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악마를 보았다
첫 임무, 첫해의 입시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처장님과 팀장님 포함해 모두의 호흡도 잘 맞았고 사건·사고 없이 잘 마무리가 되어 한시름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또, 이동 발령이 났다. 팀장님과 함께였다. 인정할 수가 없었다. 발령 나자마자 바로 3일간 휴가를 내고 가족들과 아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인사처장님이 계속 전화를 해왔다. 받지 않았다. 받을 수도 없었다. 가족들은 내가 발령 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돌아오는 날에야 아내에게 얘기했다.
인사발령의 이유
인사발령의 대략적인 이유는 알고 있었다. 입사 동기이자 동문 후배였던 녀석이 노조위원장의 임기를 마친 직후였다. 녀석이 팀장 승진과 함께 입학팀 발령을 원했고 그걸 인사처장이 들어준 것이었다. 노조위원장을 마치고 특혜를 받는다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선배들을 밀어내고 이 팀으로 보내달라고 했다는 건, 한마디로 나와 팀장님을 우습게 본 것과 같았다. 이게 내가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휴가를 마치고 발령받은 평가분석센터로 첫 출근을 하는데 도저히 감정이 안정되질 않았다. 그런 상태로 운전하다가 기어이 사달이 났다. 교차로에서 좌회전하다가 앞서가는 택시 뒤 범퍼를 들이받았다. 어리숙한 운전자의 차량이 무리하게 끼어드는 바람에 발생한 사고였다. 가벼운 사고여서 기사님에게 10만 원 건네주고 마무리했다. 그렇게 언짢은 상태로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인사처장실로 갔다. 처장님은 노조위원장 출신이라 배려하는 게 관행이라면서 함께 일하게 되면 내가 난처해지니 (날 위해) 발령 냈다고 했다. 그 말에 더 화가 났다.
"처장님, 저 지금까지 한 번도 인사발령에 대해 왈가왈부한 적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 건에 대해선 도저히 참기가 어렵습니다. 언제부터 노조 간부 출신들에게 특혜를 주었습니까? 처장님, 저랑 총무인사과에서 일할 때 일을 잊었습니까? 그때도 노조 간부라고 관리소장님에게 특혜를 주는 바람에 얼마나 말이 많았는지 다 까먹으셨습니까? 그때도 그랬고 그전에도 그랬습니다. 노조 간부라고 인사상 특혜를 주는 걸 암묵적으로 경계해왔습니다. 그런데 이걸 관행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인사처장은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했다. 잠시 날 쳐다보면서 침묵하다가 말했다.
"미안하네."
그 말을 뒤로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렸다.
악마를 보았다 1
내가 발령받은 평가분석센터의 센터장은 기획팀장이 겸직하고 있었다. 팀에는 기존에 일하던 주임과 담당이 있었고 난 평가과장으로 오게 됐던 것. 뒤늦게 녀석들과 인사를 나누고 현안을 챙기는데, 주임 녀석의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기획력이 있고 업무수행 방식도 남들이 흉내 내기 어려울 만큼 창의적이며 분석적인 성향을 보인 친구였다. 그런 녀석 때문에 괜한 고생을 한다고 특히 여자 선생님들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있던 걸 알고 있었지만, 녀석의 건강 상태가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다. 일 년 내내 제시간에 퇴근해본 적이 거의 없었단다. 비록 내가 센터장은 아니었지만, 녀석들을 팀장처럼 이끌어야 하는 처지였기에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올해는 평가도 없고 또 당분간 해야 할 일들은 미리 다 세팅해두었다 하니 기존에 해왔던 대로만 합시다. 새로운 일을 벌일 생각은 금지. 그리고 이주임은 무조건 병원부터 가. 당장 수술이 어렵고 또 여러 번 해야 한다고 해도 지금 상태로 방치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녀석의 상태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다. 허리가 결딴이 났는데 수술 한 번으로는 해결이 안 되고 두어 번 이상 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까지 무리하면서 일을 한 건 녀석의 성향 탓이기도 했을 것이다. 공동번역서와 단독저서 한 권을 냈을 만큼 재주가 많았고 대교협에서 다른 대학 직원들 대상으로 특강도 몇 차례 불려 나갈 만큼 뛰어났음에도 늘 겸손하고 잘 참았던 친구였다. 이런 친구를 무분별하게 비난하고 인신공격했던 타 부서 동료들이 악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마를 보았다 2
한 달이 지나도 이번 인사에 대한 나의 분노는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맡은 일을 성실히 하고 또 잘 해냈지만 돌아온 건 모멸감이었다. 이런 감정은 처음 느껴봤다. 그러던 중에 직원 연구년 시행에 대한 공문이 왔다. 도저히 지금 같은 마음으로는 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했다. 그리고 인사처장님에게 연구년 지원했으니 참고하시라고 통보하듯 얘기하고 왔다.
며칠 후 인사위원회가 열렸다. 지원자는 내가 유일했지만, 결과는 불허였다. 또다시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알아보니 인사위원회에서 인사처장님이 '사전에 얘기해서 연구년 신청을 포기하기로 했다'라고 거짓말을 했단다. 죽이고 싶을 만큼 사람이 미워진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성악설이 내 확신이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당시 내게 직접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동의한 노조위원장 후배와 인사팀장도 괘씸했다. 후에 이 인사팀장은 나와 똑같은 일을 겪었는데, 자기가 처음 당한 것처럼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구하고 다녀서 내 비웃음을 샀다. 노조위원장 후배 녀석도 노조회비 횡령 문제가 제기되어 한동안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졌고 결국 많은 사람에게 인심을 잃고 말았다. 인사처장님은 중도 보직 탈락 후 한동안 건강 문제로 고생하다가 결국 명예퇴직했다,
산업계 대학평가에 관한 생각
당시 대학을 바라보는 기업계의 시각이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받고 있었다. 대학의 교육이 실용적이지 않아서 기업체에서 대졸자 채용 후 큰 비용이 추가로 들어간다는 얘기. 어느 정도 나도 동의하는 바였지만, 막상 평가 결과 설명회에 가서 기업관계자들의 말을 듣다 보니 화가 났다.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을 산업체 인력 양성 목적으로만 바라보는 편협된 시각 때문이었다.
대학은, 실무 인력 양성 외에도 학문의 발전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가진 교육기관이다. 많은 사람이 대학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실무교육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면서 우리나라에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안 나오는 이유에 대해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이해는 하지만 솔직히 이것이 사립대학들만의 잘못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산업계에 필요한 인력은 산업대학이라는 교육기관에서 배출하고 있고, 실용적인 교육 위주의 전문대학도 있다. 그런데도 어찌 보면 기업들의 인재 욕심이 소위 말하는 스카이대학에 집중되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고등교육정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기초학문의 발전은 국공립대학을 활용한 국가의 책무라 생각했다. 사립대학들이 백화점식으로 학과들을 운영하는 부분에 대해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지도록 유도하되, 국공립대학들은 학자와 연구자를 배출하기 위한 집중적 투자와 운영으로 구분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연구자와 실무인력 양성을 동시에 하는 사립대학들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