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비행일기_ 인천 비행
나는 인천비행을 좋아한다. 한국사람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비행보다도 인천 비행을 할 때는 맘이 더 편하다. 언어적인 부분도 그렇고, 동료들도 한국인 크루들에게 의지하는 부분이 있다 보니 좀 더 다른 비행보다는 나를 유하게 대하는 부분이 있다. 이 차이점은 내 한국인 동기들에게 말을 해도 다들 동감하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내게 있어서 인천비행의 90퍼센트 이상은 항상 무난하거나 행복한 비행이었다. 아, 아마 내가 감정기복이 그렇게 심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지내는 스타일이라서 그런가? 아무튼, 그랬다. 하지만, 아무래도 한국인 크루다 보니 인천비행에서 겪는 고충이 있는데, 그건 바로 언어다. 한국 비행은 한국인 크루, 중국 비행은 중국인 크루, 일본 비행은 일본인 크루 등등 해당 특정 노선에는 그 나라 출신의 크루들이 타는데 이들이 타는 이유 of 이유는 결국 언어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에 있어서 도움이 좀 더 필요하신 승객분들이 왕왕 계신데, 그런 승객들을 도와드리기 위해서 우리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일하다 보면, 내가 한국사람인지 아닌지 헷갈려하시다가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걸 아시게 되면, 너도나도 저기요, 여기요, 한국크루 찾아와 주세요, 한국크루한테 말하고 싶어요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 보니, 남들보다 유산소 운동도 더 하게 되고 비행기 안에서 곁땀이 흥건해지는 땀나는 일들이 자주 벌어진다. 아무래도 이런 부분들이 인천 비행을 하면 조금은 힘들지만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특징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언어를 제외하고서는 특별한 것 없는 인천비행에 내게 잊지 못할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 이는 내가 초창기 비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꼬마승무원 시절의 이야기다.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지만, 바로 기내식에 대한 이야기다. 이 사건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밥에 진심인 민족이죠."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비행을 통틀어서 참 안타깝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맨 마지막 줄에 앉으신 승객들이 본인이 원하는 기내식 메뉴를 선택받지 못할 때이다. 같은 티켓 값내고, 비싼 돈 주고 우리 회사를 이용해 주시는데,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줄에 앉았다는 이유로 밀 초이스도 못 받고, 남은 거를 먹어야 한다니! 승무원으로서 이는 참 안타깝고 죄송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설명해야 하는 우리들도 참 난감하다.
기내에 실리는 기내식의 비율이 회사 케이터링 (회사 기내식을 담당하는 부서) 업체로부터 받되 당연히 그 나라 승객들의 내셔널리티(국적)와 특성을 바탕으로 실리지만, 그날 승객들의 특성에 따라 이는 또 유동적으로 달라지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서, 항상 인천 비행에는 한국인이 더 많고, 한식을 좋아하는 승객들의 특성 때문에, 한식 메뉴가 70%, 양식이나 중식이 30%로 실리게 된다. 하나 오늘 내가 탄 비행기의 승객들이 어쩐지 양식이나 중식 메뉴를 더 선호하네? 아 이럴 때 굉장히 난감하다 불길함을 승무원들은 느낀다. 이거... 마지막 줄 승객들은 초이스를 못 받을 확률이 높겠다고 말이다. 이런 낌새가 감지되기 시작하면 이제 슬슬 승무원들은 적절하게, 그리고 아주 능수능란하고 교묘하게 포장된 말과 표현을 통해서 이를 잘 맞춰서 서비스가 나가야 하는 중대한 업무가 플러스가 된다. 물론 서비스가 나가기 전에 승무원들끼리 공유한다. 오늘 메뉴가 한식의 비율이 어떻고, 양식이나 중식의 비율이 어떠니까 잘 파악해서 서비스 나가자고 말이다. 근데 사람 마음과 상황이라는 게... 항상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다. 내가 예시로 들은 이야기 말고도 반대의 경우도 많다. 한식이 70%이고 양식이나 중식이 30%인 상황인데, 세상에... 다들 한식에 미쳐있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러다 보니 남아 있는 거라고는 양식이나 중식 밖에 없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내가 들려드릴 이야기의 경우는 바로, 한국인 남자승객이었는데 한식을 먹고 싶었는데 양식 밖에 남지 않은 케이스였다. 그리고 그는 있는 대로 없는 대로 화를 내셨다. 외국인 크루가 미안한데 우리가 이것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니 영어로 왓? 하우 컴?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짧은 영어로 화를 내셨고, 이에 외국인 크루의 눈이 나와 마주쳤었다. 나 좀 살려줘...라는 구원의 반짝거리는 슬픈 눈빛... 차마 그걸 외면할 수는 없어서 그 손님께 다가가서 죄송하다고 대신 사과드렸다. 그러자 한국말로 다다다 다다 말씀하시는 분... 내가 그분께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분의 화가 잠시나마 진정되기를 바라면서 죄송하다는 말과 얼굴 표정으로 그저 내게 쏟아내시는 화를 다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그러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 심정 잘 이해가 되긴 합니다만... 저희 양식도 맛있는데 말이죠... 하하... 저희가 이러고 싶어서 이런 게 아닙니다...라고 참 죽을죄를 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화를 내는 남성승객 옆에는 여자 동행인이 있었다. 딱 봐도 두 분은 커플이었고, 신혼여행을 마치고 온 느낌이었다. 그 여성분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식사를 받아서 먹고 있었다. 그러고 나는 팍 느꼈다. '아, 두 분 싸웠네 ㅋㅋㅋㅋ 싸우고 이제 기분이 안 좋은데 더 안 좋아지니까 옳다고 나하고 지금 우리한테 화풀이하시는 거구나.'라고 말이다. 그러고 그의 화를 다 받아주고 그래도 장시간 비행인데 식사 제공해도 되냐고 하니 됐다고 안 먹겠다고 하고는 그렇게 모든 건 종료가 되었다. 중간중간에 간식이나 이런 걸 들고 찾아가기도 했었지만, 꽤나 어려운 남자인걸?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까칠했고 나머지 비행 내내 그는 잠에 들었었다.
추후에 그 비행이 끝나고 다른 크루한테 들었는데, 이륙 준비를 위해서 충전기 선을 빼달라고 요청하니 홱 하니 기분 나쁘다는 듯이 빼버리고, 그가 내릴 때엔 인사를 건넸더니 무시해서 아주 기분이 나빴다고 나한테 전달해 줬다. 내가 대신 사과할게라고 말하면서 아마 기분이 안 좋아서 그랬던 것 같아라고 그저 넌지시 말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에피소드는 꽤나 많고, 지금도 종종 겪는다. 본인들이 원하는 기내식을 얻지 못해서 기분이 상하신 승객들이 한국인인 나를 불러오라고 말씀하시고, 외국인 크루는 말이 안 통하니까 내게 대신 화내는 이런 경우...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어 죄송하면서도 참 한국인이라서 피곤하고 힘든 경우이다.
그렇지만 어쩌겠나. 나도 맘이 힘들고 내가 왜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나 싶으면서도 승객들의 그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참 죄송하고 내가 능력만 있으면 지금 당장 그 음식 가지러 뛰어내려오고 싶다. 아니면 회사에다가 비율 좀 잘 맞춰라...라고 멱살 잡고 크게 말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나는 한 마리의 도비일 뿐 인걸. 이런 기내식 에피소드는 한국비행 말고도 다른 비행에서도 많이 겪지만, 내 기준에서는 유독 인천비행에서 많이 겪는다. 그만큼 우리 한국사람들이 밥에 진심이라서 그런 거 아닐까? 싶다.
아무튼 혹여나 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조금만 더 유하게 승무원들을 대해주면 좋겠다. 우리도 원하시는 기내식을 못 받게 되는 이 상황과 승객들에게 그저 미안할 뿐이다. 우리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너무 한정되어 있어서 정말 죄송할 뿐이라는 걸 말이다. 다만, 이를 너그러이 그럴 수도 있다면서 이해해 주신다면, 우리는 오히려 더 더 고맙고 사람으로서 잘 챙겨주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이렇게 만들고 싶어서 만든 것이 아님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하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