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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혜경 Sep 06. 2024

닫힌 문 앞의 삶을 기억하다

- 김귀선 <기다리다 못하여서>를 읽고

“내 삶은 폐쇄되기 전에 두 번 닫혔다”(에밀리 디킨슨) 


 작은어머니의 삶을 그린 김귀선의 <기다리다 못하여서>를 읽으며, 둔중한 아픔을 안겼던 이 시구가 떠올랐다. 


 돌배기 딸이 있는 스물한 살의 여인. 나뭇짐을 팔러 장에 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더니 몇 달 후 남양군도에 있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다시 소식이 끊기고 사십 년도 더 지난 후에야 남편이 왜 그곳에 갔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알게 된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장꾼의 말을 믿고 따라나섰다가 남양군도에 끌려갔고, 죽을 고생을 하다가 해방을 맞아 부산으로 가는 배에 겨우 올라탔는데 폭격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무려 사십 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 징용에 끌려갔다가 죽은 남자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다리는 일뿐인 여자의 삶은 ‘고진감래’란 말을 무색하게 한다. 

매번 닫힌 문 앞에서 절망스러웠을 삶을 더 힘겹게 한 것은 주변의 시선이다. “다들 읎신여기는 거 같고, 숭은 와 그래 보던지”라는 말에서 “남정네 읎이 사는” 설움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작은어머니를 어린 시절부터 봐왔던 작가는 당시 작은엄마의 잔소리를 싫어했던 것을 사죄하며 작은엄마의 삶을 회상한다. 

숱한 잔소리가 ‘당신 스스로를 단속한 말’ 임을 알 리가 없으니 “지는 머 잘 났다꼬” 씩씩대던 소녀는 어른이 되어 팔순의 작은엄마에게 “만다꼬 그 긴 세월을 혼자 사셨능교.” 물어본다. 

그러자 작은엄마는 “제발 그렇게 건드려주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속마음을 드러냈다.” 


 “뽀시락 소리만 들리도 너거 작은아부지인 강 싶어가 잠결에 방문을 확 열어젖혀” 보던 밤들, 온갖 설움 끝에 “지나고 보이 남 원망할 일도 아이고 그저 다 내 팔자다”라고 내린 결론, 재혼하라는 권유에도 스물두 살 남편의 얼굴이 선해서 응하지 못했던 마음들을 풀어낸다. 


그날로부터 또 시간이 흘러, 이제 고인이 된 작은엄마의 생애를 기록함으로써 작가는 그 혼을 위무하는 한편으로, 그 삶의 의미를 독자에게 묻는다. 창부타령 한 자락을 곁들여서.


 ‘한숨’과 ‘눈물’로 점철된 삶을 노래 한 자락으로 녹여내며 그 모든 불행을 ‘팔자’라고 묵묵히 받아들인 삶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돌아보이 한 핑생이 한낱 꿈꾼 거더래이.” 삶의 종착역에 이르러 돌아봤을 때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질 수 있겠으나, 그들 덕에 수난을 피할 수 있었던 이들과 우리 후손은 일장춘몽으로 간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무도한 시대에 희생당한 삶을 기억하고 또 감사해야 하리라.                         


** <데일리한국> 2024. 9.3. 게재

https://daily.hankooki.com/news/articleView.html?idxno=1123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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