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 숙주볶음

자유롭고 싶은 작은 발걸음

by 까나리

볶음요리의 꽃은 야채 볶음이다.


야채의 종류에 따라서 볶는 방법은 다르나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 빠르게 볶아내어 영양손실을 줄이면서 아삭함을 살리는 것이 주목적이다. 야채 내부의 수분에 의해 내부가 익어가는 셈이다. 겉은 볶아지면서 안은 쪄지는 것인데 씹었을 때 느껴지는 아삭함과 재료 고유의 단맛과 향을 먹는 것이다.


뜨겁게 달군 팬에 첫 기름으로 코팅을 하고 불을 끈 후 파 기름을 살짝 넣은 후 파와 마늘을 넣어 향을 낸다.

간장을 팬 가장자리에 살짝 뿌려 치이익 하며 가운데로 모이면서 잡내가 살아지고 향이 나면 정종을 넣어 잡내를 완전히 제거한다. 손질한 숙주를 넣고 빠르고 정확하게 왼손은 계속해서 팬을 짧게 짧게 끊어 돌리고 둥글게 돌아가는 웍질에 불꽃과 연기가 팬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한다.


간 볼 시간이 없다.


빠르고 정확하게. 간을 보지 않고 엄지와 검지로 소금을 한 꼬집 집어넣는다. 부족하면 한 번 더. 시간이 부족하므로 눈으로 간을 본다. 불을 끄는 순간 야채에 물이 나오기 시작하고 아삭한 야채볶음이 아닌 숙주 무침으로 변해버린다.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한 번 더 넣을까 하고 집는 순간 아니다 싶어 한 꼬집을 내려놓는다.

적당히 익으면 숙주의 비린내를 날려 줄 식초를 넣고 두어 번 볶다가 마무리한다.


잘 볶인 숙주볶음은 팬에 달라붙은 흔적이 없고 접시에 올리기 위해 국자에 담는 순간 아삭함이 눈에 보인다. 다르게 표현하면 숨을 들이쉬고 멈춘 후에 조금씩 숨을 내쉴 때 가슴이 서서히 내려가는 모양처럼 야채볶음의 순이 서서히 죽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묵직함이 국자 끝에 남아 있다. 요리사만 볼 수 있는 숨 쉬는 숙주의 마지막 모습이다.


한 몸 불사른 숙주는 센 불위에서 볶아지며 수분을 자신의 몸안에 가두어 놓았다가 열기가 빠지면서 서서히 수분을 밖으로 배출하기 시작한다. 담백한 단맛과 고소한 짠맛이 볶음 향을 타고 혀를 자극하기 시작한다. 이것을 시작으로 기분 좋은 아삭함이 사라지는 맛들을 계속 상기시킨다. 그러면 숨길 수 없는 젓가락질이 시작되는 것이다.


눈으로 간을 봤으니 혹시 몰라 간장과 꽃빵을 준비한다. 싱거우면 찍어먹을 맛간장이고 간간했을 때 싸 먹을 꽃빵으로 손님을 대접하고 내 부족함을 위로해본다.


요리에는 왕도가 없다


요리에 별 재능이 없어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는 것이 너무도 힘들어서 그때마다 이직을 꿈꿨었다. 보험 하는 형을 따라 보험 영업직 상담도 받아보고 택배 일을 하기 위해 영업용 트럭을 사기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결국엔 요리로 돌아왔지만 돌아오고 정신을 차릴 때마다 드는 생각은 수 없이 반복되는 경험에서 레시피가 아닌 느낌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감각을 깨우고 감을 키워야 하기에 순간순간 변화하는 불의 세기와 타이밍, 조미료의 첨가 시점에서 오는 맛과 향의 변화를 관찰해야 한다.

때론 시간을 들이는 조림처럼 소스의 첫맛을 보고 조려졌을 때의 맛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만이 그리는 맛의 지도를 찾기 위해 겪는 걸음마와 우연이 결국엔 내 것이 되는 것이다. 남이 주는 레시피는 레시피일 뿐이다. 내가 그리는 맛이 없다면 원하는 맛도 없을 것이다. 결국엔 조미료에 의지하게 되고 스스로 무너지게 된다. 집중하는 순간엔 배울 수 있지만 그저 습관대로 하다 보면 무료해지는 것이 요리사이다. 지쳐버린 것이다.


그럼 지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드라마 미생 중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네가 종종 후반에 무너지는 이유는 대미지를 입은 후에 실수한 후 복구가 더딘 이유다. 체력의 한계 때문이야.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되고 그러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면 승부 따위는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네 고민을 충분히 견뎌 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돼'


빠르게 흘러가는 요즘, 남들도 다 하니 뒤처질까 봐 공부도 하지 않는 주식도 해보고 투잡을 한다고 인터넷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하고 포인트를 쌓는다고 이곳저곳도 기웃거려 보지만 결국엔 몇 달 해보지도 못하고 접고 말았다. 그러다가 멘붕이 와서 티브이를 멍하니 보다가 드라마 미생까지 보게 됐다. 결국엔 이런 멋진 대사를 마주하고 다시 운동을 열심히 해보자라는 결론이 났지만 이것도 얼마나 갈 건지는 나도 모른다.


사람들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배워야 한다고 하지만 시대의 흐름이 빠른 건지 내 생각이 느린 건진 몰라도 내 리듬에 맞지 않으면 결국 탈이 나게 된다는 걸 주식으로 돈을 날리고 인터넷으로 투잡 하다가 눈이 아파 병원을 가서야 들게 된 생각이다.


너무 열심히 살면 몸이 아픈 40대가 되고 나니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열심히 사는 것인지, 열심히 사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라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빠른 강줄기를 타기 위해서는 순간순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민첩한 카약 같은 배가 필요하고 대서양을 건너 태평양에 이르기 위해서는 제법 덩치고 크고 무게감 있는 배가 있어야 한다.


내가 느끼는 세상은 너무나도 빠른 데 나는 작은 뗏목만이 전부라면 가파른 세상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는 작은 연못에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그곳에선 큰 바다에는 없는 작은 물고기도 있고 넓은 바다엔 없는 부레옥잠과 물방개, 소금쟁이가 있으니 더 이상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올챙이도 있다. 알까지.....


남들처럼 살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무시하란 말은 아니다. 오히려 나라는 사람에게 맞는 것을 찾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것이 맞는 걸 수도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일직선으로 사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누군가는 경제적인 자유를 위해서 젊음을 투자하고 마음에 안정을 위해서 고독한 사색을 계속하기도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건강을 위해서 밤 낮 없이 걷는가 하면 곧 있을 시험을 위해서 코피를 쏟으며 공부하기도 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삶을 그리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현실을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그날을 위해서 애쓰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 현실 속에 살고 있으니 벗어날 순 없어도 재미를 찾을 순 있다


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집중하다 보면 다른 것이 보이지 않고 오로지 한 가지 만을 생각하게 된다. 현실을 벗어나기에 이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 아무 생각 없이 보고 관찰하고 기록하기만 하면 된다.


야채 볶음은 가장 집중도가 높은 분야다. 자칫 한 템포만 늦어도 전체적인 색감을 버리게 된다. 배경색이 달라지는 것이다. 집중도가 큰 만큼 에너지 소비도 크다. 하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모든 요건들이 갖춰져 만들어진 볶음은 그만큼 만족감도 크다.


집중은 나를 자유롭게 하는 작은 발걸음이다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다 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고 세상이 넓어진다. 완전한 자유는 없지만 찰나의 순간 집중은 그 시간만큼에 자유를 선물해준다. 그만큼 행복의 기억이 추가되고 더해진 만큼 자유로워지며 부담이 없어진 만큼 새로운 욕심도 생겨난다. 하지만 뭐든지 과하면 독이 되듯 적절한 쉼표는 필요하다.

코코샤넬의 명언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친다.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마지막에 넣은 한 가지가 모든 것을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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