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더위를 피하는 작은 쉼터

불, 시간, 정성

by 까나리

계절은 봄인데 날은 왜 이리 더운지, 불 앞에 10분만 있어도 마스크가 땀으로 축축하다. 다가올 여름엔 마스크에서 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더울 건데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몸에 열이 많은 둘째는 냉면을 연신 찾기 시작했고 출근길에 입고 나간 긴팔은 낮이면 뜨거워진 날씨에 부담이 되곤 한다.


코로나가 아직 끝나지 않아 바닷가로 피서는 못 가고 유독 빨라지는 여름을 맞자니 얼음 동동 띄운 냉면이 간절히 생각이 나는 날이다.


냉면은 깔끔한 육수가 잘 어울린다. 그래서 뼈 육수보다는 살코기 육수가 좋은데 소고기 양지와 사태를 섞어서 사용한다. 나주곰탕을 끓일 때도 양지와 목살과 사태를 섞어서 사용하면 담백하면서도 깔끔한 육수를 뽑아낼 수 있다.


먼저 준비된 고기를 찬물에 30분 정도 넣어 핏물을 빼준다. 그런 다음 끓는 물에 데치듯이 넣다 뺀 후 다시 찬물에 넣어 핏물을 한 번 더 빼준다.


고기양의 5배 정도 되는 정제수를 준비한 후 무, 대파, 대파 뿌리를 넣어준다. 대파 뿌리가 들어가야 시원한 국물 맛이 나니 수입산보다는 국내산을 준비하도록 한다. 대파는 너무 오래 끓이면 국물이 탁해질 수 있으니 적당히 순이 죽어 빛이 사라지면 건져내도록 한다. 잡내를 없애줄 통생강과 통후추도 넣어주고 2시간 정도 삶아주면 육수가 완성된다.


깔끔하고 담백한 육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성을 쏟아야 한다. 다른 말로는 계속해서 들여다보며 떠오르는 거품이 육수와 섞여 뿌해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정성이고 실력이겠거니 한다. 알면서도 귀찮아서 하지 않으면 그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결국엔 스스로에게 떳떳한 사람이 프로가 되는 것이고 그것이 섬세함을 결정짓곤 한다.


2시간 정도가 지난 육수를 차갑게 식힌 후 신맛과 단맛과 짠맛을 추가한다. 너무 과하지 않게 넣어야 질리지 않고 국물까지 쭉 들이켤 수 있는 냉면이 된다. 육수에 담가 식혀놓은 고기는 간이 쏙 베어 들어 맛난 맛이 난다. 최대한 얇게 썰어 준비한 후 고명으로 올려준다.


사태나 양지와 같은 질긴 고기들은 부드럽게 삶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질겨진 고기를 연하게 하기 위해서 인데 섬유질을 꽉 잡고 있는 것들을 일정 시간 가열하게 되면 풀리는 순간이 존재한다. 도가니를 끓일 때도 12시간 이상의 가열시간이 필요하듯 부위와 쓰임에 따라 시간도 달리하게 된다. 도가니 탕과 곰탕이 비싼 이유도 어찌 보면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으니 당연한 것이다.


고기를 삶다 보면 단순히 익히는 순간만이 전부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불을 끄고 서서히 식히는 과정이 동반되어야 부드럽고 촉촉한 고기가 완성된다. 중식의 오향장육도 6시간을 넘어가면 고기가 부드러움을 넘어서 퍼져버려 말려지지가 않는다. 또는 그 모양 그대로 썰어서 나갔을 때도 가늘게 썰 수가 없고 부서져 버리게 된다.


화를 버럭 내고 뒤돌아서 가만히 있다 보면 어느새 보이지 않았던 상대방의 짠함도 보이게 되고 옹졸했던 내 모습에 부끄러움이 찾아오듯 맘이 서서히 식어가는 시간 속에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처럼 식히는 과정 속에서 우린 상대방과 섞일 준비를 시작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타이밍을 벗어난 음식에는 언제나 멋과 맛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비단 음식뿐만 아니라 쉴 뜸 없이 오고 가는 여러 상황들도 얽히고설킨 꼬인 실타래처럼 자칫 잘못하여 타이밍을 놓치게 되면 그동안 힘들게 한 올 한올 풀어 나갔던 실타래를 댕강 잘라야 되는 상황이 오는 것처럼 말이다.


중식 냉면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땅콩버터를 섞어먹는 냉면이다 보니 살코기와 뼈 육수를 섞어 쓰면 감칠맛이 더욱 풍부해진다. 살코기 육수는 따로 빼서 준비하고 뼈 육수도 따로 준비해서 끓여준 후 두 가지를 섞어 쓰면 된다.


여기에 장맛과 단맛, 신맛, 짠맛으로 간을 맞춘 후 고명에 쓰일 오이와 당근은 채 썰고 데친 오징어채와 해삼 슬라이스(없으면 안 넣어도 된다), 해파리 그리고 색깔을 내줄 흰 백 지단도 준비해주면 된다. 간장의 날 선 맛이 싫다면 육수를 끓일 때 처음부터 넣어 잡내를 없애고 풍미를 향상시킬 수도 있다.


여기에 곁들일 땅콩소스에 물이나 사이다를 섞어 잘 풀어질 정도로 농도를 조절해서 곁들이면 더위에 지친 몸과 맘을 위로해줄 냉면 한 그릇이 완성된다.


요리의 가장 큰 매력은 상상력이 아닐까?


상상력은 사전적 의미로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 보는 힘 '이라고 한다.

이런 의미의 상상력에 경험이 추가된다면 '일어날 법한 일을 그려보는 직감이나, 통찰'

로 의미가 바뀔 수도 있다. 군데군데 나뉘어져 섞여 있는 재료들이 집중을 하는 순간 과거의 경험들과 섞여 머릿속에 스치듯이 지나치는 생각들을 잡아가다 보면 나름 괜찮은 음식들이 탄생하곤 한다.


학교 다닐 때 수업이 지루해 창밖을 쳐다보며 하루하루 구름이 변하는 모습을 기록하며 멍 때 리던 소년은 운 좋게도 요리를 만나 재능이 없다고 매일 혼나던 아이에서 어느새 한 업장을 책임지는 순간까지 오게 되었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 시간을 들이고 식는 시간까지 계산해서 완성품의 모습을 상상하며 어지럽게 흘러가는 혼란의 시간이 지나가고 어느새 질서 정연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러움에 질서를 더 하는 건 집중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어지럽게 흘러가는 모든 상황을 다 지켜보다 보면 자신의 기준에 따라 짜증이 올라오지만 그런 것들은 혼란 뒤에 평화가 올 것임을 알고 상황과 계획에 따라 부드럽게 비켜가거나 두 눈 뜨고 마주하다 보면 평화가 찾아오는 순간은 반드시 오게 마련이다.


한 그릇 냉면육수를 만들며 지나온 생과 앞으로 삶을 그려보며 내 부족한 상상력을 채워줄 늦잠 자는 아이들을 기다린다.

창밖에 내리는 봄비 속에 떨어지는 벚꽃이 아쉽지만 하늘을 바라보며 우뚝 서 있는 목련이나 수줍게 피어난 붉은 동백꽃을 보며 올해도 해피엔딩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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