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 체질이 따로 있는 걸까요?

EP. 비행일기_미국 로스앤젤레스 비행

by 꼬마승무원

갈 때 15시간 40분의 비행시간, 올 때 역시 15시간 50분 정도가 걸렸던 미국 로스앤젤레스 장비행을 마치고 오늘 아침 7시경에 도착했다. 갈비뼈를 조여오던 꽉 끼는 유니폼의 지퍼를 내리는 순간, '하아' 크게 한숨이 저절로 쉬어졌다. 돌아오는 비행 내내 쓰라린 명치와 위장과 내내 싸우면서 오던 상황과는 너무 다르게 유니폼을 벗어던지고 따듯한 물에 목욕을 하고 나오니 허기가 졌다. 나는 장비행을 마치고 나면, 긴장이 풀리면서 매콤한 것이 당기는데 그럴 때마다 라면을 자주 먹는다. 예전에는 라면 먹고픈 마음이 심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심하지는 않다. 오늘은 먹자하며, 휴가에서 바리바리 챙겨 온 김치사발면에 진미채를 위장에 부어 넣으며 유튜브를 보며 잠깐 생각했다. '나약한 위장 같으니라고... 아까 나를 너무 아프게 만든 위장이 맞냐? 너도 참 간사하다.'

승무원 체질이라는 것이 따로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승무원 체질이란, 첫째. 시차 상관없이 아무 데서나 머리만 뉘이면 잠에 든다. 둘째, 몸이 좋지 않은 상황에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멀미도 하지 않는다. 셋째, 비행기 안에서 잘 먹는다. 이렇게 세 개로 나눌 수 있다. 이 세 가지로 볼 때, 나는 절대 승무원 체질은 아니다.

나는 시차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번 미국 비행에서도 오랜만에 겪는 큰 시차 차이로 인해, 14시간을 넘게 첫날에 자버리고 다음날에는 밤을 꼬박 새 버렸다. 그러고는 아침 8시 정도가 되어서야 쏟아지는 잠에 눈을 붙였다. 정확하게 내 본국의 바디클락에 맞게 생활해 버렸으니, 어쩌면 소중한 미국에서의 레이오버를 버려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나는 몸이 안 좋은 상황에서, 그리고 오랜만에 비행을 하는 상황에서는 쉽게 멀미를 한다. 이번 미국 비행 전에도 긴 휴가로 인해서 멀미를 할 것 같아 무서워서 멀미약을 복용했다. 요즘따라 난기류가 심한데, 그럴 때마다 나도 내 몸 상태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차라리 토를 할 바에야 미리 약을 먹고 예방하는 것이 백배 천배 나아 약을 먹었다. 몸이 안 좋은 상황에서 기내식 냄새를 맡으면 그렇게 울렁거릴 수가 없다. 이런 내 거지 같은 몸의 상태? 절대 승무원 체질이 아니지.

비행기 안에서 잘 먹는다? 와... 정말 이것과 관련해서 승무원 체질이냐 아니냐로 면접 합격의 승패를 갈랐다면 나는 바로 탈락이었을 것이다. 예전에 나는 크루밀, 즉 기내식을 정말 싫어해서 입에 잘 대지도 않는다고 전달한 에피소드가 있다.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나는 메인 음식들을 많이 먹지 못한다. 기껏 해봐야 애피타이저와 과일, 디저트들로 허기를 달랠 뿐. 꽉 끼는 유니폼 때문에 많이 먹기도 힘들지만, 나는 장이 매우 약해서 급하게, 그리고 순간 많이 먹게 되면 금방 체를 하게 된다. 이번에 미국 비행에서도 체를 해서 엄청난 고통 속에 혼자서 아픔과 싸워야만 했다.

이번 미국 비행의 크루들은 모두 다 좋았다. 특히나 사무장님은 예전에 함께 인도 아마다바드 비행을 함께 했던 분이었고, 굉장히 젠틀하고 나이스하신 좋은 분이었다. 진심으로 저분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우리에게 대해주는 행동을 보면, 가족들에게 좋은 남편과 아빠임에는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좋은 분이었다. 나머지 크루들도 다들 서로 도와주면서 나를 잘 챙겨주었다.

하지만 그들의 정성 어린 챙김이 내겐 부담스러웠는데, 그 이유는 밥 때문이었다. 서비스가 끝나면, 법적으로 정해진 규정 때문에, 크루들은 돌아가면서 크루벙크라는 곳에서 쪽잠을 청한다. 쉬러 가기 전에, 일단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다들 서로 얘기해 준다. 실제로 너무 안 먹어서 위에 천공이 생겨서 한 달을 입원했다는 크루 얘기도 들었다. 기압 차이 때문에 쪼그라드는 장기를 붙들고 일을 하는 상황이기에, 뭐라도 간단하게 위장에 넣으라고 하지만, 위의 얘기에서 알겠지만 나는 자러 가기 전에 입 안에 음식물을 넣기 싫어한다. 한창 일을 하다가 내가 먼저 쉬는 타임이라는 얘기를 듣고 부랴부랴 쉬러 가려했다. 그러자 갤리 남자 크루 선배는 물론 선배들이 내게 쉬러 가기 전에 뭐라고 먹으라면서, 나를 위해 음식을 데워주겠으니 뭐 먹을 거냐고 물어봤다. 이에 나는 괜찮다면서 안 먹겠다고 했지만, 다들 걱정된다면서 뭐라도 꼭 먹으라고 했다. 하핳... 진짜 괜찮은데...라고 여러 차례 말했으니 그들은 이미 데워놓은 거 좀 있으니까 먹으라고 고르라고 했다. 아휴.. 어쩌겠냐 라는 생각을 가지고 이코노미에서 온 음식을 부랴부랴 입에 쑤셔 넣었다. 한 투입만 먹고 버리면 또 뭐라고 말이 나올까 봐 대충 다 먹었다. 그러고 쉬러 갔다.

하지만, 역시 나약한 위장과 입에 쑤셔 넣고 바로 잠을 청한 상황으로 인해서 쉬고 나오자마자 머리가 핑하고 돌더니 명치가 너무나 아팠다. 다들 그 느낌을 알까? 급체했을 때, 정말 위장도 쓰리고 명치 한가운데가 아파서 누군가가 안에서 꼬집는 것 같은 느낌을. 가방에 개인적으로 챙겨 온 약을 입 안에 털어놓고 교대를 위해서 화장실에 옷매무새를 다듬고는 나왔다. 그러곤 생각했다. '아, 이거 제대로 체했다. 너무 아프다.' 정말 위장을 뱃속에서 꺼내서 쓰라림을 없애버리고 싶었다. 의자에 앉아 선배가 준 찜질팩을 배에 대고서는 계속 앉아있었다. 다들 괜찮냐고 물어봤고, 나는 아까 자러 가기 전에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것 같다, 내 위가 원래 약하다고 말했다. 그러곤 다들 내게 너무 미안해했다. 괜히 본인들 때문에 무리해서 억지로 먹은 거 아니냐면서 말이다. 사실 맞는데... 대놓고 맞다고 하기엔 ㅋㅋㅋㅋㅋ 그냥 아니라고 둘러댔다.

엄청난 체기로 인해서 일어나서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다행히 근무 내내 승객들이 콜벨을 누르는 일이 없었다. 그러면서 아픔을 중화시키고자 중간중간 따듯한 꿀물을 마시기도 하고, 화장실 체크하겠다면서 화장실로 들어가 5분 정도 눈을 감고 쏟아지는 잠과 위장의 쓰라림을 변기 뚜껑 위에 앉아서 가라앉히기도 했다. 왜냐고? 눈치 보여서... 그러면서 나와 함께 쉬는 시간을 갖고 근무하는 사무장과 선배를 부럽고 신기한 눈으로 나는 쳐다봤다. 둘은 서로 대화하면서 기내식은 물론 간식들을 2개, 아니 3개는 맛있게 냠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 나는 조금만 먹어도 이렇게 체해서 아픈데 저 두 사람은 어떻게 해서 저렇게 잘 먹지? 이게 바로 비행 짬밥의 차이인가...'

두 사람의 내겐 대단한 먹방의 향연을 바라보면서 나는 내 고통이 나아지기를 바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보다는 나아졌지만, 끝내 두 번째 서비스를 시작하고 끝내는 동안 내내 고통은 여전했다. 감사하게도 좋은 사무장 덕분에, 두 번째 서비스 다음에도 돌아가면서 쉬는 시간을 가졌고, 바로 짧지만 딥슬립을 가지면서 아픈 위장이 괜찮아지기를 바랐다.

다행히 두 번째 쉬는 시간을 가지고 내려오니 배의 고통은 사라졌었다. 괜찮냐고 묻는 사무장과 선배의 말에 괜찮다고 말하니 뭐라도 먹으라고 건네주는 말에 또 순간 움찔했다. 하지만 사람이 참 간사하다고, 애피타이저로 실린 새우가 정말 크고 통통해서 보니 먹고 싶어 졌다. 결국 아까의 아픔은 잠시 잊어버리고, 애피타이저와 과일을 간단하게 해치웠다. 애피타이저는 대부분 샐러드가 많아서 몸에 크게 부담이 되지도 않고, 오히려 야채를 잘 챙겨 먹어야 하는 나의 상황에 딱 맞는다 생각해서 애피타이저 먹는 것에는 크게 나는 거부감이 없다. 기내 메인코스를 먹을 바에야 차라리 애피타이저 샐러드를 3개 먹는 것이 더 나았다. 감사하게도 먹고 나서 크게 아픈 것도 없었다. 고통이 사라지니 기내에서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면서 일도 열심히 할 수 있었다.

쓰라린 위장의 고통이 가시고 이렇게 글을 쓰는 이 순간, 당시를 상기하니 어우...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순간이다. 가끔 그렇게 체할 때마다 먹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이번 비행처럼 난감한 상황들이 종종 펼쳐지니 참... 나약한 나의 위장이 밉기도 하다. 어떻게 그렇게 다들 잘 먹는 거지? 여전히 나한테는 이 부분은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와 같은 것 같다.

승무원 체질이 정말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0점짜리 승무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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