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역국을 좋아한다.
닭고기로 담백하게 끓인 미역국도 좋아하고 건새우를 넣어 깔끔하게 끓인 미역국도 좋아하지만 진하게 끓인 소고기 미역국을 가장 좋아한다.
20살에 서울로 올라간 광주 촌놈이 생일날이면 가장 그리워했던 음식이 바로 미역국이다. 레시피에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이상하게도 어머니가 해주신 미역국의 맛은 따라올 수가 없었다. 아마도 우리 아들 건강하게 자라라고 새벽부터 일어나 미역을 불리고 밥을 안치고 정성스레 고기를 볶아 육수를 내시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나 싶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우리 아들 무럭무럭 자라게 맛있어져라' 이렇게 기도를 하시며 끓이셨을까? 생일 아침 날, 부지런히 아침밥에 소고기 미역국을 끓여 주셨을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두 아이의 아빠로 살아가고 있는 나는 아들의 생일날 피곤하다는 핑계로 미역국을 끓여주지 않고 출근하는 날도 많았다. 끓여도 바쁘니까 대충 끓여 놓고 가서 일까? 큰 아들은 미역국을 싫어한다. 생애 첫 미역국이 별로였나 보다. 이 녀석들은 많은 것들을 인생에 처음 접하는 것일 건데 나쁜 기억을 심어 준거 같아 요리사 아빠로서 미안한 맘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럼 그 미안한 마음을 담아 아가모토의 눈이 있다고 하고 시간을 되돌려 첫째의 기억 속에 맛있는 미역국을 끓이러 가보자.
알면 쉽지만 모르면 엉망이 되버리는
소고기 미역국
먼저 미역을 불려보자. 여기서 흔히들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미역을 찬물에 너무 오래 불리거나 뜨거운 물에 미역을 불린다는 것이다. 미역국의 시작은 미역의 손질에 있다. 잘 불려야 맛있는 미역국이 탄생하는 것이다. 찬 물에 미역을 불리는데 너무 오래 불리면 끓이고 나서 미역이 퉁퉁 뿔어 식감이 흐물흐물 해지기 때문이다. 칼이 들어갈 수 있는 정도 까지만 불리고 나서 1센티 정도의 작은 크기로 잘라서 준비한다.
소고기를 간장, 후추로 밑간을 하고 참기름을 두른 팬에 볶아준다. 어느 정도 익었으면 미역을 함께 넣어 볶는다.
'뽁... 뽀뽁.... 뽀 보복....... 뽁뽀복보보복뽁.....'
진한 암녹색이던 미역이 뽁뽁이 터트리는 소리를 내며 연한 녹색으로 변할 그 때, 육수를 넣어야 할 타이밍이다. 육수는 야채 육수, 정제수, 멸치육수를 써도 된다. 맹물보다는 야채 육수가 맛있고 야채 육수보다는 멸치육수가 더 잘 어울린다
미역국은 오래 끓이는 국이 아니다
육수를 넣고 나서는 최대 화력으로 끓기까지 불멍을 때리면 된다. 절대로 언제 끓나 저어주면 안 된다. 이상하게 빨리 끓어라 라고 주문을 외우고 저어 줄수록 안 끓는다. 희한한 일이다. 대신에 우리는 멍 중에 최고 멍인 불멍을 할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다음은 요 녀석이 알아서 해주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불의 신은 청개구리 심보를 가지고 있나 보다.
불멍의 시간이 끝이 나면 마지막으로 간 마늘로 향을 내고 국간장과 소금으로 간하면 끝이 난다.
국간장과 소금의 비율은 1대 9 정도가 적당한 듯하다. 간장 향을 좋아한다면 간장을 더 늘려도 좋다. 본인의 선택이다. 참고로 진한 국물을 먹고 싶다면 마트에서 파는 사골육수를 조금 섞어서 끓이면 된다(너무 많이 넣으면 느끼해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미역 향을 해치지 않을 정도의 간장 향이 살짝 날듯하다가 사라졌을 때 미역 향과 함께 간간한 국물 맛이 쭈~~ 욱 이어지다가 사라질 때 조금 싱거운 듯한 느낌으로 간을 하면 된다.
막이 생기다
미역국을 한 솥 끓여 놓으면 표면에 막이 생긴다. 불순물이라 생각되서 계속 걷어 내었다. 그러면 또 생기고 걷으면 또 생기고 또 걷어내고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나 모르겠다. 오로지 불순물은 안 좋은 것이라는 생각만 있었나 보다
표면에 생긴 막은 안쪽의 국물이 서서히 식게 만들어준다. 미역국의 진한 미역 향 또한 이 시점에서 만들어진다
간혹 육개장을 끓일 때 간을 보고 마무리했을 때보다 끓이고 난 후 한 김 식혀 다시 끓여 먹어 봤을 때 간 볼 때는 느껴지지 않았던 고사리와 숙주의 향이 폭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야채의 섬유질 속의 감칠맛은 일정 시간을 일정 온도에서 있어야 맛이 뽑아져 나오나 보다.
한식을 배우던 시절, 조림을 하시다가 불을 뭉글하게 줄이면서 하신 양실장 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야채가 재료에 스며들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야'
내 가슴속에 불덩이도 뭉글하게 약불로 줄여야겠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