용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서 지적하는 것이 매 비행마다 다반사다. 실제로 이런 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트레이닝 기간에 그만 둔 사람들도 꽤나 많다. 당해보면 정말 스트레스거든. 손님들에게 치이고 상사에게 치이는 막내 크루들의 삶이란 이렇다.


중요한 건, 위의 상사들도, 동료 크루들도 그 사람을 이상하게 보고 다들 나를 안쓰러워했다. 내가 안쓰럽다면서 선임 승무원이 다른 크루에게 말했다고 들었다. 그러고는 비행이 끝나기 전에, 그 선임 승무원이 나에게 말했다.

“꼬마승무원, 고생 많았어. 정말 다른 크루였다면 몇 명은 정말 울었을 거야. 근데 넌 울지도 않고 오히려 웃으면서 감사하다고 하는 것에 나 되게 놀랐어. 넌 되게 강해. 계속 이렇게 비행하고 나중에 분명 시간이 지나면 넌 부드럽게 강한 크루가 될 거야. 난 정말 그렇게 믿어. 항상 건강하고 네가 자랑스럽다.”

나는 부사무장이 쓸데없는 것으로 지적할 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무조건 상사가 말하면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라며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 내 다음 비행과 경험에 도움이 되는 조언이라면 나는 절대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다치게 만들고 정말 곱씹어 보았을 때, 쓸데없는 것이라면 Just let it go. 이게 정말 필요한 마인드이다.


다른 직장에서도 그렇다. Just let it go 하는 마음가짐은 내가 이 포지션에서, 이 정글 같은 곳에서 나의 커리어를 쌓아가면서 살아감에 있어서 필요하고 나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애티튜드임에는 나는 강한 긍정을 표한다. 특히 승무원 준비생들은 정말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것이다. 특히 외항사는 합격했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정말 무수한 일들이 많다. 비자 발급이 이유도 없이 거절되는 경우도 있고, 나도 모르는 건강상의 문제로 회사에서는 이유도 안 알려주고 한국으로 되돌아 가라고해서 합격이 물거품이 되는 경우도 있고, 트레이닝 중간에 어떤 문제가 생겨서 잘렸다는 말도 많고... 실제로 내가 합격하고 여기에 일하기까지 위의 일들이 내 주변 지인들에게 일어났었다.


나도 합격 후, 그 누구한테도 합격 소식을 말하지 않았다. 제일 친한 친구와 첫 직장 선배에게만 지금의 회사에 오기 일주일 전에 카톡으로 통보하고 부랴부랴 얼굴 보며 말하고, 현지에서 메디컬 테스트도 통과하고 집도 구하고 이제 막 트레이닝 일자가 잡히고 나서야 인스타그램에 소식을 알려서 뒤늦은 축하를 받았다. 이후 트레이닝 중간에도 재배치되고 시험 통과를 못해서 한국으로 되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인스타그램에 내 소식을 절대 업로드하지 않았다. 그만큼 외항사는 합격해서도 정말 무수한 이들이 펼쳐진다.

그랬을 때, 나는 Let it go 방법으로 무수한 소문들을 내 걱정과 맘속에서 멀리멀리 쫓아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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