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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혜경 Dec 03. 2023

겨울의 소설 (2)

임철우 [아버지의 땅] 

임철우의 단편 [아버지의 땅](1984)은 새하얀 눈송이들을 통해 어둠을 정화하는 순백의 기원(祈願)을 담아낸다. 

 

소설은 군 복무 중인 이 병장 ‘나’가 바라보는 부대 근처 마을 풍경으로 시작된다. 

황량하기 그지없는 초겨울의 빈 들녘에 꾸물거리는 까마귀들이 인기척에 놀라 날아오르는 장면을 음산하게 묘사한다.  


길 양편으로 꽤 넓은 밭이 드러누워 있었다. 미처 뽑을 시기를 놓쳐버린 배추며 무 따위가 밭고랑 여기저기에서 된서리를 맞아 썩어가고 있는 참이었는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수많은 까마귀들이 그 검고 칙칙한 날개를 퍼덕이며 밭고랑을 뒤지고 있다가 인기척에 놀라 후닥닥 날아오른 것이었다....(중략)... 까우욱, 까우욱, 그것들의 울음이 황량하기 그지없는 초겨울의 빈 들녘을 공허하게 흔들었다. 



“하늘 한 귀퉁이에 불길한 검은 얼룩을 만들며” 날아가는 까마귀 떼는 ‘넓은 날개깃을 펄럭일 때마다 무엇인가가 우리들의 머리 위로 우수수 떨어져 내릴 것만 같은 섬뜩한 불쾌감’을 준다. 까마귀의 날개가 ‘검은 헝겊 조각 같은’ ‘검고 칙칙한 날개’로 묘사됨으로써 작품의 시작은 어둡고 불길한 죽음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이러한 음산함의 이면에는 주인공의 불행한 역사가 가로놓여 있다. 

곧 주인공은 6․25 때 좌익 활동을 하다가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가진 인물이다. 

아버지가 죽은 줄로 알고 자라던 그는 중학생 무렵 아버지의 비밀을 알게 된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그는 그때부터 아버지의 무서운 환영을 떨치지 못하며 어두운 소년으로 자라난다.


‘저주’처럼 그를 따라다니는 아버지의 환영은 ‘핏발 선 눈알을 번득이며 나를 쏘아보고 있는’ 음산한 모습이다. 그 환영은 ‘저주와 공포의 낙인’으로 깊이 박혀 ‘엄청난 죄악감과 불길한 예감’으로 시달리게 만들므로, 그는 어머니가 아직도 아버지를 기다리며 생일상을 차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분노를 표출한다.


이러한 그에 비해 어머니는 아버지를 죄인으로 여기지 않는다. 

사상과는 상관없이 ‘눈매가 고운 분’이며 ‘마을에서 단 하나뿐인 학생’, ‘남들이 사람을 해치려는 걸 한사코 말리시려고’ 한 자, ‘나직한 음성’의 자상한 남편일 뿐이다. 

그래서 그가 아버지를 ‘깊숙한 상흔’으로 받아들이는 데 비해, 어머니는 스물다섯 해가 넘도록 혼자서 몰래 불씨처럼 가슴속에 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닫힌 마음은 훈련 중 발견한 유골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변화된다. 

이 유골은 갈비뼈와 두 팔과 손목뼈를 철사 줄로 묶인 채 묻혀 있어, 과거 6․25 때의 희생자임을 암시하고 있다. 



저건 피피선 아냐?

누군가가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앙상하게 드러난 갈비뼈에 몇 겹이나 되는 철사줄이 감겨져 있는 것이었다. 흔히들 피피선이라고 부르는, 아직도 군용 유선 전화선으로 쓰이고 있는 바로 그 전선이었다. 그것은 두 팔과 손목뼈까지도 치밀하게 결박해 놓고 있었다....(중략)... 몇 겹으로 뭉쳐진 채 결박해놓고 있는 그 검고 가느다란 철사줄을 바라보던 순간, 나는 불현듯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보았던 것이었다. 



유골을 수습해 봉분을 만드는 동안, 그는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떠올린다. 

줄곧 음산한 모습의 환영으로 나타났던 아버지는 이제 ‘퀭하니 열려 있는’ 눈이 ‘잔뜩 겁에 질려 있는 채로’ ‘가슴과 팔목에 철사 줄을 동여맨 채’ 총살당하는 모습으로 떠오른다. 

이 유골처럼 어느 밭고랑이나 산기슭에 무덤도 없이 묻혀 있을 생각에 이르러 그는 결국 눈시울을 적시게 되는 것이다. 


전쟁은 이처럼 아버지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고 죽음으로 몰고 갔으나, 어머니를 통해 드러나듯이 외피 속에 감추어진 본질을 바라볼 줄 아는 마음까지 변질시키진 못한다. 


까마귀 떼가 퍼뜨리는 음산함과 불길함을 하염없이 쏟아지는 함박눈이 하얗게 지워버리는 것처럼 어머니의 기다림과 간절한 기원은 전쟁의 잔인함과 죽음의 음산함을 사랑으로 감싸 안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작품 도입부를 음산하게 물들였던 죽음의 이미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굵고 탐스러운 눈송이들로 덮여 하얀빛으로 정화되는데, 이 하얀색은 ‘어머니가 새벽마다 샘물을 길어와 소반 위에 떠서 올려놓곤 하던 바로 그 사기대접의 눈부시도록 하얀 빛깔’로서, 어둠을 정화하는 순백의 기원을 상징하고 있다.                



머리 위로 눈은 하염없이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함박눈이었다. 굵고 탐스러운 눈송이들은 세상을 가득 채워버리려는 듯이 밭고랑을 지우고, 밭둑을 지우고, 그 위에 선 내 발목을 지우고, 구물거리는 검은 새떼를 지우고, 이윽고는 들판과 또 마주 바라뵈는 거대한 산의 몸뚱이마저도 하얗게 하얗게 지워가고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새벽마다 샘물을 길어와 소반 위에 떠서 올려놓곤 하던 바로 그 사기대접의 눈부시도록 하얀 빛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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