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라, 나의 봄들아

제7화. 올바름의 결말

by 나춘봉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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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은 기분이었다. 학생취업팀에서의 1년은 고되지만 보람차고 행복했었다. 더 많은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새로운 목표도 세웠었다. 예산도 충분히 확보해둔 상황이었는데 1년 만에 기획과장으로 이동 발령이 났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사였다. 비록 내 능력을 높이 사서 내린 결정이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당황스러웠다. 영전이라 생각했던 다른 사람들은 그런 내 심정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처음 시작은 좋았다. 새로 부임한 총장님이 대학 홍보에 지대한 관심이 있어 학교 슬로건을 공모했는데 내가 덜컥 2등에 선정됐다. 실제로 내가 작성한 일부 문구가 신규 슬로건에 반영됐다.

그 막중한 대학평의원회의 간사 역할도 무난하게 수행했고 총장의 중점사업인 대학 학사구조 시행도 적극적으로 도모했다. 취업 지원일을 하면서 인연을 맺은 기업관계자분들께 의견을 물어 개혁의 방향에 참고했다. 타 대학의 동향 조사도 적극 시행했고 이에 따라 우수 교원 채용의 방향에 대해 의견도 개진했다. 언론사 대학평가 결과에 따른 대책으로 분교통합방안을 검토하라 해서 보고서를 제출했다. 우연히 우리보다 낮은 순위의 경쟁대학이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음을 발견, 관련 내용을 분석한 후 이에 대한 대책의 필요성을 원페이지 보고서로 처장님과 팀장님에게 보고했다. 개혁 정책 추진에 따라 정신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 모든 노력이 결실을 보지는 못했다. 학사구조개혁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이루어졌고, 우수교원 채용방안도 수용되지 못했다. 본·분교 분리 방안으로 본·분교 유사학과 일치율을 낮추도록 제시했으나 결국 신규학과 몇 개 개설하는 것으로 정리되었고 본·분교 분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경쟁대학 동향보고서는 가볍게 무시되었고, 몇 달 후 언론사 대학평가에서 경쟁대학은 우리 대학보다 월등히 우수한 순위를 확보하면서 학교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저항과 인고의 시간들

당시 학교에선 총장님과 관련해 이상한 소문들이 떠돌기 시작했다. 총장님이 했던 몇몇 사적인 얘기들이 다 거짓말이고 출신대학에서도 이분이 우리 학교 총장님이 된 걸 이상하게 여긴다는 얘기들이 떠돌았다. 실제 보직자들도 본인 출신대학을 선호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사실이었다. 이상한 스캔들도 났었다.

어느 날 총장님 주도로 학교 정보통신망을 A 업체에 독점적으로 맡기려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와 관련 총장님에게 몰래 혜택이 개인적으로 제공되기로 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업으로부터 협약서 초안이 와서 검토하게 되었는데 기획팀 모두가 이런 식의 협약은 불가하다는 결론을 냈다. 하지만 총장의 결심은 완고했다. 고심 끝에 처장님의 아이디어로 총장님의 아들이 재직하는 법무법인에 협약서의 내용에 대한 검토를 의뢰하기로 했다. 협약 체결 전날 밤에 협약서가 아니라 계약서의 효력을 가진다는 결론이 회신 되어 왔다. 즉시 관련 내용을 총장님께 보고했다. 결국 협약서를 수정하기로 하고 그 밤에 몇 차례 수정안을 메일로 보내고 받았다. 자정이 넘어서야 상호 합의가 되어 새벽 1시 좀 넘은 시각에 최종 승인을 받고 수정 협약서를 만들어 몇 시간 후 협약 체결을 했다.

다음 학기엔 느닷없이 건물 증축에 관한 얘기가 튀어나왔다. 해당 대학 학장님이 외부인의 꼬임에 빠져 총장님께 보고해서 본격적인 추진이 확정된 상황이었다. 제안서를 검토하는 건 내 몫이었다. 우선 공간배정안에 문제가 있었다. 증축한 공간을 임대하겠다고 하는데 책정된 임대료가 현실에 맞지 않게 비쌌다. 또한 기존 교수님과 학생들에게 공간적으로 이익이 될 내용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보고에도 총장님이 계속 추진하려 해서 교내 건축 관련 교수님들로 급하게 위원회를 꾸려 재검토했지만,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이를 추진하는 사람들의 정체도 수상했다. 건설팀 담당자 말로는 이 정도 규모면 대형건설사에서 제안서 들고 오는 사안이라는데 학장과 연계하고 있는 사람들은 급조한 것처럼 보이는 생소한 회사의 회장과 망한 분양대행사 출신의 간부였다. 이들이 이사장님과의 친분도 사칭하기에 법인 관계자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했고, 이 모든 내용을 담아 내가 직접 원페이지 보고서를 작성, 처장님께 추진하면 안 된다는 보고를 드렸다.

처장님께 보고 후 한 시간쯤 지나 갑자기 총장실에서 기획팀장과 과장 둘 다 오라는 호출이 왔다. 총장님이 화가 많이 났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렇게 불려가서 대기실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총장님을 대면하지 못하고 결국 사무실로 돌아왔다. 알고 보니 이 모든 사단은 처장님이 내가 쓴 원페이지 보고서를 직접 들고 가서 총장님께 보고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었다. 우리가 대기실에 있는 동안 총장님은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법인 관계자를 이 보고서와 엮어 쳐내는 작업을 했다.


올바름의 결말

이 일로 내게 도움을 줬던 그 법인 관계자는 결국 대학으로 쫓겨났다. 나와 팀장님도 총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사 대상이 되었는데 결국 나만 조치가 이루어졌다. 1년 만의 퇴출 인사였다. 사람들은 내가 총장 지시를 제대로 수행 못 했다는 식으로 추측해서 얘기했다. 내 소신에 따라 행동했기에 후회는 없었지만, 나의 올바름이 무능함으로 얘깃거리가 되었던 상황은 나의 주변인들에 대한 신뢰감을 반감시켰다,

총장님은 다음 해 중반에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결국 중도 퇴임했다. 이런저런 고발도 이루어지면서 결국 법적 처벌까지 받게 됐다. 사필귀정이었다고나 할까. 어찌 보면 당시의 기획팀 사람들 때문에 죄가 더 늘어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A 업체 회장님도 법원의 판결을 받고 감옥에 갔다. 이후 우리와의 협약서를 검토해서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 수정 작성된 협약서로 인해 포기했다는 말이 들렸다. 이와 관련 후속 처리를 하게 된 타 팀 팀장님이 이 협약 관련 뒤처리를 하는 것에 대해 생색을 내며 마치 본인들 덕분에 일이 잘 해결된 양 말하고 다녔다는 얘기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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