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승객일기_홍콩 턴어라운드 비행
외국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바로 확실히 한국사람들보다 외국인들이 본인의 생각과 기분을 표현하는 방식이 더 다양하다는 것이다. 목소리, 표정 그리고 바디랭귀지도 풍부하고. 행복함, 불편함, 귀찮음, 화남 등등.... 살면서 이런 다양한 표현을 한국인들이 내게 보여왔던가? 아니. 확실히 외국인들이 더 다양하고 풍부하다.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한마디로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라 슬픈 외국인노동자의 서러움'이라고 할까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나의 잘 못 알아듣은 귓구멍으로 인해서 중년의 남자 아시안계열 외국인 승객이 대놓고 내 앞에서 한숨을 푹 쉬면서 눈알을 돌리고, 너 어디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봤었다. 하핳...
현재 나는 비행 애기시절을 지나 얼추 걷고, 뛰는 단계를 밟고 있다. 걷고 뛰는 단계를 거치는 와중에 회사는 내게 새로운 다음 단계를, 마치 게임 퀘스트를 주듯이 던져주었다. 그리고 그 게임 퀘스트를 한창 열심히 깨어나가는 초창기 시기에 벌어진 에피소드이다.
해당 비행은 홍콩 턴어라운드(갔다가 바로 되돌아오는 비행)였다. 아직 초짜이다 보니까 내가 일하는 존에 어떤 음료들이 실리고, 어떤 종류의 차가 있는지 아직 숙지가 덜 된 상태였다. 기본적으로 그런 것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이것저것 선배들 따라가랴, 내 할 일 하냐 하면 그 많은 메뉴들을 외우고 있기란 너무 어렵다. 그리고 문제의 그 중년 남자 승객이 콜벨을 눌렀다.
'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안녕. 나 *** 티 좀 줘. (중국어 발음으로 ***에 대해 말씀주심)'
'앗... 죄송합니다만, 다시 한번 말씀 주시겠습니까?'
"***.'
속으로 생각했다. '아이씨, 하나도 안 들리는데? 뭐라고 하는 거지? 무슨 티야?'라고 생각하면서 속에서는 당황했지만, 겉으로는 최대한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면서 손님께 말씀드렸다.
"앗, 죄송합니다만, 제가 중국어 발음에 익숙하지가 않아서요. 제가 혹시 뭘 원하시는지 볼 수 있을까요?"
그러자 그분이 한숨을 쉬시면서 냅다 내 앞에서 눈알을 돌리는 것이었다. 약간 나를 아래로 보고 무시하는 듯한 표정과 눈알 돌리기에 순간 기분이 퍽 상했었다. 그러고 그는 내게 물어봤다.
"너 어디 나라 사람인데?"
"저 한국사람입니다."
그러자 그는 아휴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하더니만 아무 말 없이 그가 원하는 차를 손가락으로 가르쳤다. 아, 그 차...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바로 가져다 드리겠다고 했다. 그렇게 가져다 드리고 나서는 뭔가 서러웠다. 아니, 내가 중국어 발음을 잘 못 알아듣는다고 대놓고 앞에서 그렇게 눈알을 돌리니 세상 섭섭하고 무시하다니. 내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라고 이렇게 대접받아야 할까 싶었다. 그런 뒤, 괜히 그 인간이 회사에 컴플레인을 걸고넘어질까 봐 해서 사무장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말씀드렸다.
'사무장님. 제가 하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방금 좌석 **에 앉아계신 승객께서 중국차인 ###를 요청 주셨는데 제가 잘 못 알아들었습니다. 해서 승객께서 불편함을 표현해 주셨고, 제게 어느 국적사람인지 물어보셨습니다. 사과드리고 바로 가져다 드리 긴 했지만, 추후에 혹시나 저 때문에 컴플레인이 들어올까 해서 공유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다행히 마음이 따듯했던 사무장님은
'나도 모르는 게 많아. 모든 크루가 다 알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 너무 걱정하지 말고 공유해 줘서 고마워. 그리고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그 승객의 태도가 별로인 거니까 너무 상처받고 맘에 담아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이 어떻게 모든 걸 다 알겠니. 그리고 너는 모국어가 영어도 아니고 중국어도 아니잖아. 나도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니야. 나도 한국어 모른단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라고 말씀 주셨다.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괜스레 사무장님의 말씀 뒤에 나도 모르게 뭔가 울컥했다. 내가 모국어가 영어랑 중국어가 아닌 것이 큰 잘못인가? 그냥 본인의 답답함을 눈알 돌리기와 한숨으로 표현한 그 승객의 태도에 문제인거지. 생각해 보니 그 사람이 인천비행에 탑승한다면... 본인은 한국어도 모르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급하게 화장실 체크하겠다고 하면서 화장실로 들어가 눈에 살짝 고인 눈물을 잠시 닦아냈다.
외국인크루로서 가끔 정말 다양한 발음과 각기 다른 속도로 귓구멍에 때려 박히는 영어는 정말 알아듣기 힘든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다른 때보다도 더 집중해서 상대방이 뭘 원하고, 뭘 말하는지 알아차려야 해서 몸에 힘이 빡 들어가는 경우가 발생한다. 내가 외국에 오래 살다오거나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게 있어서 항상 승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은 매번 마주치는 넘어야 하는 산 같은 느낌이긴 하다. 하지만 다행히 오늘처럼 들려드린 경우는 극소수의 경우이고 대부분의 승객들은 내가 잘 못 알아들으면 한번 더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다. 그러면 나는 한번 더 더블 컨펌을 한다. 이제는 짬빠가 쌓여서 가끔은 굳이 그들이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바디랭귀지를 보고 먼저 다가가서 이거 해줄까? 저거 해줄까? 하면 오, 맞다고 하는 경우도 많고.
비행하면서 느끼지만, 아직까지는 내게 있어서 좋은 승객들이 더 많았다. 그렇기에 이렇게 극소수의 예민하신 승객들을 상대하면 그 기억이 더 크게 내게 남고, 맘 속에 남아있고, 타격이 더 큰 것 같다. 하나 이런 상황 속에서 여전히 외국인 크루로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서 겪고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그럴 때마다 서럽기도 하지만, 어쩔 수 있나. 더 내가 노력하는 수밖에.
이상, 외국인크루로서 느끼는 서러움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