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밥의 화려한 변신, 볶음밥
씹을수록 올라오는 고소한 단맛
오랜 주방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빨간 날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한다는 회의감이었다. 어린이 날엔 엄마 아빠 손을 잡고 탕수육에 짜장 짬뽕을 먹으러 오는 손님들로 정신없이 바빴던 탓에 정작 내 가족은 돌보지 못했었고 크리스마스이브엔 넘쳐나는 손님들로 12시가 다 돼서야 집에 돌아가 불 꺼진 집에 조용히 씻고 잠을 청한 적도 있었다.
요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밤늦게 끝나고 집에 오면 11시가 다 돼가는 시간이었고 그때까지 아빠를 기다린다며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나 때문에 성장이 느린 거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었다.
쉬는 날이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이들과 노는 것보다는 이불속에 푹 파묻혀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런 미안한 마음에 해줬던 아빠표 스팸 볶음밥. 아이들에겐 추억의 음식일 것이고 나에겐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는 음식인 셈이다.
아빠 스팸 볶음밥 해줘~~~
우리 집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볶음밥은 아빠표 스팸 볶음밥이다. 중식 웍에서 강한 불이 있어야만 가능한 건 아니다. 불향이 스며든 맛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고소한 맛을 낼 수 있기에 천천히 해보자
밥이 남으면 밥을 얼려 놓는다. 나중에 혹시라도 죽이나 볶음밥을 해 먹기 위해서이다. 전자레인지에 녹이면 간단하니, 넓게 펴서 얼려 놓으면 녹이는 것도 쉽다. 이렇게 밥은 준비됐다.
2인분용으로 계란을 3개 준비한다. 젓가락으로 탁탁 탁탁 휘 저어 풀어준 뒤 식용유를 두른 팬에 넣고 스크램블을 만든다.
계란을 익힐 때 낮은 온도에서 익히면 기름을 먹은듯한 부드러운 스크램블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볶음밥을 위해서라면 꼭 뜨겁게 달궈진 기름에 계란물을 부어서 만들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치~~~ 익, 뽀보 보복!! 소리를 내며 부풀어 오르는 계란은 낮은 불에서 만든 스크램블과는 비교할 수 없는 탄력을 만들어낸다.
이 계란에 밥을 넣고 살짝 소금 간을 한 뒤 약한 불에서 밥알이 투명해지는 느낌이 들 때까지 계속 볶아준다. 눌어붙어 타지 않게 국자를 계속 저어주며 뭉치는 밥과 계란이 없도록 정성을 들인다.
잘게 썬 갖은 야채와 바싹 구워 잘게 자른 스팸을 넣고 마지막에 송송 썬 대파를 넣어 향이 날 정도만 더 볶는다.
'와~~~ 스팸 볶음밥이다!!!'
'맛있어? 먹을 만해?'
' 응. 아빠 볶음밥 최고야. 맨날 먹고 싶어 '
맛있게 먹어주는 애들을 보면 마음이 뿌듯해진다.
약한 불에서 살살 볶아내듯 찾아낸 감춰진 고소한 매력
볶음밥의 매력의 밥이다. 약불에서 혹은 센 불에서 타지 않고 볶아지면서 속 안에 감춰져 있던 단맛이 나온다. 씹을수록 맛있는 단맛에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 밥알을 받쳐주는 계란처럼 힘이 되어주는 단백질 같은 존재가 있는가 하면 다진 양파, 당근, 대파 같은 사람도 있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시기할 필요가 없다. 주인공은 조연이 없으면 빛이 날 수 없으니까.
주재료는 누구나 결정할 수 있다. 소고기가 될 수도 있고 닭고기가 될 수도 있다. 전날 먹다 남은 통닭이 될 수도 있고 내일 먹기 위해 아껴둔 김치찌개용 참치가 될 수도 있다. 부재료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냉장고 속 야채가 있다면 바로 잘게 썰거나 얇게 채 썰어 넣으면 되고 쓰다 남은 숙주가 있다면 더 맛있는 볶음밥이 완성될 것이다.
일단 나만 보자
어떤 날은 닭고기가 당기는 날이 있고 또 어떤 날은 소고기가 당기는 날도 있다. 이도 저도 싫어 담백한 달걀 볶음밥에 간장으로 향을 내어 참기름과 깨를 듬뿍 쳐서 먹고 싶은 날이 있다.
닭이냐 소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 닭이 소가 될 순 없고 소가 닭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온전한 나이기를 꿈꾸기만 하면 된다.
볶음밥을 볶으면서 야채마다 어느 순간에 넣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당근은 단단하니 처음부터 넣어야 하고 대파는 향을 내기 위해 처음에 넣을까? 아니면 끝에 살짝 볶아 향만 내고 식감을 살릴까? 기름에 양보할까? 재료 자체의 맛으로 결정할까? 숙주를 넣을 건데 양파채는 처음에 넣을까? 숙주와 함께 넣을까? 채를 썰을까? 잘게 다져서 넣을까? 재료에 따라 모양에 따라 달라지고 넣는 순서에 따라 맛이 변하니 같은 재료라도 고민이 많아지게 된다. 세상살이도 이와 같아서 지지고 볶아도 때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많지 않던가?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함께 살아가야 한다. 볶음밥이 팬 안에서 불로써 하나가 되듯 시간을 들이고 그냥 보자. 괜한 상상은 도리어 독이 되어 나에게 돌아오지 않던가. 더 잘 보는 것을 애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에 오늘도 냄비 속을 들여다보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