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EP. 비행일기_스페인 바르셀로나 비행

by 꼬마승무원

길다면 길었던, 하지만 정말로 행복했고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이번 달 마지막 비행이자 마지막 장거리 비행인 스페인 바르셀로나 비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다들 바셀에 간다고 하니 이미 바셀에 다녀온 사람들이 하나같이 정말 바셀 너무나도 좋다고 말을 해서 기대했었는데 역시나였다. 정말 좋았다. 심지어 사무장은 30여 년 이상의 비행경력동안 이번 바르셀로나가 처음이었고, 부사무장은 본인의 딸과 아들을 데리고 왔다. 역시 가족이 승무원이면 가까운 사람들은 혜택 받는 것이 많은 것 같다. 나도 나중에 우리 부모님과 동생들 데리고 해외로 갈 생각이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날씨, 분위기. 그 모든 것이 좋았는데, 한국이랑 비슷한 분위기이면서도 편안함을 느껴서 좋았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추로스, 먹물 빠에야, 감바스, 상그리아, 타파스, 꿀대구 등등... 음식도 하나같이 한국인인 내 입맛에 찰떡같이 잘 맞아서 너무나 맛있게 먹었다. 내게는 특히 꿀대구가 인상에 깊게 남았다. 달콤한 꿀과 새콤한 드라이토마토소스의 조합에 세상 너무나도 부드러웠던 대구의 만남... 입안에 넣자마자 와 이거 대박이라면서 먹는 족족 함께 한 크루에게 말을 했다. 스페인에 간다면 물론 위의 언급한 음식들은 다 먹어봐야겠지만, 내게 있어서 1등은 꿀대구, 2등은 상그리아 3등은 먹물 빠에야였다.

웅장함과 가우디의 창의력이 돋보였던 유명한 것들은 다 보고 왔다. 다만, 여행하는 내내 좀 피곤한 점이 있었다면 바로 함께 나가자고 해서 간 크루가 나를 피곤하게 했다는 점. 나는 내가 처음 방문하는 해외라면 다른 크루들과 대규모로 움직이는 것도 좋아하고, 소수로 움직이는 것도 좋아한다. 딱히 내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함께 나간 크루는 같은 존에서 일한 태국 크루였는데, 내 성격이 맘에 든다면서 우리 함께 둘이서만 다니자고 말하길래 별로 나쁘지도 않아서 그래라고 말했다. 근데 그 친구... 왜 나랑만 같이 다니 자고 했는지 이해가 됐다.

첫 번째, 패션이 완전 핫걸 그 자체였다. 가랑이 y존이 보이는 딱 달라붙는 쫄쫄이 레깅스에 위에는 나시를 입고 샤넬 선글라스를 끼고 나왔는데 세상.. 그렇게 핫걸로 나왔으니 다른 상사들, 캡틴들 및 크루들과 함께 돌아다니기에는 그런 옷차림은 무리다.

두 번째. 나랑만 다니려 하고 그런 옷을 입은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인스타그램과 틱톡에 영상 및 사진을 업로드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이런 업로드용 사진을 찍는 건? 그렇다. 바로 나다.. 하하. 아주 그냥 본인이 원하는 앵글이며 신발은 가리게 찍어달라, 뭐해달라 요청사항이 하도 많아서 이거 내가 오나전 1인용 사진기사가 된 느낌을 이 친구랑 다니면서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 호구였구나? 이 새끼가 나 호구로 봤네.. 하하라고 말이다.

나도 승무원이 되고 나서 인스타그램을 하고, 스토리로 사진을 업로드했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다른 크루들의 스케줄이나 사진들을 보고 비교하게 되고, 그걸 보면서 내 인생에 과연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과연 나 자신을 위해서 인스타그램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라고,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인스타그램을 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결론은 결코 인스타그램이 내 인생에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고, 차라리 인스타그램을 할 시간에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고 나만의 다른 취미와 인생의 방향을 설계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해서 현재 나는 인스타그램은 일절 하지 않고, 아이디만 다른 크루들에게 친추하라고 알려준다. 물론 친구허용은 안 하고 있고.. ㅎㅎ :) 아무튼, 이러한 나의 생각은 이번에 이 태국 친구를 통해서 더 확실하게 들었다.

함께 다니는 둘째 날에, 갑자기 이 친구가 한숨을 푹푹 쉬면서 표정이 썩어있었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니 남자친구랑 싸워서 헤어졌다고 말하면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이면서 힘들다며 자기 신세를 한탄하는 것이었다. 이 태국 친구가 나쁜 사람은 아니고 착하긴 착하다. 본인이 말하기로는, 세상에 모든 완벽한 사람은 없는데 본인도 완벽하지 못하면서 왜 상대방한테 나는 본인이 보기 싫은 모습을 보면 못되게 구는 건지, 자기는 성격이 강해서 타인에 본인에게 뭐라고 하는 거에 대해서 참을 수가 없다고 말을 했다. 본인은 본인 성격에 문제가 있다며 화를 주체를 못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괜찮다면서 시간이 약이라는 말과 함께 내 경험담도 말해주고, 옆에서 내가 괜찮다고 말해줄 테니 나랑 같이 다니면서 기분이 풀어지도록, 그 사람 생각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말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이켜봤을 때, 이 시간에 좀 더 즐길 걸, 더 놀다 올걸 이라고 네가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고맙다고 말하는 그녀를 옆에 데리고 여기저기 내가 원하는 곳을 포함해서 다녔다. 그렇게 슬픈 표정을 하면서 재미없다는 듯이 투덜투덜 대는 애를 데리고 다니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녀의 사진기사였다. 사진 찍힐 때만큼은 실연을 당하지 않은 멋진 승무원 인생을 즐기는 여자였다. 그러고 바로 인스타그램에 올린 뒤 그녀의 표정은 다시 실연에 가득 차서 곧 울 것만 같은, 입꼬리가 땅바닥을 뚫을 정도로 내려갔었다. 사진이 뭐길래,,, 틱톡이 뭐길래,,, 사람들은 사진만 보고 그녀가 행복하게 바셀을 즐길 거라 생각하겠지?

이 친구와 다니면서 든 생각은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구나. 나는 절대 내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였다. 행복하게 바르셀로나를 즐기고 있었는데, 옆에서 이러고 있으니 나까지 기분이 축축 처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화가 나는 느낌이었다. 바르셀로나만의 공기, 이 분위기며 느낌... 다른 나라에 가서는 절대 못 느낄 이 순간! 이 순간순간마다 옆에서 음습해 오는 그녀의 슬픈 기분과 태도는 바르셀로나를 120퍼센트 즐길 수 있는 나를 100퍼센트만 즐기도록 이끌었다. 더욱더 애매한 건, 이런 그녀도 내게 미안했는지 다니는 내내 미안하다고 했다. 뭐 속으로는 화가 났지만, 그냥 괜찮아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내게 너 되게 행복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당연하지! 내가 언제 바르셀로나에 또 오겠어? 언제 또 바르셀로나를 받을지 모르는데 이 순간을 그깟 슬픈 감정 때문에 낭비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쉽게 화를 내지도 않고, 기분의 업다운이 크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최대한 그런 불안한 감정은 멀리 보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내게 일하는 내내도 그렇고 지금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을 했었다. 나는 말했다. 나는 감정의 업다운이 심하지 않은 사람이니깐 :) 그러면서도 말했다. 마치 경고하듯이. 하지만 나 스스로가 생각했을 때 상대방이 예의가 정말 없거나, 선을 넘거나, 내게 큰 상처를 줬다면 나는 칼 같아서 정말 그 사람은 내 인생에서 없는 사람으로 취급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한번 화가 나면 주변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미친 듯이 화를 내기 때문에 어쩌면 정말 나 스스로가 무섭다고도 생각한다고 말이다. 그러자 그녀는 부디 자기 자신한테 내가 화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다. 하하.. 너도 조금 위험할 뻔했어 친구야 ^^

아무튼, 그렇게 그녀의 삼일짜리 인간 사진기사가 된 바르셀로나 비행이었지만, 정말로 행복했던 비행이었다. 음식을 먹으면서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슬 올라갔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와, 세상에 이런 맛이 있구나. 이런 재미가 있구나.' 하나하나 보고 즐기면서 천천히 맛과 생각들을 음미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게 바로 승무원의 삶이지. 승무원만이 할 수 있는 삶이지. 파크 구엘에서 한국인 단체 투어분들을 만났었는데, 그렇게 남들은 몇 백만 원을 주고 이렇게 여행을 오는데 나는 그 사람들의 십 분의 일의 비용만으로, 심지어 돈을 벌면서 이 나라를 즐기고 있으니 참 감사하고 복 받은 삶이구나라고 말이다. 이래서 선배들이 비행에 중독되지 말라고 하는 건가 싶었다. 이미 남아공도 2번이나 다녀오고, 심지어 밀라노도 2번이나 다녀와서 밀라노도 다음에 또 받는다면 지겨울 것 같다. 밀라노가 지겨워지다니... 승무원이니까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언젠가 바르셀로나도 한번 더 받고, 또 더 받는다면 내가 이렇게 느낀 첫 감동이 과연 똑같이 밀려올까 싶기도 하다. 벌써 내게는 중국과 호주가 너무 지겨운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그 나라를 즐기도록, 연차가 쌓일수록 더 초심을 가지고 비행에 임해야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행이 지겨워지고 힘들겠지만, 내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야 함을 이 기억을 리마인드 하면서 상기해야겠다. 아, 나의 바르셀로나. 언젠가 또 만나쟈 :) Ci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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