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생활기) 이사 후에도 할 일은 남아 있다.

by 일일시호일

23년 3월 30일(금요일)

목요일 이사 후 일요일까지~ 두바이에서 인터넷 없이 사는 며칠은 암흑과도 같은 생활이었다. 나는 행복하지만 끝도 없는 이삿짐 정리에 집중했고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과도 갑자기 연락 두절되었다. 이사 후 금요일 저녁 엄마에게 전화해 인터넷이 안 되는 상황을 설명했다.

소파도 없고, 식탁도 없고 급하게나마 캠핑 테이블과 캠핑 의자를 거실에 깔고 끼니때마다 밥도 먹고 간식도 먹고~~ 우리는 며칠간 실내 캠핑 온 거야 하며 깔깔거리며 주문한 식탁이 오기까지 참아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이들의 각자의 방도 생기고, 안방도 생기고, 2년을 어떻게 꾸미고 살지 그러면서 이것저것 중고 물품도 보러 다니고 그때가 너무 좋았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23년 4월 1일(토요일)

토요일 처음으로 가족들 모두 두바이 마리나 비치에 갔다. 관광 오면 무조건 들리는 해안가로 많은 음식점과 호텔,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갑자기 많아진 사람들로 둘째가 많이 긴장했나 보다. 두바이라는 곳에 오면서부터 소리틱이 심해져 우리는 외출도, 외식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었고 오늘 드디어 가족 모두 용기를 내어 외출을 감행했는데 무리였나 보다. 둘째의 소리틱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받는 가족이 되어 있었다.

둘째가 두바이라는 곳을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함께 기다려야 했다.

안 되겠다. 둘째 마음 편하게 해 주는 게 더 중요하다 생각하고 조금 산책하다 평화로운 스프링스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이유도 없이 둘째를 찾아온 틱이라는 것이 언어도 안 통하고, 새로운 환경이라서인지 둘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정 간격으로 크게 소리를 지른다거나, 발이나 손을 부딪힌다거나 지금까지 보지 못한 다양한 틱 증상이 발현되어 불안 불안한 하루하루가 시작되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하겠지만 이 증상으로 어학원도 한 달을 버티지 못하게 되었고, 학교 입학도 정말 어려웠다. 정말 운이 좋게도 전문 병원의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 '뉴로 피드백'이라는 치료 방법을 알게 되었고 10회 정도만으로 드라마틱하게 호전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또한 10개 이상의 학교에 어플라이를 했지만 틱과 영어가 부족한 초등학교 5 학년 학생을 선뜻 받아주는 곳이 없어 애를 태우다 운이 좋게 알게 된 학교에 들어가 보조선생님과 반 친구들, 좋은 선생님을 통해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안하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좀 더 이후에 자세히 풀어 보려 한다.

23년 4월 2일(일요일)

드디어 인터넷을 설치하였다. 1층과 2층으로 구분되어 있는 빌라가 얼마나 많은데 집으로 온 인터넷 기사는 한 층만 커버할 수 있다고 하면서 2개 층을 쓰게 하려면 특별한 설치가 필요한데 뒷 돈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5만 원 정도의 비용을 추가로 주고 1~2층 어디에서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무언가 속은 느낌, 안 줘도 되는 돈을 쓴 느낌! 인터넷 회사 본사에 다 말해? 생각하다 그냥 지나가자 생각하고 잊어버리기로 했다.


인터넷 설치 후 이케아를 처음으로 방문했다. 둘째가 불편해해서 남편과 둘째는 주차장에 있고 나와 첫째만 들어가 필요한 것을 빛의 속도로 스크린 하고 샀다. 이사하고 보니 집에는 조명도 없었고, 창을 가릴 블라인드드나 커튼도 없어서 며칠을 훤하게 보여주고 살았다. 블라인드를 사며 이건 가드너에게 부탁해야겠다 생각하고 드디어 가릴 수 있게 되는구나 생각하며 기분 좋은 쇼핑을 마쳤다. 며칠이 지나 가드너는 지인과 함께 집으로 방문해 등과 블라인드를 달아주었다. 나에게는 두바이에서 은인과도 같은 사람이다. 부탁할 때마다 거절한 적 없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주려고 했기에 편안한 두바이 생활이 가능했던 것 같다. 지금도 생각난다. 화단에 물을 주러 올 때 시원한 차 한잔과 과일 등을 나누면 마담~~ 고마워~~ 하던 가드너가 바로 어제 만난 사람 같다.

23년 4월 3일~4일

오랜만에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아직 낯설지만 호수 산책도 시작했다. 밤이 되면 두바이도 지금은 호수옆이라 그런지 바람이 많이 불고 차서 긴 옷을 입고 가야만 했다. 밤이 되면 스프링스의 밤은 대저택을 보는 것 같았다.

마당에 수영장이 있는 집, 대형티브이와 비치의자, 빔프로젝트를 보며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모습, 바비큐 파티를 하는 모습을 우리는 하염없이 신기한 듯 보고 있었다. 아마 집주인들이 우리를 봤으면 왜 궁금해하지라고 생각할 것 같다.

호수를 따라 벽을 공유하며 붙어있는 집들이 줄을 서 있다. 마당은 호수에서 바로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산책길에 어떻게 인테리어를 해 놓았는지, 가족과 어떻게 보내는지 훤히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최근 두바이의 집 값은 천정 부지로 오르고 있다. 코로나 기간에는 인구의 80% 이상을 구성하는 외국인들의 탈출이 이어지며 주택 가격이 하락하였다(19년~22년) 그러나 코로나가 잦아들고 러시아 전쟁이며 중동 전쟁 등이 장기화되며 러시아,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레바논 등 전쟁을 하는 나라 및 주변 국가들의 자금력 있는 국민들은 돈을 싸들고 아랍에미레이트로 몰려들었고, 23년부터 지금까지 렌트비와 주택 가격은 수직 상승하고 있다. 평균 렌트비는 년 10% 이상 상승하는 것 같고, 국제학교 입학도 3~6개월 정도는 대기해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한쪽의 어려움과 슬픔이 또 다른 한쪽에는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으니 세상 참 모를 일이다.


이사 후 둘째가 사람 만날 일이 별로 없는 주택에 살면서 안정화되기 시작했고, 나는 중고물품을 사다 나르는데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이사 후 2주 정도가 지난 시점에 한국에서 보낸 한국 짐이 오면서 이제 불편한 게 없는 살만한 집이 되었고 우리 가족 모두 안정감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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