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도전과 배움의 시간들&승진
지금 돌이켜보면 평가분석센터에서의 1년은 지금까지 중 내가 일을 가장 안 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개인적 신념과 의지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폄하되고 놀림을 받는 기분으로 지냈다. 자부심 대신 실망감과 배신감에 치를 떨던 시간들…. 이 부서에서 어떠한 목표와 사명감도 느끼지 못한 채 시간만 흐르고 있던 어느 날, 새로 온 인사팀장님의 호출을 받았다.
"이번에 창업관리단이 새로 생겼는데 행정지원인력이 필요하다네. 거기서 일할 생각이 있나?"
"그걸 왜 저한테 물으십니까? 월급쟁이가 별수 있습니까? 가라면 가고, 가지 말라면 안 가는 거죠."
최악의 인사를 경험한 나로선 이런 가시 돋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내가 그곳으로 발령이 났다. 원래 창업보육센터였다가 본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수 개인이 정부 사업을 수주하게 된 바람에 새로 구성해야 했던 사업단 조직이었다. 사업계획서상 일반행정직의 발령이 포함되어 있어 인사발령을 해야 했고, 다들 처음 해보는 분야인데다 본부의 비협조까지 예상되었던 터라 발령받기를 꺼리던 곳이었다.
단장님은 좋은 분이셨지만 강력하게 일을 주도해가시는 성격은 아니었다. 조직인력은 기존의 창업보육센터 인력들 중심으로 내가 추가되기만 한 상황이었고, 나 외에는 모두 계약직 사원들이었다. 일단 발령을 받았으니 내 할 일을 하자고 생각했다. 먼저 규정집부터 살펴보니 조직 관련 규정이 통째로 빠져 있었다. 행정지원인력이 별도로 없었다 보니 조직 관련 규정 정비를 미처 못 한 상황에서 발령부터 내게 된 것이었다. 바로 창업관리단 규정부터 만들어 제출했다. 이후 업무의 내용과 사업의 성격, 관련 이슈들을 천천히 파악해나갔다. 기존 인력들은 처음엔 내게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 부분은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예상대로 6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내가 팀장으로 승진하면서 본격적으로 일을 주도할 수 있었다.
표적 감사
기존 직원들과의 간격을 좁혀가면서 일에 대해 파악해나가던 첫 6개월 동안 내게 특별한 이슈는 없었다. 다만, 감사실의 주도로 기존 창업보육센터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가 진행되었는데, 내가 근무하기 이전에 관한 것이라 처음엔 그냥 두고 보기만 했다.
감사는 매우 강력하게 시행되었다. 처음부터 본부의 비협조가 예상되기는 했지만, 이번 건은 진행이 될수록 뭔가 이상했다. 감사실 직원은 입주기업까지 마구잡이로 방문하여 대표에게 단장과의 관계를 캐묻기도 했다. 단장님은 이런 행태에 분노했지만 제대로 대응하질 못하고 속앓이만 하는 게 느껴졌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예전에 들었던 감사실장님을 포함한 몇몇 직원분들과 창업보육센터와의 악연을 떠올렸다. 벤처창업 붐이 일어나던 때로 이 센터 관계 교수님의 투자 권유에 일부 직원들이 피해를 봤다는 얘기였다.
약 보름간의 일방적인 감사가 종료된 후 지적사항이 내려왔다. 내용을 보니 솔직히 지나치게 무리한 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관여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일단은 지켜보기만 했다. 예상대로 단장님은 아무런 대응도 못 했다. 결국 제출 기한 하루 전 혼자 야근하면서 지적사항들을 찬찬히 분석하고 반박 또는 시정할 내용들을 정리한 후 밤 10시쯤 단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단장님, 내일까지 조치계획을 제출해야 하는데 아무 말씀 없으셔서 제가 작성해봤습니다. 메일로 보내드렸으니 한번 검토해보시고 회신해 주시면 내일 공문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날 나의 주도로 작성된 시정계획서를 회신했다. 결과적으로 내용상으로 무리한 지적이 많았고 이에 대해 논리적으로 반박하고자 했는데, 이 회신서를 보고도 감사실에선 더 이상 후속 조치가 없었다. 단장님은 이후 '우리를 살렸다'라며 내게 절대적인 신뢰감을 보여주셨다.
학생창업동아리 지원
소속 창업동아리가 있었는데 거의 활동이 없다가 시험 기간 때만 모이는 아이들을 보면서 고민했다. 마침 정부 사업으로 확대되면서 학생창업동아리에 대한 지원 확대가 필수였던지라, 이 사업을 계기로 개편을 추진하기로 했다. 먼저 자체 창업동아리를 해체하고 동아리방도 폐쇄했다. 그랬더니, 새롭게 출범한 동아리 운영진 중 부회장이란 녀석이 쫓아와 거세게 항의했다. 담당자가 아무리 좋게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조용히 총괄매니저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저 녀석, 눈빛을 보니까 확실히 창업 의지가 보여. 너무 뭐라 하지 말고 잘 설득해서 창업교육과 이런저런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봐."
그런 후 외부 멘토 중 신뢰할 만한 한 분에게 연락해서 개인적으로 부탁을 드렸다.
"학생 한 사람 좀 따로 만나봐 주실 수 있으십니까?"
멘토님은 녀석을 만나본 후, 내게 녀석에 대한 지속적인 멘토링을 약속해주셨다. 중간중간 내가 나서서 녀석을 도와주기도 했다. 녀석은 결국 창업에 성공했고 몇 년 전 근황을 물었을 땐 연 매출 1억 5천만 원을 달성했다고 한다. 지금은 결혼도 한 것 같은데 졸업은 했는지 궁금했다.
창업동아리를 선발하는 사업에서 번번이 떨어지던 한 학생이 있었다. 참 재미있었던 사실은 이 친구의 동아리 멤버들이 모두 멘사 회원들로 구성된 대학 연합동아리였다는 것. 직접 심사 참관을 해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사업계획서 내용 자체보다도 발표실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곧바로 멘토링 프로그램에 합류시켜 트레이닝을 받게 했다. 또한 외부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도록 유도해 몇 년 후 결국 창업에 성공했다.
대학동아리 간 경진대회가 매년 열렸는데, 이 대회에서 수상자를 배출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후발 대학으로서 다른 대학들과 대등하게 경쟁하려면 이런 대회에서 수상자를 배출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을 했다. 그동안 발표 교육이나 여러 창업 교육을 수행하면서 연습시킨 결과를 시험해보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우리 학교 학생팀이 대상을 받았다. 정말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갑질
사업단 초기에 여러 시급한 일 중 인력 구성에 관한 사항이 있었다. 당시 근무 인력의 유관 경력이 평가 요소 중 하나였기에 사업의 지속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3년 이상 경력자가 필요했다. 내부 기존 인력 중 요건을 갖춘 이들이 있어 내부에 강력히 요청하여 2명의 무기계획직 정원을 확보했다.
선발부터 이상했다. 보통은 자체 인력 중 검증과 심사를 거쳐 확정하는데 뜬금없이 공채하겠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설마 했다. 그런데 자택 응시로 시행된 인 적성평가에서 기존 인력 중 1명이 탈락하고, 최종적으로 실무경험이 전혀 없던 타 대학 창업 지원 교수였던 사람이 최종 합격했다. 조직 내 기존 인력들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더는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며칠 후 인사팀장을 찾아가 물었다.
"누굽니까? 이 사람 채용하게 만든 윗선이 누구시냐고요."
인사팀장님은 당황하더니 아무 말도 안 했다.
"저 이번 사안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당장 그 친구 출근하면 내가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세요."
다음 날, 인사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김 실장, 그 친구 연락이 왔는데 합격 포기하기로 했다네."
배움의 기회를 얻다
조직 초기의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순차적으로 해결해나가는 모습에 단장님이 깊은 인상을 받으셨던 것 같다. 더구나 감사로 인해 난처했던 상황들을 결국 내가 다 해결해 준 셈이니 은인처럼 느끼셨던 것 같다.
매년 사업 내용상 실무직원들의 연수 참여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단장님이 내게 같이 가자 하셨다. 할 일도 많고 바쁜데 나중에 기회 되면 가겠습니다 했지만, 재차 권하시는 바람에 함께 따라가게 됐다.
약 보름간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돌아봤는데, 따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단순히 여행하고 관광하는 그런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직접 독일의 대학들과 창업 지원시설들을 돌아보고 설명을 들으며 선진국들의 대학 창업지원정책과 체계들을 직접 보고 들었던 배움의 연속이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선 절대 볼 수 없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들을 수 있어서 매우 놀라웠다.
독일의 어느 작은 대학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다. 입구 잔디밭에서부터 동상 몇 개가 세워져 있었는데 노벨상을 받은 그 대학 교수님들의 동상들이라고 했다. 하나도 아니고 몇 사람의 동상이라니 믿기가 어려웠다. 좀 더 들어가 2층짜리 건물의 한 강의실에서 엔젤라라는 여자분을 통해 해당 대학의 창업 지원체계에 관해 설명을 들었는데, 가장 놀라웠던 건 그 지원 인력이 200명이라는 사실이었다. 엄청난 규모에 놀라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냐고 했더니 자기네 회장님이 독일 자동차회사 이사님이며 본인들의 월급은 그분에게서 받는다는 얘기에 다들 믿기 힘들어했다. 그런데 이 건물 또한 그렇게 지어서 대학에 기증한 것이라며, 독일에서 건물을 지어 조건 없이 기증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순수하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는 독일 사회에 진심으로 충격을 받았다. 유명 대학 한두 곳에 건물을 기증하고 이를 홍보하고 해당 대학 인재들을 선점하고 싶어 하는 기업들의 욕심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처럼 포장된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하며 진정한 선진사회가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 수 있었던 연수였다. 개인적으로는 정년퇴직 후 취미생활과 여행으로 노년을 지내는 독일인들을 보면서 퇴직 후에도 십 년 이상을 일하며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비교하며 부럽다고 생각했다. 월급에서 떼가는 세금이 반이라지만 노년이 비참한 것보단 차라리 이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이후에도 몇 차례 더 해외연수에 참여했다. 중국에 두 번, 홍콩에 한 번 다녀왔는데 그때도 많은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북경에 갔을 당시엔 학생들과 함께했다. 북경대 학생들과의 창업아이디어 경진대회에 참석이 주목적이었으며, 중국의 창업 지원상황들을 배우기 위해서 갔다. 당시 알리바바의 창업주 마윈이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때라, 마윈이 창업을 준비했던 시기에 활동했던 창업 카페 거리 중관춘도 방문했는데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적어도 당시 한국과 비교하면 창업을 대하는 기본적인 환경 자체에서 격차가 느껴질 정도였다. 나중에 항주에 있는 알리바바 본사를 방문했을 땐 넓은 강당의 한 면 전체를 채우는 PT 화면과 세계 지도를 배경으로 깔고 진행된 설명에 매료되고 말았다. 지금은 폐업했지만, 당시 북경에 있던 현대자동차 공장 방문에서의 일도 기억에 남았다. 홍보담당자의 설명을 듣고 질의 응답할 때였는데 그때 나는 전기 오토바이가 가득 찬 북경 거리에 인상을 받은지라 이를 토대로 질문을 했었다.
"거리에 전기 배터리 오토바이가 많은 게 매우 인상적이던데 자동차산업에도 적용되면 중국이 경쟁상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대비를 하고 계시는지요?"
그 담당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중국이 전기 배터리를 통해 오토바이를 대량 생산하고 있지만 완성차 분야에선 우리를 따라오기는 힘들 겁니다. 별로 걱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당시 그런 말에 동의하긴 했지만 전기 배터리에 대한 불안감은 좀 남아 있었는데 그 예측이 많이 틀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몇 년 후 현대자동차의 북경공장은 폐쇄가 됐고, 요즘 자동차 배터리 분야에선 중국산이 강세를 이루고 있다 보니 그때 그 답변이 좀 아쉽고 씁쓸하게 느껴졌다.
칭화대를 방문한 경험도 인상적이었다. 문과대에 갓 입학한 여학생들이라는데 수업 시간에 광물과 유리 등에 대해 배우고 실습하는 현장을 직접 참관했다. 가이드의 말로는 융복합 교육을 시행하고 있는 거라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흉내만 내는 모양새였지만 당시 융복합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떠올리며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홍콩에서는 전혀 아시아답지 않은 시민들의 의식에 대한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당시 홍콩은 중국에 반환되기 전이었고, 영국화로 인해 사회 제도적으로 동양과는 매우 달랐다. 예를 들면, 세금을 정직하게 내면 엄청난 혜택을 주는 대신 부정한 납세에 대해선 가차 없이 벌칙을 적용하는 원칙이 당시의 홍콩을 국제적 비즈니스의 도시로 만든 주요 요소 중 하나였단 사실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법 적용에 있어서도 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원칙대로 시행하는 모습에 감명받았었다. 지금의 홍콩은 그 당시와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하긴 하다.
상해에도 갔었는데, 화려한 야경과 관광객들에 둘러싸여 거리를 돌아다닌 기억들이 너무 강렬해서 무얼 하고 왔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현대중국영화들의 배경이었고 동서양이 혼재한 문화가 매력적이어서 나중에 가족여행으로 다시 다녀오긴 했었다.
소심한 복수
연간 20억 내외의 사업비는 곧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의 양을 의미했다. 총무인사과 다음으로 많은 부서 예산이었고 실질적으로 머리뿐 아니라 몸도 움직여야 하는 3D 성격의 일들이 많았다. 창업 교육을 하기 위해 외부 홍보를 해야 하고 모집 안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날들이 많았다. 창업동아리를 지원하는 일들도 만만치 않았고, 일반창업자 선발과 지원은 더더욱 장기적인 관리가 필요한 업무였다. 이렇게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메일 하나가 왔다. 주관기관에서 보내온 메일이었는데, 특별한 사유도 없이 사업대학들의 실무자들 전체에게 며칠 후에 대전에 있는 주관기관으로 모이라는 내용이었다.
며칠 후 투덜거리면서 각 대학 관계자들이 대전에 모였다. 주관기관의 여차장 한 분이 나오더니 갑자기 종이 한 장을 돌리는데, 천천히 내용을 살펴보다 매우 불쾌해졌다. 뜬금없는 순위표가 들어있었고, 우리 대학 만족도 순위가 최하위권에 자리하고 있었다. 차장의 말로는 본인들이 우리 모르게 각 대학들이 사업을 잘하고 있는지 평가를 했다는 것. 나를 포함 하위권 대학 관계자들 모두가 불만이 있었지만 거기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침묵만 하는 상황. 결국 내가 손을 들었다. 언제, 어떻게 평가가 이루어졌고, 누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건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각 대학에서 창업 지원을 받은 분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다는 답변이 나와서 결국 한마디하고 말았다.
"도대체 이 평가라는 게 어떻게 이루어진 겁니까? 제가 확인해보니 우리 대학에서 지원받은 분들은 이런 평가에 응해달라는 요청조차 받은 적이 없답니다. 그럼 다른 대학에서 지원받은 분들이 우리 대학의 지원현황을 평가했다는 겁니까? 이게 말이 됩니까?"
그랬더니, 비로소 여기저기서 불만과 반론들이 터져 나왔다. 그때서야 당황한 차장은 외주업체 탓을 하며 배포한 서류를 다시 회수하겠다고 말했다.
기가 막혔다. 너희들 똑바로 잘해라 하는 얘기 하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였다는 게 너무 황당했다. 게다가 끝까지 사과는 없었다. 이 해 말에 우리 대학은 회계 감사에서 교육비 집행 건으로 트집이 잡히게 되었다. 해외 연수참가비용을 교육비 예산으로 편성해서 집행했는데, 이걸 다른 협회에서 주관하는 연수에 참여했다는 이해 못 할 이유로 환수 조치를 요구하고 당해년도 평가 결과 감점을 주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이의 제기를 하고 새로 부임한 단장님과 내가 새벽에 대전으로 내려가 재심위원회에 참석했다.
알다시피 이런 기관들의 위원회란 것은 대부분 기관 측 사람들이었다. 예상대로 시작부터 맹공이 이어졌지만, 우리도 물러설 마음이 전혀 없었다.
- 왜 교육비를 창업사업대학협의회가 아닌 다른 협회 연수로 사용했습니까? (위원)
- 해외연수는 교육비 항목으로 애초부터 편성되어 있었고 창업사업대학협의회는 구성이 되어 있지도 않아서 보육센터협회에서 하는 연수에 참여한 것입니다. 교육비 목적에 벗어난 것도 아닌데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단장님)
- 이런 부분이 문제가 될지 안 될지를 최소한 주관기관에 사전 문의라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위원)
-주관기관 담당자와 통화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평소처럼 초기부터 이 사업을 수행해온 주변 대학 관계자에게 이 사항에 대해 문의했고, 특별히 문제 될 부분은 없다는 식의 판단을 받아 진행한 사안이었습니다. (나)
이런 답변에도 위원들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마치 미리 결론을 정하고 온 사람들 같았다. 다만, 위원장은 좀 달랐다.
- 지금까지 얘기를 들어 보니 왜 이렇게 되었는지 소명이 충분히 되었다고 봅니다. 다만 출구전략이 필요한데 어떻게 해주면 되겠습니까? (위원장)
- 이 감사 지적 부분은 금액도 많고 감점도 커서 우리 대학으로선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우니 철회해주셨으면 합니다. 대신 다른 두세 가지 회계 감사 지적사항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습니다. (나)
결국 이렇게 잘 해결되나 싶어 미소가 나오려는 순간, 문제의 그 여차장이 갑자기 위원장을 제지하고 나섰다.
- 안 됩니다 위원장님. 이 대학을 봐주면 다른 대학들도 모두 봐줘야 합니다. (간사)
세상에, 간사가 이런 식으로 위원회에 직접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것도 처음 봤지만, 아예 위원회 결정 사항까지 관여하는 것을 보고 말문이 막혀버렸다. 결국, 어이없었지만 불이익을 고스란히 안고 돌아왔다. 몇 년 후 타 부서로 발령 난 이 여차장이 부하 직원을 시켜 교육 장소 협조 요청 전화를 해왔는데, 단숨에 거절했다.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와의 협약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창업을 지원하는 정책들이 쏟아졌다. 그중 하나가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설립이었다. 각 지역의 창업을 지원하기 위한 전략적 본부였던 셈이었다. 이런 정부 정책이 성공하려면 무조건 기존 조직들과 연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초창기에 우리 대학이 속한 지역의 중소벤처기업 현황 데이터를 구하려고 노력했고, 사업계획서 평가위원들과는 지역 연계의 필요성에 관해 논쟁하기까지 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혁신센터와의 협업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혁신센터 실무팀장은 이 건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초창기라 여러 가지 실무상 바쁘고 정신없을 수 있어 이해는 됐지만 그래도 대학과 혁신센터의 연계는 꼭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설명회 출장 중 우연히 만나 팀장을 설득했다. 결국 센터장님과도 얘기가 잘돼서 협약이 추진됐고, 주말에 총장님을 모시고 광화문까지 가서 협약 체결을 했다. 그리고 나의 이런 적극성에 반한 센터의 추천으로 국회의원들이나 받았던 대통령 명절선물을 받기도 했다.
몇 년 후 정부에서는 전국의 혁신센터와 대학에 공문을 보내 상호 협약 체결 및 협력을 적극 추진하라는 공문을 보내왔다. 여러 비판이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정부의 정책적 판단은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장관상을 받게 된 사연
어느 날 인사처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정부 위원회에서 추진하는 푸드트럭 시범사업을 해야 하는데 맡을 부서가 없다면서 일종의 창업지원사업이니 내가 담당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래서 저는 정부 사업 소속이라 이 외의 일을 맡는 건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정중히 고사했다. 며칠 지나 다시 연락이 왔다. 총무팀에서 못 하겠다고 하는데 김 실장이 해주면 안 되겠냐는 것이었다. 예전 재산관리과장님으로 모실 때 날 적극 지지해주시던 분이라 더는 거절하기도 난감했다. 그래서 사업단 인력은 제외하고 나 혼자 단독으로 일을 떠안았다. 그렇게 행사 추진 관계자로 정부 위원회 회의에 몇 차례 참가도 했다.
회의에서 나온 얘기들을 참고하여 사업추진계획을 작성하고 참가자를 모집 공고했다.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시범 행사에 참여할 한 팀을 선정했고, 관련 협찬이었던 푸드트럭을 받아 운영방안을 만들어 교내 승인을 받았다. 커피 푸드트럭인지라 유명 가맹점 한곳의 협조로 교육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물품 창고도 마련했다. 이후 본격적인 야간 영업을 위해 밤까지 남아 그들과 한동안 함께했다.
주관처인 대통령 직속 정부 위원회의 위원장은 정치적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 대학에서 참여대학의 푸드트럭들을 모아놓고 대대적인 행사와 홍보를 했다. 모든 TV의 9시 뉴스에 메인으로 나올 만큼 홍보 효과는 컸고, 이에 만족한 위원장이 나를 비롯한 참여대학의 실무자들에게 연말에 표창장을 수여했다. 위원장이 장관급이었는지라 교내에서도 홈페이지에 기사가 났고 상은 부총장님에게서 직접 전달받았다. 남들이 하기 싫은 일을 했더니 이런 행운도 오네? 이때 협찬받았던 푸드트럭은 지금 시설팀에서 업무용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
우물 안 개구리
교직원을 오래 하다 보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쉽다. 늘 한정된 공간, 한정된 일과 한정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특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는 익숙한 것만 찾고 누군가는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선택을 한다. 난 후자의 경우였던 것 같다. 겉으로는 익숙지 않은 것에 불편한 태도를 보였지만, 실은 똑같은 일, 변화 없는 시간들을 못 견뎌 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창업 지원이란 분야를 경험하게 된 건 행운이었다.
사업단 초기의 어수선한 상황들이 잘 정리가 된 후,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사업내용에 대해선 기존 인력들의 경험에 맡기고 나는 추진 관련 내부적 문제나 협력을 끌어내는 일에 주력했다. 예상했지만 본부에서는 제대로 협조해주지 않았고, 특히 대학에서 왜 이런 일을 지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푸념과 비아냥도 들었다. 6개월간의 탐색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달랐다. 이것은 시대적 흐름이고 필수적으로 대학이 나서야 하는 분야이며, 무엇보다 4차산업에 대비한 훌륭한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었다.
발령받은 첫해의 어느 날, 평가팀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모 신문사 대학평가 대학 측 자문위원이 됐는데 올해 평가에서 창업 관련 항목이 채택될 것 같다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전화했다고 했다. 일단 학생 창업자 배출 수와 같은 특정 대학들에만 유리한 평가항목은 절대적으로 배제하도록 해야 하고, 학생창업을 지원하기 위한 각종 지원체계와 교육 현황 등이 주요 평가항목이 될 수 있도록 요구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실제 그 해 평가에서 내가 말한 대부분이 평가 요소로 추가되었고 우리 대학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에도 창업 지원 분야에 대한 본부의 인식개선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 사업은 매년 평가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조기 탈락이 되는지라 대학 본부의 협조가 절실한 사업이었지만, 전국 최하위의 교비 대응 대학이라는 이유로 미움을 받아 퇴출 위기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다. 사업비에서 간접비를 떼겠다고 하는 바람에 정부 사업 주관기관으로부터 망신당하기도 했다.
이 일이 제대로 인정받게 된 계기는 따로 있었다. 교육부의 재정지원사업을 준비하는데 평가항목 중 '대학의 창업 지원 노력'이 큰 비중으로 새롭게 추가된 것이었다. 본부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우리 사업계획서를 달라고 해서 제공했지만 제대로 활용을 못 했다. 답답했던 건, 본인들이 잘 모르겠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나에게라도 물어봐야 하는데 전혀 그런 요청이 없었다는 것. 결국 외부인 대상 창업특강실적 등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실적들을 따로 정리해서 보내주었다. 그리고 평가가 끝난 직후 외부 평가위원들이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외부 평가위원장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이 대학을 평가하면서 무엇보다 부러웠던 것은 창업 지원 체계가 너무 잘 갖춰져 있다는 것이었어요."
결국 우리 대학은 대박의 결과를 받았고, 당시 담당자는 이 모든 게 창업지원실적 덕분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녔다, 아이러니했던 건 이 친구가 대학 창업업무에 가장 부정적인 사람 중 한 명이었다는 것,
풍월 읊는 서당 개?!
이 부서에서 5년간 근무하다 보니 풍월 읊는 서당 개가 된 기분이 들었다. 각종 아이템 심사나 투자를 위해 찾아오는 외부 전문가들과 교류할 때가 많았는데 그들로부터 많이 배울 수 있었고, 창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부터 대기업퇴사자, 은퇴한 기술자들에게서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열정과 노력의 의미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참 감사한 일이었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 중 가장 어렵고 신경 쓰였던 건 아무래도 창업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무엇보다 교육생 모집이 힘들었다. 사실 지금도 창업에 도전한다는 건 대단하고 쉽게 결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렵게 그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발굴해서 교육에 참여시키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한 일은, 무조건 첫날부터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이었다.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들, 낯선 교육내용에 적응하기 쉽지 않은데 첫날부터 반겨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만큼 부담감이 덜 생기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교육내용에도 신경을 써서 순차적으로 연계해서 배워나갈 수 있게 구성하려 애썼고, 특히 현장 전문가들을 통한 발표심사에 주력했다. 그러다 보니 그분들이 하는 말들을 나도 새겨듣게 되었고, 개인 면담 시 그들처럼 말하는 법도 배웠다. 그분들도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했는지, 내가 대타로 짧게 진행한 30분짜리 특강에도 많은 박수를 보내주었었다.
지역구청의 의뢰로 1년 6개월간 창업자문위원 활동도 했다. 지역 창업지원센터 입주할 기업 심사를 주로 맡았는데 공무원분들이 보기에도 무난해 보였는지 이동 발령이 날 때까지 계속 활동하게 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