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승객일기_ 페낭 턴어라운드 비행
지금까지 일하면서 대부분의 손님들은 정말 다들 좋았다. 아, 물론 어딜 가나 예외는 있지. 한 명은 지가 너무 다음 비행기 일정까지 타이트하게 잡아놓고서는 비행기가 어쩔 수 없이 연착이 되자, 자기 짐이랑 어떻게 할 거냐면서 따지고, 본인은 에미레이트를 자주 이용하는데, 에미레이트가 너희보다 나은 것 같다면서 대놓고 디스 하셨던 손님,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하는 인도 승객들, 그리고 오늘 들려드릴 한 노란 머리 서양인 아찌이야기이다.
해당 비행은 작은 비행기로 갔었던 턴어라운드 (갔다가 다시 바로 되돌아오는 비행)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이 비행에서 내가 맡은 포지션은 트레이닝을 마치고 이제 막 2번째로 일하게 된, 아직은 걸음마 단계였던 비행이었다. 사실 이 비행에서 그 포지션으로 일할 것이라는 생각은 못 했지만, 그 비행의 리더가 나랑 함께 이전에 비행했었던 매우 좋은 사람이어서 나를 연습시켜 주시겠다며 일부러 넣어주신 것이었다. 그나마 리더가 좋은 사람이라서 다행이었다.
손님들이 탑승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일하는 존의 승객들의 식사메뉴를 받아야 하는 일이었다. 회사의 내부 규정 상 아무래도 VIP들 먼저 식사 초이스를 드려야 하기 때문에 일반 승객들에게 다가가 천천히 받으라는 리더의 지시에 맞춰서 식사 오더를 받았고, 하지만 중간에 나는 점점 늘어나는 인기 메뉴의 숫자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아, 이러다가는 vip들의 식사 초이스가 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래서 늦게 탑승하는 VIP들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며 다시 리더에게 돌아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대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VIP보다 먼저 탑승했었던 이 서양인 아찌가 본인이 먼저 탑승했는데, 내가 중간에 돌아가고 VIP들이 탑승하자 그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간 것을 보고서는 기분이 언짢았던 것.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그가 원하는 밀 초이스도 이미 다 떨어진 상태였었다. 그러자 그가 표정이 매우 굳으면서 잘 들리지도 않게 빨리 말하면서
"거봐.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너 내가 저 사람들보다 먼저 탑승했는데 왜 내가 원하는 음식은 없어? 너 나 차별하는 거지? 저번에 비행에서도 이러더니 또 그러네? 너 꺼져. 니 얼굴 보기도 싫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순간 얼음이 되어서 겁에 질려버렸는데, 다행히 이 모습을 내 남자 선배가 보고서는 나에게 무슨 일 있냐면서 나를 안내해 주고서는 걱정하지 말라면서 본인이 사과하고 해결하겠다면서 도와주었다. 그리고 이 상황을 리더에게 대신 보고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착한 선배였다. 얼굴을 보고 대놓고 비아냥거리면서 꺼지라면서 내가 왔다 갔다 할 때마다 경멸스럽다는 눈빛을 보내는 그를 보면서 정말 그 캐빈에는 나가서 일을 하기가 싫었다. 우리 회사 규정을 그렇다고 손님한테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고... 손님은 아무것도 모르지.. 아무것도 모르는 그가 내게도 사정이 있는데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대놓고 그렇게 나를 응대하니 기분이 너무나도 더럽고 눈물이 왈칵 눈에 그렁그렁거렸다. 그렇게 비아냥 거리던 서양인 아찌는 아무것도 안 먹겠다면서 그랬다. 그러면서 니 이름이 뭐냐고, 니 이름이랑 니 리더 이름 적어서 나한테 줘. 나 회사에다가 기분 더러워서라도 적어낼 거야.라고 말했다.
아니 뭐 만 하면 이름을 적어서 달래. 내가 이런 취급까지 받으면서 해외에서 이러고 일을 해야 하나? 정말 짜증이 났지만 한 편으로는 정말 우울했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그놈의 밥밥밥. 밥 안 먹으면 죽나? 싶었다. 다행히 리더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서 걱정하지 말라면서 내가 나가서 설명드리겠다면서 그녀는 식사 서비스가 끝나고 그 서양인 아찌에게 무릎 꿇고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사과를 해주셨다. 그러고 그녀는 내게도 사과해 줬다. 내 지시로 인해서 네가 당황했을 거라 생각하니 나도 너무 미안하다며 나도 이 일을 통해서 많이 배웠다고 말해주셨다. 그러면서도 내게 이런 일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시고서는 너무 맘에 담지 말라고 해주셨었다.
시간이 지나서 그 아찌는 화가 좀 풀려 보였다. 내게 화장실이 어딨 냐고 물어보시길래 아, 이쪽에 있다면서 알려주니 아까보다는 얼굴 표정도 많이 누그러졌었고, 고맙다고 내게 말도 했었다. 그래.. 그나마 다행이네. 하고 생각하고 있었을 때, 이제 착륙 준비를 하는데 리더가 내게 오더니 그래도 저 서양인 아찌, 착한 사람이네.라고 말해줬었다. 내가 왜?라고 말하니 너랑 내 이름 적힌 쪽지 그냥 되돌려주면서 자기가 너무 예민했던 것 같다면서 미안하다고 서로 주먹을 쥐고 악수처럼 치자는 시늉을 해줬다면서 내게 그 이름이 적힌 쪽지를 돌려줬어라고 말했다. 본인도 뭔가 미안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다행히 일은 조용히 잘 넘어갔지만, 그럼에도 내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정말 죽을죄를 지은 느낌이었고 그게 뭐라고... 대놓고 얼굴 마주 보고 있는데 경멸하듯이 쳐다보고 무시하고 꺼지라고 말했던 그 사람의 말이며 표정이며 모든 분위기가 참 씁쓸하면서도 이 직업을 과연 오래 해야 할까라며 터덜터덜거리고 집에 왔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뭐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대놓고 못되게 구셨던 손님은 없었던지라 좀 그렇다. 서비스직에 그래도 오래 일하고 있다면 오래 일하고 있지만, 역시 사람을 대하는 일은 참 어려운 것 같다. 그것이 내 친한 사람이든, 연인이든, 손님이든 말이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다 어렵긴 하다만 사람을 상대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란... 여전히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에게는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서비스직은 참 어렵다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