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라, 나의 봄들아

제8화. 팀장님의 눈물

by 나춘봉씨

그렇게 쫓기듯 기획팀을 나와 입학과장 자리로 이동했다. 몸은 고되었지만, 별도 수당이 지급되었기에 누구나 가고 싶어 하던 부서였다. 질책성 인사라지만 실질적으로는 날 배려해주는 인사였다. 내가 취했던 행동들이 학교에 도움이 되었다는 걸 알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사실 당시 입학팀장님이 나와 인연이 있던 전 학생취업팀장 출신이었기에 그때처럼 날 원했던 건지도 몰랐다. 특유의 까칠한 성격 때문에 부하직원들과 갈등을 겪어서 소문까지 날 정도였다. 갈등 관계에 있던 두 팀원은 결국 다른 부서로 이동했다. 처장님도 나와 친했던 인문대 소속 교수님이셨다.

며칠 후 나와 또 한 명의 담당자에 대한 환영 회식이 열렸다. 워낙 힘든 부서라 서로 간에 끈끈한 유대감 같은 게 느껴졌다. 2차로 노래방에 가게 됐는데 뜬금없이 처장님이 날 지목하면서 만세 삼창해서 당황했다. 팀장님뿐만 아니라 처장님께도 이렇게 환영받는다 생각하니 어리둥절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우울했던 기분을 떨칠 수 있게 다들 날 도와주려고 하시는 것 같아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입시홍보의 추억

사정관실의 주도로 입시홍보 활동에 입학팀 전원이 참여하게 됐다. 내 차를 직접 운전해서 지방의 고등학교들을 방문했다. 광주지역을 방문했을 때였다. 최초 방문이라 반응이 궁금했다. 대형 컨벤션홀에서 광주지역 고교 선생님들을 초대해서 식사와 함께 대학 홍보와 함께 학교 입시계획을 설명했다. 뒤에서 영상들을 보며 서 있었는데 얘기가 들렸다. 돈 X랄 하러 왔냐는 식의 얘기…. 잠깐 내 귀를 의심할 정도로 놀랐다. 선생님들인데…. 행사가 끝나고 가시는 길에 홍삼 선물을 드렸었는데 선생님들이 엄청나게 좋아하셨다. 광주를 처음 가봤는데 개인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부산 감천동에 있는 학교에도 갔었다. 어딘지 잘 모르고 내비게이션만 따라가다 깜짝 놀랐다. 외국 같은 알록달록한 마을풍경에 한눈에 반했다, 신문 기사에서 봤던 그 풍경이 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마지막 날 저녁에는 다 같이 해운대에 가서 회식했다. 처음으로 이상한 음식을 먹었다. 바닷장어였다. 처음엔 너무 징그러워서 다들 꺼렸는데 한번 맛보더니 잘 먹었다. 보기와 다르게 맛있었다. 바닷가 포차에서 소주 한 잔씩 하면서 피로를 씻겨내고 다음 날 서울로 돌아왔다,


팀장님의 눈물

6개월 만에 갑작스러운 인사발령으로 처장님이 바뀌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전임 처장 환송식이 열렸다. 어찌어찌해서 길었던 1차 회식이 끝나고 술을 더할 몇 사람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B 주임의 다급한 전화를 받게 되었다.

"과장님, 빨리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여기 분위기가 좀 안 좋아요. 신임 처장이 직원들 다 어디 갔냐고 하고. 암튼 좀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술들이 과해지셨나 보군, 그냥 가버릴까? 하다가 아무래도 B 주임의 목소리가 마음에 걸려 차를 돌렸다. 맥줏집에 도착해보니 전임 처장님은 이미 자리를 떠났고 신임 처장님과 우리 팀원들, 팀장, 그리고 입학사정관 O 실장님과 사정관 2명이 앉아있었는데 생각보다 분위기는 괜찮았다. 중간에 어찌어찌해서 신임 처장님도 떠나고 우리도 호프집을 나왔다. 중간에 B 주임에게 어찌 된 일이냐고 물으니 내가 오기 전까지 정말 분위기가 안 좋았었다고 한다. 그가 말해준 상황을 정리해보면 이랬다.

- 평소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전임 처장님과 팀장님 사이에 약간의 설전이 있었고

- 술이 과해진 신임 처장님이 매우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말투를 드러내 팀장님이 또 기분이 상했고

- 남아 있던 입학사정관들에게 당신들은 아직 멀었다, 공부를 한참 더 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해서 자존심을 흔듦과 동시에 교체에 대한 가능성을 던져 그녀들에게 상당한 심리적 충격을 가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상황이 어땠을지 알만했다. 내가 다시 돌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충 상황이 정리되어 있어서 다행이지 싶었다. 그런데 팀장님이 취했다! 팀장님은 다짜고짜 근처 모텔 지하 단란주점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갔다. 신시사이저 반주에 아주 오래된 노래들, 묘하게 돌아가는 불빛과 모르는 남자의 손을 잡고 무대 위를 돌고 도는 여인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난감했다.

일단 팀장님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평소 온순하고 모범생 같은 인상에 인문대 교수이기도 했던 O 사정관 실장님은 그냥 고개만 숙이고 앉아있었다. 처음 들어올 때부터 플로어에서 온몸을 불사르던 그 여인네가 갑자기 내게 와서 손을 잡아끈다. 왜 이렇게 매너가 없냐는 말에 할 수 없이 따라나선다. 그냥 팀장님 옆에 서서 손뼉만 쳤다. 아무래도 놀 분위기가 아니었다. 팀장님의 심장 안에 크게 터뜨려야 할 무언가가 있었다고 느꼈다. 팀장님이 두 번째 노래를 시작했을 때 자리에 잠시 돌아와 입학사정관 두 사람을 먼저 집으로 보냈다.

그곳에서의 술자리는 일찍 끝났다. 애초부터 놀고 싶어 들어온 곳이 아니었었다.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는데 갑자기 팀장님이 O 실장님을 붙잡고 욕을 하기 시작했다. 전임 처장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내가 지 일 년 선배고 마누라가 자기랑 같은 과 동기인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느냐, 내가 끝까지 가만 안 둘 거다, 내가 죽을 때까지 지켜볼 거고 가만 안 둘 거라는 말을 반 울음소리로 뱉어냈다. 간신히 달래고 싫다는 걸 억지로 택시에 태워 가시게 했다. 팀장님의 기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임 처장님과 친한 O 실장에게는 괜히 미안했다. 나랑 따로 술을 한잔하면서 얘기 좀 하자는데 내가 술을 많이 드신 것 같으니 내일 보자고 달랜 후 후배들과 함께 택시를 잡아드렸다.

후배 B 주임, J 선생과 학교로 돌아오는데 B 주임이 그런다. 신임 처장님이 보기와는 달리 매우 권위적인 사람 같다, 팀장님이 불쌍하다, 너무 마음이 약하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처장들이 무시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우리가 팀장님을 편들어드리고 잘 모셔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팀장님이 센 척하지만 원래 마음이 약하고 잘 당한다. 앞으로 우리가 일할 때 되도록 팀장님 편에서 일해야 한다, 오늘도 봐서 알겠지만, 교수 처장님들에게 흠 잡히지 않게 일할 때 더욱 신경 써서 하고 오탈자 같은 거 주의해라. 특히 회의 같은 데서 팀장님과 처장님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게 해라, 될 수 있으면 사전에 조율하고 그런데도 의견 충돌이 있을 땐 팀장님 편에 서서 조율을 다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단합된 모습을 보이면 처장님도 함부로 무시하지 못할 거야.

상황들을 다시 돌아보면 참 마음이 아렸다. 교수라는 이유로 교육행정이라는 분야에서조차 자기가 최고인 양 목에 잔뜩 힘을 주는 처장들, 나이도 적고 행정 경험도 적고 동문 후배임에도 불구하고 처장이라고 고참 팀장을 함부로 대하는 고약한 심성들, 그걸 어찌하지 못해 속으로 끙끙 앓는 선배 직원들의 구질구질함 등등…. 사실 내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은 이거였다.

- 오늘 팀장님의 모습이 우리들의 미래다. 이게 싫으면 더더욱 분발하고 부지런히 실력을 쌓아라.


입시부정 논란 고교 방문

새로 오신 처장님은 처음 구성원들에게 실수 아닌 실수를 하신 듯했지만 내게는 잘 대해주셨다. 당시 기사에서 대학의 농어촌전형에 지역 유명 자사고들이 부정 전입의 방법으로 학생들을 입학시킨 사례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었다. 의욕이 넘쳤던 처장님이 내게 그 고교 중 한 곳에 대한 출장을 제안했다. 처장님의 제안이니 따를 수밖에 없었고, 입시정책과장인 내가 직접 모시기로 했다.

4시간 이상을 달려 도착한 전남지역의 한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을 만났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얘기를 들어봤는데 결국 부모님들의 욕심 때문이라는 변명만 들었다.


전쟁 같았던 입시

입시 일은 상상 이상으로 고됐다. 야근은 기본 중의 기본. 일일이 손이 가는 일들이 많았고, 한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도우미 학생들도 힘들어했다. 전화 문의가 폭발할 땐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였다.

입시경쟁률이 괜찮았고 입시 진행 중 다행히 별 탈도 일어나지 않았다. 팀장님은 전년도에는 체육 입시에서 사고도 있고 학부모 민원들도 많았었는데 올해엔 한 번도 그런 일이 안 생겼다면서 이게 다 내 덕분이라고 공치사하셨다. 모두의 노력 덕분인데도 내게 그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했다.


홍보담당자와의 갈등

합격자 통보를 앞둔 어느 날, 처장님이 메일을 하나 들고 찾아오셨다. 교내 홍보실 담당자로부터의 메일이었다. 내게 미리 합격 관련 정보를 달라길래 아직 결재 전이라 주기 어렵다고 했는데 그 일로 처장에게 항의 메일을 보내온 것이었다. 너무 어이없었다. 아무리 기자 출신이라지만 교직원이 된 이상 학교 행정의 절차를 따라야 하고 더구나 공식 기사로 나가기 전에 미리 내용을 알려준다는 건 내 권한 밖의 일이었는데도 이렇게까지 항의할 일인가 싶었다. 더 황당한 건, 이 일에 대해 내게 책임을 물어달라는 내용이었다.

도저히 참기 힘들었다. 처장의 만류에도 전화와 방문으로 그 담당자를 찾아다녔다. 그는 처장에게 언질을 받았는지 내내 나를 피해 다녔고, 그러다 3개월째에 결국 계단에서 맞닥뜨렸다.

"나 좀 봅시다.“
라고 했더니 그는 바로

"제가 죄송했습니다."라고 하면서 냅다 다른 곳으로 뛰어가 버렸다.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사과받았기에 더 이상 사적인 문제 제기를 안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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