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헌의 <불이 꺼지지 않는 방>을 읽고
쉿! 위험하다!
밖에는 대립과 갈등이 난무하고 기만과 위선이 범람한다.
“속으로는 침을 뱉으면서 겉으로는 좋은 척” 마음과 다른 말을 건네고 부끄러운 ‘민낯’이 까발려진다.
비웃음 당하고 거부당하고 일방적으로 매도당하기도 한다. “까무러지기 직전”이다.
넌더리가 나는 세상에서 벗어나 안으로 숨어든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혹시라도 빛이 새어들까 작은 틈까지 꼭꼭 막는다.
자폐적이자 퇴행적인 인물이 탄생하는 지점이다.
90여 년 전, 이상(李箱)은 방에서만 지내며 “아무와도 놀지 않는” 자폐적 인물을 통해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형상화한 바 있다.(<날개>)
그런데 이재헌의 <불이 꺼지지 않는 방>은 빈사지경에 이른 영혼을 따스하게 받아주고 위무하는 또 다른 자아 덕분에 생신(生新)에 이르는 봄 햇살 같은 이야기를 선보인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공포를 느낀 이상과 달리(“나는 지금 거울 속의 나를 무서워하며 떨고 있다” <오감도- 시 제15호> 중), 이재헌의 또 다른 자아 ‘그’는 ‘나’와 대립하지 않고 서로 손을 잡아주며 사랑으로 감싸 안는다.
‘그’는 상처 입은 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범 답안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유를 묻지 않으며, 자신의 무릎에 앉힌 뒤 그저 이야기를 들어준다.
빛이 쏟아지는 천장 문을 닫아 편안하게 해 주고 안아준다.
위로를 건넨다고 하면서 기실 ‘평판충조(평가 판단 충고 조언)’로 더 아프게 만드는 경우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가 있는 공간 역시 ‘나’를 최대한 배려한 공간이다.
심해처럼 깊고 어둡고 고요하여, 안온함으로 이끈다.
그리고 깊은 물이 등장하지만, 이 또한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헤엄이 서툴러 허우적거려도, 꾸짖지 않고 “다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는 듯 바라보는 덕분에 원망의 마음은 안도로 바뀐다.
그리하여 ‘상처 입고 막다른 골목에 갇힌 사슴처럼 떠는 나’는 긴장이 풀리고, 그 끝에 새살이 돋기에 이른다.
작가는 ‘그’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그에 따라 ‘나’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보여주는 장면을 점층적으로 쌓아 올림으로써, ‘세상으로 나갈 추진력’을 얻기까지의 도정을 세심하게 완성한다.
각 단계를 거치고 난 길 끝에서 조우하는 생신의 순간은 어머니 자궁 속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듯이, ‘생명의 싹’을 틔우기까지의 여정의 종착역이라 할 수 있다.
세상으로부터 숨고 싶을 때, 누군가 내 손을 잡아주기를 바라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재헌은 이 소망을 ‘나’를 사랑하는 또 다른 ‘나’에 투영하여, 험난한 세상을 견뎌 나갈 새 힘을 얻는 과정을 인상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희미하긴 하지만 늘 불이 꺼지지 않는 방’에서 “불시에 찾기도 하는 방문객을 맞기 위해 잠들지 않는” 존재. 상상만 해도 행복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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