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형도 <기억할 만한 지나침>
어린 시절 동생들과 여러 놀이를 하던 기억이 생생한데, 동생들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내 기억으로는 거의 매일 가게 놀이를 하고 조금 커서는 전시회 놀이도 했는데, 나만 재미있었나 보다.
친구들과 함께했던 시간도 각자 기억하는 내용이 다르다.
기억력 차이도 있겠으나 마음이 닿았던 지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리라.
한강은 <흰>에서 “어떤 기억들은 시간으로 인해 훼손되지 않는다.”라고 썼다.
그 기억이 추운 겨울 같은 현실에서 꽁꽁 언 마음을 녹여 주면 좋겠지만, 지우고 싶은데 지워지지 않는 것이라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또 뇌 기능이 퇴화하고 손상을 입으면서 기억이 흐려지고 아예 소실되는 경우도 본다. 완전히 잊었다고 여겼던 어떤 일이 우연한 계기에 솟구쳐 오르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기억을 조작하고 왜곡하는 일도 일어난다.
이렇게 기억의 풍경은 따뜻하기도 하고, 아프고 아릿하기도, 안타깝고 절망스럽기도, 또 신비하기도 한 모습을 하고서 오늘도 우리 곁에서 명멸하고 있다.
기형도의 <기억할 만한 지나침>은 시간이 지나도 남아 있는 어떤 순간에 대한 통절하면서도, 아니 통절해서 빛나는 회상을 우리 앞에 진설한다.
눈은 퍼붓고 거리는 캄캄한 밤, 시인은 길을 가다가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춘다. “무슨 관공서였는데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는데, “혼자 울고 있었다!”
시인은 예기치 못한 그 장면에서 얼어붙는다. “울고 있었다” 다음에 느낌표를 찍은 시구에서 그 놀라움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춥고 큰 방에서” 혼자 울고 있는 사내라니!
사연은 알 수 없지만, 누구에게도 들키기 싫을 모습에서 아무에게도 발설할 수 없는 슬픔과 절망, 고독감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시인은 그 울음을 보며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라고 토로한다.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울고 있는 창 안의 사내와 창밖에서 망연히 서 있는 시인, 두 사람은 창을 사이에 두고 데칼코마니처럼 겹쳐 보이는데, 시간이 흐른 뒤 그 겹침은 더욱 명확해진다.
그때와 똑같이 “밤은 깊고 텅 빈 사무실 창밖으로 눈이 퍼붓는” “지금”. 이번엔 시인이 창 안에 있다.
그때 울고 있던 사내와 동일한 정황인 것이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마지막 문장은 오래전 사내를 향한 막연한 아픔이 구체화되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질문을 끌어낸다.
어리석지 않은데 울고 있다면, 왜 우는가. 무엇이, 누가 그를 울게 한 것일까.
우연히 목격하게 된 타인의 슬픔이 눈 녹듯이 사라지지 않고 가라앉아 있다가 떠오르는 순간은 시간의 격절을 넘어서 오롯이 피어나는 꽃과도 같다.
아마도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