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김기 청소

덕지덕지 찌든 때를 없애다

by 까나리

튀김기는 하루만 청소를 하지 않아도 기름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다.

아스팔트에 껌 떼는 도구로 빡빡 밀어 보기도 하고 오븐 클리너로 뿌려 녹여도 보지만 혹여나 한 달 정도 지난 기름때라면 머리에 붙은 껌딱지처럼 문지를수록 번지기 마련이다.


일명 돈가스 튀김기라고 불리는 15리터 기름이 두통 들어가는 사각형의 튀김기는 일정 온도를 유지하기에 좋다. 하지만 정말로 큰 단점이라면 찌꺼기가 아래로 계속 가라앉는다는 것이다. 이 찌꺼기가 가라앉은 것은 씻어 내기 힘들다. 그때그때 하지 않으면 기름도 빨리 상한다. 우리 마음의 찌꺼기도 그러겠지...


기름은 아래로 쭉 빼서 망에 걸러 찌꺼기를 거르고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기름을 제거하면 간단하게 청소가 되지만 사람 때문에 상해버린 마음속 찌꺼기들은 어떻게 청소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운동을 해보기도 하고 음악을 들어보기도 하고 퇴근 후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지만 다시 출근을 하면 몸안에 퍼졌던 찌꺼기들이 우~~ 웅 소리를 내며 하나로 뭉쳐지는 것 같다.

가슴에 턱 하니 걸려 침을 삼키고 숨을 쉴 때마다 목에 걸린 가시 마냥 날카롭게 거슬린다.


방법이 잘못된 것이다.

마음속 찌꺼기들은 없앨 수가 없는 것이다.

잠잘 때 잘게 부서져 퍼져 있다가 눈을 뜨면 생각의 흐름을 따라 점점 모이는 것이다

지나온 감정의 길을 따라 이리저리 쿵쿵 부딪히며 돌아다닌다.

그리곤 커다란 봉에 묶여 휘날리는 깃발 끝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려 발악하는 개미처럼 어찌할 수도 없이 뭣이 중한지도 모른 채 '놓으면 죽는다'라는 본능에 따라 살아가게 된다.


방법이 잘못된 것이지 없는 건 아니잖아

내 맘속에서 만들었다면

내 맘대로 흩어지게 만들 수도 있잖아

그러면 없애진 못해도 끌려다니진 않을 거니까


멍 때리기


방울방울 올라오는 기름방울을 보다 보면 멍 때리기가 참 좋다.

빵가루 튀김요리는온도가 일정하니 초반에 정신을 번쩍 차리고 튀김을 넣고 부르르 올라오는 기름에 당황하지 않고 기다리다 보면 부글부글 올라오던 방울이 뽀글뽀글 올라올 때 튀김 조리를 넣고 겹치지 않게 뒤집어야 한다.

맘이 급하여 못 참고 건드리게 되면 튀김옷에 꽃이 피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끔 한 번 씩 뒤집어 주고 타이머의 삐~삐~ 소리를 기다리면 된다. 대략 2분 30초에서 고기 두께에 따라 3분 정도의 시간이 걸리므로 못해도 1분간은 일할 때 허가받은 멍 시간이다. 이것을 하루에 20번 정도 반복하면 하루에 20분은 멍 때리다 마음이 청아해진다.


멍청해지는 것이다.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초점이 없어지고 나를 보고 있어도 그 너머를 보고 있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나쁜 말이 아니다. 멍청해져야 부술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을 없애야 집중할 수 있고 집중해야 비로소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뜬 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7년 전 춘장을 볶던 때가 생각난다. 춘장을 볶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작장면이 자장면, 짜장면으로 변한 것처럼 작이라는 말은 튀긴다는 의미이다. 춘장을 뜨겁게 달군 기름에 튀기듯이 볶아내서 짧은 시간에 향을 뽑고 잡내를 없애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집된장을 은근한 불에 오래 끓이면 구수한 감칠맛이 나는 것처럼 약한 불에서 30분 이상 볶아내는 방법이 있다.


그때는 집된장 끓이는 스타일로 오랜 시간 볶다 보니 처음에는 타지 않게 계속 저어주는 것에 집중하다가 15분 정도 흐르면 손은 계속해서 저어주는 것에 익숙해지고 몸은 서있지만 앉아 있는 것처럼 반복되는 리듬에 졸음이 쏟아지게 된다.


`꾸벅꾸벅` 돌다 보면 어느새 춘장은 맛있게 익어있다.


손 끝의 느낌은 멍해진 순간에도 살아있어 팬에 달라붙어 타는지 아니면 잘 볶이고 있는지 알고 있고 검은 용암처럼 부글거리는 춘장은 구수한 냄새와 함께 어느새 부글부글에서 뽀글뽀글로 변해있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필연처럼 완성된 것이다.


꾸벅꾸벅이란 단어를 보니 갑자기 설화 속 벅구가 생각난다. 벅구가 백구가 되자 않았냐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건 그냥 나만의 생각이고 설화 속의 벅구는 사람이 되고자 했던 '다 계획이 있었던 ' 친구다.

백구야~~~ 백구야~~~(어렸을 적 하얀 강아지는 모두 다 백구야라고 했던 이상한 기억이 있다)

뿔을 계속 달고 사는 인생이 힘들겠지만 아무것도 안 먹고 마늘만 100일 동안 먹으면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에 화가 나서 마늘 빼고 다 먹어버린 벅구를 나무랄 수는 없다. 참을성이 없어 사람이 되지 못했지만 우리에게 삶의 또 다른 길을 보여주는 것 같아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새해면 우리가 하는 금연 약속처럼 차라리 벗어날 수 없는 굴속에서 변해버린 마음에 마늘 빼고 다 먹고 살쪄버린 나처럼, 벅구는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그냥 될 대로 되라는 근성으로 '내버려두어 브러'를 외친 것이다. 용감한 것이다.


신을 미워하고 채찍질할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사랑했기에....

흔들리고 흔들려도 변하지 않는 현실에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도 자신을 사랑했기에 될 대로 되라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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