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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혜경 Oct 06. 2023

의심하기의 미덕

의심이 필요할 때 



오래전 학보사 주간을 할 때 이야기이다. 


학보사 사무실은 대학 건물 8층에 있었다. 

창밖으로 멀리 63 빌딩도 보이고 운동장이 훤히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옥에 티라면 복도에서 들려오는 학생들의 인사 소리가 시끄럽다는 것.


같은 층에 연극영상학과 사무실과 교실들이 있었다. 

선후배 사이에 인사하는 것을 중시하는지 학기 초면 인사를 가르치는 소리, 따라 하는 소리들로 소란스럽다. 자연스러운 인사면 좀 시끄러워도 흐뭇하게 들을 텐데, 꼭 “안녕하십니까, ○○학번 ○○○입니다.” 똑같은 패턴으로 외치니 군대 같다는 생각에 언짢아지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학생들이 복도에서 나와 마주치면 나타나는 반응이었다. 

의심 없이 교수라고 생각하고 “안녕하십니까?”를 외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잘 모르는 얼굴이다 싶어 주춤거리는 학생도 있고, 전혀 상관치 않고 지나가는 학생도 있다. 


그중 웃음이 나오는 경우는 반사적으로 인사를 하면서 “안녕하십니까?” 소리치는 학생 옆에서 친구 옆구리를 꾹 찌르며 ‘누구야?’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학생들이다.


‘난 모르는데 넌 아니?’ 하는 의문, ‘혹시 나만 모르는 건 아닌가’하는 불안이 교차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 학생 입에서 “안녕하십니까?”는 나오지 않는다.


그들을 보면서 잠시 딴생각을 하곤 했다. 


어떤 반응이 바람직한 걸까 하고.


창의성을 중시하는 쪽에서 보면 무조건 꾸벅 인사하는 것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동화된 행동이라고 볼 수 있겠고, 반면에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누군지 상관 않고 무조건 인사하기가 몸에 배어 있어야 유리할 수도 있겠다. 


그런가 하면 ‘누구야?’ 하면서 확인하려는 태도는 우리 학과 교수나 내가 아는 사람에게만 인사하겠다는 배타성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확실히 알고야 행동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게 아닐까? 


윗사람에게 인사 잘하는 것을 권장하고 고분고분한 사람을 선호하는 어른 입장에서는 일단 인사부터 하는 학생을 좋게 볼 것 같다. 

하지만 획일적 사고를 갖게 하는 주입식 교육이 늘 싫었던 나로서는 의심해 보는 태도가 오히려 좋아 보인다.


<오징어>라는 재미있는 시가 있다.     



눈앞의 저 빛! 

찬란한 저 빛! 

그러나

저건 죽음이다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     



불빛을 좋아하는 오징어의 습성을 이용해서 오징어잡이 배는 불을 환히 매달고 바다로 나간다고 한다. 

눈앞의 빛을 믿고 따라갔을 때 오징어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다. 그래서 이 시는 의심하고 좇지 않았을 때 살아남을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한 친구는 나보고 속없이 사람을 잘 믿는다고 이제까지 사기 안 당하고 살아온 걸 감사하라고 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난 의심이 많은 편이다. 

아니, 의심하기를 즐긴다. 


소박하고 진솔해 보이는 사람은 잘 믿지만 뭔가 부풀린 듯한 사람에 대해서는 감각이 예리해진다. 

저 겉모습 뒤에 숨겨진 진짜는 뭘까 하면서 촉수를 들이대는 것이다.


감정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사람, 칭찬을 해도 ‘너무’가 꼭 들어가는 사람(그런데 요즘 내가 그렇다), 어디선가 얻어 들은 이야기를 자신의 것처럼 포장하는 사람, 실제로 갖고 있는 것보다 많이 가진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그런 말들을 예의 상 들어주기는 하지만 속으로는 저건 진짜가 아닌데 왜 저렇게 말할까, 사실과 다르게 말하고 있는 것을 본인은 모르는 걸까,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분주하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작가들에 관해서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얘기들도 재미있게는 듣지만 역시 안 믿는 편이다.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는 머리를 자르지도 않고 씻지도 않는다거나, 자살하려고 했는데 발 밑에 지렁이를 보고는 저런 미물도 사는데 나도 살아야지 했다든가 하는 얘기들이 예전에는 상당히 많았다.


어릴 땐 경탄과 선망이 뒤섞인 마음으로 듣곤 했지만 이제는 ‘아무려면 그럴까’ 하고 만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런 얘기를 구태여 밝혀야 하나 하는 생각이 앞서는 것이다.


이런 심리는 그들에 대한 질투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좀 섞인 것일 게다. 

그리고 감정이 풍부하거나 과장되더라도 로맨틱한 표현에 후한 점수를 주곤 하는 경향에 대한 나름의 반기이기도 하고. 


감성적이거나 아름다운 수식이 붙어야 좋은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그건 강력한 직언보다는 부드럽게 넘어가는 수사가 더 만만하고 편하기 때문에 조장되어 온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난 학생들에게도 아름다운 수사보다 진솔한 정신이 중요하다고, 건조하더라도 정직한 게 좋은 거라고 강조한다. 겉치레에 속지 않고 알맹이를 볼 수 있는 눈을 요구한다. 무조건 믿기보다 한번 뒤집어 보고 의심해 보도록 당부한다.


광명의 이면에 숨은 진짜를 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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