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찬란했던 그해
학사팀에 다시 끌려가 5년 가까이 형기(?!)를 마친 후에야 석방. 이런 표현이 적절치 않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그런 심정이었다. 이 시기에 타국에서 형을 잃었고 개인적 트라우마 속에서 병치레까지 하면서 버틴 시간이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지만 속은 만신창이였다고나 할까.
그렇게 그곳을 벗어나 가게 된 곳이 학생취업팀이었다. 당시 취업률이 문제가 되어 새로 발령받은 팀장이 총장님께 공개적으로 질타당하는 비상 상황에서 내가 그곳으로 발령이 났다. 인사발령 당일 인사처장님이 찾아와 나보고 잘 좀 부탁한다고 말씀하셔서 이상하다 했다. 나중에서야 팀장님이 처장님께 나를 보내달라고 따로 부탁해서 발령이 나게 된 것임을 알게 됐다.
두려웠던 면담
학생취업과장으로 발령받아 열심히 업무 숙지를 하던 중 전화 하나를 받았다. 졸업생인데 내게 상담받고 싶다는 전화였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이제 막 발령받은 처지라 도움을 주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는데 계속 전화해서 만나달라고 요구했다. 그 절박함이 느껴져서 '얘기만 들어주겠다'라는 조건을 달고 만났다.
그의 고민은 매번 최종면접에서 떨어지는데 더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고 답답해서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학교 취업 지원교육을 통해 나름 요령도 잘 터득했고 준비도 착실히 잘했던 학생이었다. 그렇게 천천히 얘기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잠깐만요, 최종면접관들이라면 적어도 그 회사에서 매우 충성도가 높고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가장 강한 분들이실 겁니다. 그분들 관점이면 최소 개개인의 능력보다도 회사에 대한 애정이나 충성심을 더 많이 눈여겨보지 않을까요?"
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말한 회사들이 혹시 처음부터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였냐고 물었다.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제가 미처 그 생각은 못 했던 것 같아요. 막연히 저 정도 준비했으면 합격할 거로 생각했었거든요."
지금까지 떨어진 이유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한 번도 본인이 면접관의 입장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내 말대로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니 어느 정도 최종면접에서 떨어지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표정으로 그가 대답했다. 사실 정말 가고 싶었던 회사가 있었는데 그곳에 지원했다가 탈락한 이후, 아무 데나 될 데로 대라는 식으로 지원했다는 고백과 함께.
사무실을 나서면서 그 친구는 내게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비록 내가 많이 부족했지만, 괜히 아는 척하는 대신 진솔하게 얘기를 들어준 것에 대한 감사였으리라. 어쩌면 내 얘기를 통해 해답을 얻었을지도 몰랐다.
회의를 파토내다
어느 날 팀장님이 아이디어 회의를 하자고 해서 모였다. 나를 포함 세 명의 팀원들이 취업률 향상에 관한 아이디어들을 얘기했다. 회의는 한 시간을 지나 어느새 두 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팀장님이 계속 우리들의 의견에 꼬투리를 잡듯 이의를 제기하는 바람에 회의가 지지부진해지는 상황. 결국 내가 나섰다.
"아니 그럼 팀장님 의견은 뭡니까? 저희 의견이 탐탁지 않으신 것 같은데 팀장님 의견을 말씀해주시면 저희가 참고하겠습니다."
그랬더니 팀장님이 발끈하셨다.
"아니, 김 과장, 지금 나랑 한번 해보자는 거야?"
나를 포함 우리는 모두 당황스러웠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계속 결론도 없는 회의를 두 시간 넘게 하는 상황이 너무 괴로운데, 팀장님이 감정적으로 저리 발끈하시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결국 내가 다시 나섰다.
"팀장님 기분 나쁘셨다면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계속 전화도 오고 해야 할 일들도 있는데 이렇게 결론 없이 회의가 계속되니 저희도 답답해서 그렇습니다."
그랬더니 팀장님은 여전히 기분이 상하셔서 다음부턴 회의 안 하겠다고 아예 엄포를 놓으셨다. 솔직히 우리는 그 말이 오히려 반가웠지만 내색할 순 없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이틀 정도 지나 팀장님이 우리를 다시 불러 모았다.
"생각 좀 해봤는데 회의를 아예 안 하는 건 좀 그래서 꼭 필요할 때만 회의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대신, 회의하면 한 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할 테니 다들 협조 바래요."
처음엔 내 말에 기분이 상하셨겠지만 사실 그 회의가 그렇게 질질 끌게 된 건 팀장님 잘못이 제일 컸다. 며칠 간의 고민 끝에 스스로 문제의 핵심을 잘 파악해서 효율적인 회의가 될 수 있게 정리해주신 건 모두에게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 일 이후 팀장님이 나를 미워하는 대신 내 의견과 생각을 더욱 존중해주시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매우 감사했다.
도전과 모험의 날들
여름방학을 맞아 처음으로 학생 대상 프로그램을 시행하게 되어 고민을 해봤다. 처음 담당자가 열정적으로 기획해서 직접 프로그램을 구성해가며 수행했고 결과적으로 우리 학교만의 대표적인 프로그램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던 유명 프로그램이었다. 다만, 내 직전의 담당자는 이 프로그램을 기존처럼 스스로 직접 기획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껴서 외주용역을 주었다고 했다. 사실 이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취업의 전반적인 흐름과 경향, 대비법에 대한 탐색과 연구가 선행되어야 적절한 프로그램 내용들을 구성할 수 있었다. 난 우리 학생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외부 업체에 맡기고 싶지 않았다.
기존에 시행했던 프로그램 내용을 살펴본 후 여러 가지 기사들과 최근 면접 경향 등을 조사했다. 그리고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이 출판한 책들을 구매하여 최근의 채용 경향을 파악해나갔다. 먼저 목차들부터 살펴보고 그중 우리에게 필요한 내용들을 집중적으로 읽어봤다. 그 후 기본적인 교육내용과 집중 교육 사항으로 구분해서 프로그램을 구성해나갔다. 가장 염두에 두었던 건 당시 대기업에서 유행하던 PT 면접 대비법 교육이었다. 그래서 최고의 강의를 해줄 수 있는 분을 섭외했다. 강의료가 가장 많이 들었던 분야였지만 다행히 팀장님이 승인해주셔서 가능했다.
교육생 모집은 예년과 달리 청강생을 받지 않는 것으로 정했다, 지원서들을 꼼꼼히 살펴서 1차로 교육생들을 선발했다. 면접은 파격적으로 대기업 인사과장님들께 부탁을 드렸다. 적은 면접비만 지급할 수 있었기에 과연 가능할까 싶었는데 다행히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셨다. 그분들로선 우리 대학 지원 예정자들을 미리 살펴볼 기회였기에 오히려 그런 기회를 얻게 된 걸 좋아하셨다.
그런 과정을 거쳐 교육생을 최종 선발하고 개강했다. 그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받게 될 교육내용을 소개하고 회장을 선발했다. 이어 여학생들에게는 특별히 각오를 더 다질 수 있게 당부의 얘기를 하고 희망 직종별 조를 확정한 후 첫날 개강식을 마쳤다. 행사를 마친 후 남아 있던 20여 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청강생으로 참여하고자 했던 학생들이었다. 애초 나의 결심대로 냉정하게 청강생은 뽑지 않겠다고 했더니 많은 학생이 실망하며 강의실을 떠났다. 하지만 게 중 몇몇은 끝까지 남아 내게 교육에 참여시켜달라고 간청했다. 그들의 간절함과 적극성 때문에 결국 조장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참여할 수 있게 기회를 주었다. 사실, 청강생을 안 뽑겠다고 하면서 내심 기대했던 결과였다. 실제로 1호 취업생은 바로 이들 중 한 명이었고 또 다른 청강생은 아모레퍼시픽 교육 담당으로 취업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화장품회사의 교육업무는 직원교육직무 분야에서 가장 크게 인정받는 분야였고 그래서 녀석의 성과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2주간의 교육은 참여 교육이었고, 난 내내 그들과 함께했다. 출결 체크와 함께 중간에 포기하고 도망가지 않도록 단속하는 감시자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마지막 집합교육이 있던 날엔 한솔그룹 인사과장의 특강이 있었는데 이날 몇몇 학생이 지각했었다. 한솔그룹 인사담당자는 성격이 매우 까칠한 걸로 유명했고 그럼에도 예전부터 우리 프로그램 출신들을 선 채용했던 곳이라 미리미리 늦지 말라고 당부했건만 결국 이런 일이 생겼다. 문 앞을 가로막고 수강생과 강의 중이던 한솔 관계자가 들을 수 있게 매우 큰 소리로 야단을 쳤다, 일부는 울면서 돌아갔고 끝까지 남은 일부 학생들은 입장을 허용했다. 솔직히 한솔그룹 담당자분에게 내가 교육을 대충대충 하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주고자 하는 목적도 있긴 했다. 교육 중에 일부는 기사 시험을 봐야 하는데 교육을 계속 받을지 고민하는 공대 재학생들도 있었다. 그들에겐 당연히 기사 시험 합격이 먼저라고 말해주고 교육 일부를 면제해주었다. 사실 교육내용은 주로 인문 사회계와 농축산계열 학생들에게 더 유용한 편이었고 그 외의 학생들에게는 취업 활동에 임하는 각오와 기본적인 자세 등을 갖추는 것에 도움을 주는 방향이었다. 가장 주안점을 뒀던 PT 면접 교육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마무리했다. 하루 교육 전체를 이 부분에 할애했고 그만큼 학생들이 배우는 게 많았다. 강사님이 강의 말미에 우리 학교에 대한 영상을 캐러비안의 해적 영화음악을 바탕으로 만들어 틀어주었는데 학생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실제 설문조사에서 교육생들이 가장 만족했던 교육이기도 했다. 학생들에게 필요했던 교육을 제공하고자 했던 고민과 엄격한 출석 관리 등은 결과적으로 나와 교육생들과의 관계를 매우 끈끈하게 맺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조별 활동 기간에 교내 곳곳에서 마주치는 교육생들의 인사를 받는 내 모습에 동부그룹 관계자가 놀라기도 했다.
참여 교육을 마친 후에는 자발적인 조별 활동을 지원했다. 조원 구성은 내가 임의로 정하되 출신 학과가 다양하게 이루어지도록 의도했다. 회사생활은 결국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게 가장 기본이라는 나의 주관을 적용했다. 구체적인 활동 방향은 조장을 중심으로 자체적으로 논의해서 결정하라 했다. 나중에 어느 한 학생은 홍보실과의 인터뷰에서 내 이런 결정이 매우 당황스러웠는데 활동을 마치고 나선 이유를 이해했다고 했다. 사실, 늘 과제를 지정받고 이를 수동적으로 수행해온 대학 생활과 취업 활동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조 활동을 통해 먼저 서로를 이해하고 공동의 목표를 도출한 후 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는 매우 생소할 수밖에 없었을 터. 하지만 난 일부러 이런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성장하기를 바랐다. 솔직히 모험이긴 했다.
이들에게 선배들과의 멘토링도 제공했다. 멘토는 예전 기수들 중 자발적으로 지원한 사람 중에서 선발했다. 처음엔 이들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아서 예전 재학 중의 주소록과 인터넷 카페 등을 검색해서 일일이 연락을 취하는 방식으로 소통했고 그 과정에서 이들의 열정과 후배 사랑에 대해 감동하기도 했었다. 이들과는 지속적인 연대를 위해 아이러브스쿨에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계속 소통해나갔다(이런 과정들은 여름 직원교육의 성과로 인정받아 작은 상금을 받기도 했다).
조별 활동을 마친 후에는 교내 학생식당을 빌려 발표회를 개최했다. 각 조장들이 활동 내용과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는데, 실제 성과는 조별로 차이가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다양한 학생들이 모이다 보니 의견 일치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빠르게 활동 방향을 정한 조의 성과는 확실히 두드러졌고 조원들 간의 사이도 매우 돈독해 보였으며, 결과적으로 취업 결과도 우수했다. 그런 조의 경우 어떤 조장은 조별 취업 현황을 보고하면서 아직 취업이 안 된 남은 조원들에게 신경 써 달라는 당부의 말까지 내게 남기는 일도 있어서 오히려 내가 감동하기도 했다. 취업 결과는 예상보다 매우 좋았고 취업의 질도 우수했다. 일부 여학생들 경우는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취업했다고 알려왔다. 개강 첫날 나의 당부에 자극받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영업의 꽃이라 불리는 그 어려운 제약회사 영업직에 여학생이 도전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그들에게 오히려 내가 감동받았다는 걸 녀석들은 모를 것이다.
겨울 프로그램 때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강사들을 섭외했다. 특히 현대그룹 계열사의 한 인사과장님에게는 출판사를 통해 메일로 특강 요청을 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여러 대학에 불려 나가는 나름 유명하신 분이셨다. 결국 겨울 특강에 모시지 못했지만, 나의 적극적인 모습에 감동하셨는지, 미안하다면서 대신 최초로 우리 대학 학생들을 만나보겠다며 감사하게도 추천서를 몇 장 보내주시기도 했다. 프로그램 구성에 있어서는 2주간의 집합교육 중 외주업체를 통한 4일간의 직무교육을 추가했다. 그동안 학생들이 제출했던 자소서들을 읽다 보니 가장 큰 문제점이 직무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본인이 지원하는 직무에 대해 잘 알아야 관련 활동이나 경험을 잘 서술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소소한 개선 조치들
일하다 보니 우리 학교로 추천서를 보내오는 나름 이름있는 회사들이 있었고 특히 외국계 기업들도 있음을 알게 됐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관리는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었다. 특히 외국계 기업의 경우엔 여학생들의 관심이 컸고, 개인적으로도 여학생 취업을 위해 외국계 기업들과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었다, 그래서 먼저 시작한 일은 이들 기업에 대한 목록 작성이었다. 외국어학원 등과 연계해 외국계 기업에 대한 채용설명회를 유치하기도 하고 항공사 채용설명회도 적극적으로 도모했다. 실제 설명회장에 많은 여학생이 몰려왔었다. 채용설명회에 참석하는 동문 재직자들에 대한 관리도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었다. 기업관계자에게 제공하려고 만든 기념품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채용설명회가 있을 때마다 동문들을 사무실로 불러 기념품 증정과 함께 명함을 받아 정리했다.
팀장님과 예산팀장님 간의 개인적 불화 때문에 취업 지원 예산이 반토막 났던 사실도 알게 됐다. 다음 해 예산 협의 때 이전 3년간의 예산 배정금액을 조사해서 50% 인상을 요구했다. 당시 취업률이 매우 중요한 이슈였고 예전 예산과 비교해서 제시하는 요구액인지라 예산팀장님도 내 요구안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었다.
추석 명절 때 작은 선물들을 기업체에 보내는 관행이 있었다. 그런데 그중 모 자동차그룹 인사과장님이 자체윤리헌장에 따라 부득이 받을 수 없다며 미안하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 지원서를 보게 되면 한 번이라도 더 자세히 봐달라고 부탁의 메일을 보냈는데 이 과장님이 감동하셨던 것 같았다. 다음 해 채용설명회 때 우리 대학 방문을 제일 먼저 결정하셨고 직접 학교에 오셔서 나를 찾으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기업체 관계자들에게는 대학은 늘 현장 교육이 부족하다는 인식들이 많았다. 개개인 처지에서는 대학 관계자들이 제대로 노력을 안 한다는 부정적인 인식도 존재했다. 난 내가 우리 학교와 우리 학생들을 대표한다고 생각하고 이들에게 진심을 다하고자 노력했다. 다행히 그런 노력들이 통했던 것 같다. 이분들과는 후에 다른 부서에 가서도 가끔 소통하곤 했었다.
야근하다 보면 밤늦게 취업게시판을 찾아오는 학생 또는 졸업생들이 있다. 많은 글을 일일이 찾아서 보려면 고생스럽겠다 싶어서 아이디어를 냈다.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 공고, 정규직 공고를 각각 다른 색의 종이로 구분해서 게시하자는 것. 반응이 좋았는지 내가 부서를 떠나고도 오랫동안 취업게시판이 없어질 때까지 이런 업무처리 방식이 유지되었다.
달콤한 결과물
여러 사람의 노력이 어우러져 이 해 우리 대학의 취업률은 매우 높은 성취를 이루어냈다. 서울 소재 대학 취업률 순위 7위. 전년도에 이슈가 되었던 사안이 단숨에 해결된 경우였다. 임시 취업이나 동문 회사들을 동원한 유령 취업과 같은 꼼수를 전혀 쓰지 않고 이뤄낸 성과였다. 새로 부임한 총장님이 매우 기뻐해서 단독 결정으로 우리 부서에 우수부서라는 페넌트를 하사했다. 가장 신났던 분은 팀장님이었다. 직전 학기에 취업률 때문에 억울하게 전 총장님께 질책받았던 터라 이런 결과가 얼마나 기쁘셨을지. 이 일로 팀장님의 나에 대한 신뢰는 더욱 공고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성과들을 바탕으로 다음 해에는 인문 사회계 여학생들을 위한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자 했다.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2010년 2월 평가 우수 팀 선정(부서)
총장 지정과제수행 3위 팀 입상(과제팀)
2010년 5월 개교기념 모범직원상 수상(개인)
2010년 9월 직원교육보고서 3위 입상(과제팀)
2010년 10월 대학 취업률 서울 소재 대학 5위
2011년 1월 우수부서 총장 특별표창(부서)
취업지원인증제?
2010년 11월에 참가한 직무교육 겸 노동부 사업 설명회에서 있었던 일. 갑자기 도입 예정이라고 발표되었던 대학 취업지원인증제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해 시범사업으로 진행된 대학취업지원인증사업 심사위원장이란 사람의 특강을 들어야 했는데 좀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서 질문을 했다.
"이번에 시범 시행된 인증제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우선 우리 대학은 제가 담당자였는데 일주일간 고심 끝에 평가 수검을 받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우리 대학이 제시된 평가 기준을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만 평가지표가 특정 대학을 기준으로 작성되었다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관련 평가지표는 어떻게 작성이 된 건가요?"
"아 그건 우리 연구위원들이 15개 우수대학을 선정하고 그 대학들의 현황을 연구, 조사해서 작성한 것입니다."
"그러셨군요. 그렇다면 그 우수하다는 기준이 무엇인가요? 이 자리에서 특정 대학을 언급해서 죄송합니다만 혹시 K 대학도 포함되었습니까? 제가 보기엔 그 대학의 현황을 그대로 반영한 지표인 듯해서요."
"네 그렇습니다. 위원들이 각자 전국의 대학들의 현황을 살펴보고 그중 시스템이 잘 갖춰졌다고 생각되는 15개의 대학을 대상으로 지표를 작성한 것입니다. 혹시 어느 대학에서 오셨나요? 그 대학교수님이 지표작성연구위원으로 참여하셨나요?"
(세상에. 위원으로 참여한 대학 소속 교수가 없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의미인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이번 평가인증제에 대해 두 가지의 문제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선은 평가지표가 대단히 잘못되었다는 점입니다. 우수대학을 선정해서 연구했다는 점 자체가 자의적인 판단입니다. 취업 지원 우수대학이라 하면 결국 취업률도 우수해야 한다고 보는데 그 대학보다 더 취업률이 좋은 대학들이 이 평가지표로 심사받으면 그 대학보다 못한 대학이 되고 맙니다. 이건 결코 제대로 된 평가지표라고 보기 어렵죠. 게다가 이 평가지표는 결국 대단히 불공정한 것입니다. 앞서 말한 특정 대학의 경우엔 이미 만점을 획득하는 상황이 된다는 것 자체가 불공정합니다. 또한 그 대학은 교육역량강화사업비를 많이 받는 대학으로서 국고의 혜택을 받아 그런 시스템들을 모두 갖추었지만 그렇지 못한 대학들 특히 지방대학들은 지금보다 몇 배의 교비 투자와 인력 투입을 통해 그런 수준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죠. 결국 출발선 자체가 달라 공정한 경쟁이 될 수도 없고 그런 평가 결과로 노동부 사업비를 배정한다면 대학 간 부익부 빈익빈이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오류는 이 인증제의 목적이 합당하지 않다는 겁니다. 노동부 사업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청년실업 해소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인증제는 그런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교과부의 교육역량강화사업과 성격이 같아져서 오히려 대학들의 구조조정 목적으로 사용될 것이고 그것은 결국 청년실업 대책과 직접 연계될 수 없는 사안입니다. 지방대학들과 자구노력 중인 대학들을 죽이는 대신 지역별 특성에 맞도록 특성화를 유도하고 그 지역의 경제적 특성과 연계하여 취업률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사업비가 지원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리 그런 의견을 제시해주셨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아주 좋은 의견을 내주신 이 선생님께 손뼉이라도 쳐주셔야겠습니다. 다 같이 박수~~~"
"…………???"
[취업지원인증제]
: 각 대학의 취업지원부서를 평가하여 인증을 주고 노동부 사업비를 지원해주는 제도로 올해 처음 시범 시행되었으며, 그 지표 안에는 각종 시스템적인 부분뿐 아니라 취업전담교수제 등 인력에 대한 평가도 이루어짐. 2011년에 전면 시행될 가능성이 매우 큼. 각 대학의 취업지원부서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유도한다는 점에선 매우 긍정적임. 뒤집어 말하면 교과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의 대학들은 교비(학생 등록금)를 더욱 투자하여 국고지원을 많이 받는 대학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노동부 사업비라도 지원받을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취업교육업체들의 배를 불리고 자칭 취업전문가와 노동부 관계자들의 일자리 창출(?)에 이바지하며 일부 지방대학의 교수, 직원들은 실직하고 그 대학 출신의 학생들은 실업자의 고통에서 오랫동안 벗어날 수 없을 수도 있음.
결론적으로 그해 대학취업인증제는 시행되지 않았다.
예산 씨름
여름방학 기간에 수행할 프로그램 기획안을 올렸었다. 결재 관련하여 예산팀 통제를 받는 중 담당자로부터 위탁교육 프로그램 비용에 관한 전화가 걸려 왔다. 나는 예산팀장 S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작년에 어떤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 예산팀장과 우리 팀장 사이가 매우 안 좋게 되었고 그로 인해 올해 아이들 취업 관련 예산이 무자비하게 삭감된 상황이었다. 그렇게 무자비하게 예산삭감 조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앙금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S 팀장에게 정중하게 예산 편성안에 관해 설명해 드렸다. 2주간 5천만 원의 예산 중 4일의 위탁교육에 2천만 원이 배정된 이유에 대해,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전문가 집단의 교육이 필요하며 실제 가능한 금액은 3천만 원 이상이나 여러 업체와의 조정을 통해 최소 금액을 추출한 것이라고 했고 그것 또한 한 점 의혹 없게 공개경쟁입찰로 업체를 선정하기로 하고 이미 진행 중이라고 얘기했다. S 팀장이 비용에 비해 얼마만큼 효율성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하길래 좀 더 단호하게 내 생각을 얘기했다.
"교육의 필요성과 효율성 확보를 위해 나 자신이 30여 개 이상의 업체 제안서를 검토했습니다. 본 직무교육은 취업캠프 등을 통한 교육이 더 효과적이나 올해에 캠프 예산 자체가 삭감되었기에 그 대안으로 도입하게 되었고 비용 문제로 인해 많은 고심을 했던 사안입니다. 올해에 많은 예산삭감이 있었고 그 상황에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효율성을 따지자면 저희로서도 드릴 말씀이 많습니다. 일례로 금번에 교육역량강화사업 예산 배정내역을 예로 들자면 몰입형 외국어교육에 2억 6천이 배정되었습니다. 제가 기획한 프로그램은 전통적인 자부심을 가지는 본교만의 오랜 역사가 있는 프로그램이면서도 1년 예산이 고작 1억 4백입니다. 100명을 교육하는 단발성 계획에 2억 6천을 배정하셨는데 4주, 500명 이상을 교육하는 우리 프로그램에는 1억 4백을 주셨습니다. 솔직히 저로서는 예산팀을 포함한 기획처의 효율성에 대한 판단기준이 무엇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나의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어필 때문이었는지 S 팀장은 알았다고 짧게 답하고는 더 이상 본 기획안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셨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우리 프로그램에 대해 비효율적이라고 말하는 근거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직접적으로 묻고 싶었었다. 하지만 나도 적당한 선에서 얘기가 잘 마무리된 것 같아 노골적인 어필은 더는 하지 않았다.
예산팀의 경우 예전부터 직원들이 지출하는 서류에 대해선 적은 금액의 영수증까지 세세히 훑어보고 오점이 있으면 엄격하게 주의를 주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정확하고 사심 없는 예산 지출과 통제는 옳은 일이고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 엄격함의 기준과 잣대가 상대에 따라 다르다면 엄격한 예산통제의 의미와 권위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법이다. 아무리 사람이 하는 일이라 감정적인 처리가 있을 순 있다고 해도 가장 기본적인 일의 책무에 대해선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