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짜장이란
졸업식날, 생일날, 아빠 월급날.... 축하가 필요한 자리엔 짜장면을 먹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싸우고 난 후 아빠는 나를 데리고 가서 짜장면을 사주셨고 혼자서 아무 생각 없이 맛있게 먹었던 기억도 있다. 시장 가는 엄마를 항상 따라나섰던 것도 장보고 먹는 짜장면을 기대했기 때문이리라.
고소한 기름 맛과 달콤함이 젓가락을 멈출 수 없게 만들고 중간중간에 먹는 아삭하고 새콤달콤한 단무지로 느끼함을 잡아 준 뒤 다시 면발을 흡입한다.
어른이 되서는 면을 다 먹고 난 뒤 공깃밥을 말아 밥알 하나하나에 정성스레 남은 소스를 비벼, 곁들여 나온 배추김치에 입안을 씻어내듯 먹고 나면 행복한 포만감에 멍해지곤 했다.
그런 것이었다. 짜장은 좋은 날 서로를 축하해주고 싸운 뒤 스스로를 위로하는 작은 선물이 되었다. 피곤할 때 나에게 힘이 되는 자양강장제였고 부부싸움 한 뒤 맛있게 먹는 아들을 보며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내 인생의 최고의 짜장은 어릴 적 먹었던 짜장이다. 추억 속의 짜장, 고소한 기름 맛과 달콤 짭짜름한 춘장 맛에 기분이 좋아지고 짜장맛이 베어든 쫄깃한 면발을 입안 가득 넣어 먹곤 했다. 푸석한 감자는 싫어했지만 짜장 속 감자는 참 좋아했다. 쭉쭉 올라가는 텐션을 살짝 낮춰주며 살며시 기대게 만드는 그 맛은 아직도 생각이 난다.
추억은 기억 속에 포장되어 그 맛을 그대로 재현할 순 없지만 짜장을 볶는 것은 별다른 센 불이 필요 없으니 식당에서만 먹던 맛을 집에서도 만들어 볼 수 있다
고소한 돼지기름이 분위기를 결정한다
비계가 포함된 돼지고기 전지나 후지를 준비한다. 식용유로 약한 불에 적당히 딱딱해질 때까지 볶아 돼지기름을 뽑아낸다. 이 기름이 짜장의 향을 결정한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고기를 충분히 볶지 않고 끓이면 고기에서 냄새가 날 수도 있으니 약간 딱딱해질 때까지 굽는다는 느낌으로 볶아준다.
간 생강과 대파를 온도가 낮은 불에서 서서히 볶아 향을 내고 간장을 넣어 '촤악'소리 나게 끓여 잡내를 없앤다. 사각형 모양으로 썬 양파와 양배추를 투명해질 때까지 볶아주면 양파 특유의 매운맛이 단맛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연한 갈색이 될 때까지 볶아 주면 진한 향까지 뽑아낼 수 있다. 여기에 좋아하는 야채가 있다면 호박을 넣어도 좋고 삶아 놓은 감자를 넣어도 좋다. 삶은 콩을 넣어 건강하게 만들 수도 있다. 흰색 도화지에 색칠하는 것처럼 먹고 싶은 것들을 넣으면 된다.
센 불에 튀기듯 볶아놓은 춘장을 넣어 고루 섞어주고 육수는 원하는 만큼 넣은 후 소금으로 마지막 간을 하고 과하지 않게 설탕을 첨가한 후 간 마늘을 살짝 넣어 국처럼 끓이고 전분을 풀어 원하는 농도로 맞춰 주면 된다. 전분을 풀 때는 불을 끄고 물전분을 넣어준 뒤 빠르게 섞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뭉치는 부분이 없다. 부글부글 끓여 주어 전분이 익을 때까지 기다린다. 적당한 농도가 나오면 마무리한다.
짜장의 단맛, 그것에 대한 고민
일반적으로 단맛은 설탕과 물엿 그리고 올리고당을 많이 사용한다. 설탕에는 부드럽고 날카로운 맛이 있다. 올리고당에는 부드럽게 이어지는 단맛이 있고 물엿에는 묵직하게 눌러주는 맛이 있다.
달다. 달짝찌근하다. 달큼하다. 달달하다. 여러 가지 표현이 있는 것처럼 단맛도 가지가지다. 애호박처럼 부드러운 단맛도 있는가 하면 감자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단맛도 있다. 늙은 호박에서 올라오는 묵직한 단맛도 있고 겨울 무가 주는 시원한 단맛도 있다.
과일이 가장 많은 단맛과 향을 갖고 있지만 향이 강해 자칫 음식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망칠 수도 있다. 다른 맛들을 받쳐줄 수 있는 배경이 되어 있는 듯 없는 듯 마지막에 살짝 치고 빠질 때 혀끝에서 느껴지는 궁금함에 또 한 번 먹게 되는 것처럼 과하지 않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단맛, 위험하지만 조심스러운 만남
아이들이 초콜릿을 먹기 시작했을 때 간식으로 나온 고구마는 쳐다도 안보는 것처럼 진한 단맛에는 끊을 수 없는 중독성이 있다. 그렇다고 진한 단맛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치고 나오는 단맛이 아닌 야채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단맛을 좋아한다. 야채마다 맛이 다르듯 갖고 있는 단맛도 다르다. 각자 저마다의 향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런 단맛은 감칠맛이 되어 음식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단맛을 내기 위해 설탕을 넣는 것은 쉽지만 톡 튀는 설탕의 단맛은 자칫 전체적인 풍경을 해치기 쉽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물이나 기름을 이용해
향을 뽑고
어울리는 재료들을 한데 섞어
맛을 끌어내고
적절한 시간을 들여
하나가 되게 만든다
뚝뚝 끊기는 맛이 아닌
산등성이처럼 부드럽게 굴곡진
맛의 지도를 그려나가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