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을 글자로 표현해보라' 한다면
달다, 짜자, 싱겁다, 쓰다, 맵다 등등 단편적인 하나의 단어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식감부터 향까지 모든 것이 아우러진 후에야 '맛을 본다'라는 것이 시작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처음에는 부드럽게 들어왔다가
강렬하게 퍼지는 생굴의 바다향에서부터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오는
진한 카카오향이 꼬리를 물다가
끝에 치고 올라오는 씁쓸함
맵고 아삭한 느낌의 배추에
씹을수록 시원해지는 청량감 있는
김치 맛
시원한 얼음을 곁들인 레몬 속
질리지 않는 새콤함과
곁들여지는 과하지 않는 단맛
오렌지에서 느껴지는
톡톡 튀는 식감과
그 뒤를 따라오는 과즙의 밀물
날카롭게 다가와
안개처럼 사라지는
청양고추의 매콤함
가슴속에서부터 묵직한 뜨거움이 용솟음치며
머리 꼭대기를 때리는 듯한
사천고추의 매서움
적당히 매운 듯하다가
단맛이 부드럽게 감싸주고
마지막에 혀를 빼꼼 내밀게 만드는
태양초 고추장의 매운맛
태안 자염에서 느껴지는
적당한 짠맛과 단맛까지
이런 맛들을 오미라는 한계 속에
넣어둘 수 있을까?
맛을 글자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맛의 영역이 언어의 영역보다 넓은 것이다
맛을 고민하던 중 그렸던 지도
일차원적인 위의 지도가 나타내기에는
맛의 표현 영역은 훨씬 넓을 것이다
단순한 곡선이 아닌,
다양한 온도에서 변화하는 재료의 맛에 따라
더욱더 입체적인 표현이 필요할 것이다
같은 재료라도
불로써 하나가 됐을 때와
물로써 하나가 됐을 때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서로에게 스며드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조금 더 복합적인 맛이 나는
조림 요리처럼
어릴 적 향수를 곱씹게 하는 엄마의 손 맛이나
빛바랜 앨범 속 추억을 끄집어 내게 만드는 음식을
만나면 무장해제가 되듯이
맛에 추억과 향수가 더해지게 되면,
억만금을 주고도 먹을 수 없는
보고 싶은 할머니의 된장국 같은
단순한 맛, 그 이상이 되게 된다
맛이란 후각뿐만 아니라 시각과도 연결되어 있고 눈으로 먹고 혀로 느끼며 이빨로 씹으며 목으로 넘겨 소화 후에 느껴지는 포만감까지
이 모든 것을 맛의 영역으로 넣는다면
맛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 하나는 존재한다
'맛 내기란 단순하다'는 사실
하나의 세상에 또 다른 세상을 섞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과정은 단순하고
결과는 오묘하다
만화책 베가본드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지나온 길이 넓은 만큼 너는 누구보다도
다른 사람에게 너그러울 수 있을 거야 "
맛을 낸다는 건
결승선에 '누가 먼저 왔는가' 보다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갖고 왔느냐'가 중요한,
요리사의 살아있는 역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