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라, 나의 봄들아

제11화. 파국

by 나춘봉씨

배우면서 즐겁게 일할 수 있었던 창업관리단에서의 5년을 뒤로 하고 새로운 발령을 받았다. 사실 속으로는 이동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결국 발령이 났다. 기획팀장으로….

당시 총장님이 교수협의회 회장이었을 때의 일로 인해 사람을 덜 존중한다는 느낌도 받았었다. 내가 불안하게 느꼈던 이유였다. 미리 연락해온 인사처장에게 왜 하필 지금이냐고 물었더니 본인이 한 인사가 아니었단다. 알고 보니 이번에도 비서실장님의 작품이었다. 어쩔 수 없이 기획팀으로 가서 전임 팀장님을 만났더니 내게 한 더미 산처럼 쌓인 서류 더미를 내밀었다. 이게 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면서….


미션 1. 민자기숙사 연장 승인

발령 후 이틀쯤 지났던 것 같다. 부총장실로부터 아침부터 면담 요청이 들어왔다. 부총장님은 나를 보자마자 대뜸 도와달라 하셨다. 민자기숙사 운영 연장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6개월째 진행이 안 된다면서, 기획팀장이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학교가 해를 입지 않는다고 하셨다. 실제 연장승인을 받지 못하면 최소 교비 90억 이상의 긴급 투입이 발생하는 중요한 사안이라고도 했다. 내가 도와주면 적극적으로 포상을 건의하겠다는 약속도 하셨다.

자리로 돌아와 담당자를 불러 그간의 진행 과정과 면담 얘기를 하고 일을 다시 추진했다. 그런데 당사자인 기숙사를 포함, 타 부서에서의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담당자가 감정이 폭발했다. 팀장인 내게 왜 자기가 이 일을 해야 하냐며 큰소리를 냈다. 학교 일에 네 일 내 일이 어딨고 더구나 기획팀은 필요하면 학교의 모든 일에 관여하는 게 당연하다고 이해시켜보려 했지만, 그는 결국 이 일은 기숙사 일이니 자기는 더는 안 맡겠다고 반발했다. 순간 욱해서 혼을 낼까 하다가 그간의 사정과 상황에 이해되는 부분이 있기도 해서 이제부터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이 일에서 손 떼라고 했다.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임시 TF 구성이었다. 관련 담당자들을 찾아가 개별 면담을 통해 일의 중요성과 학교가 보게 될 피해 등을 얘기하며 설득했다. 다행히 얘기가 잘됐고, 기숙사에서는 회계 분야 경험자 교체를 통해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이후 교육부 담당자를 찾아가 면담했고, 아무래도 새 정부의 정치적 입장을 고려하는 듯해서 연장 승인 명분의 타당성을 구축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부총장과 함께 교육부를 방문, 실무과장에게 명분에 대해 따져 물었고 이후 비로소 실무적인 논의들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교육부는 기숙사비가 비싸 반값으로 내려야 한다는 의견이었고 우리는 민자유치를 받았기에 정부 지원을 받아 기숙사를 운영하는 경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걸 주장했다. 더구나, 민자유치가 대학 최초다 보니 초기 승인 시 다른 대학들보다 짧게 운영 승인을 받은 부분을 적극 어필했다.

이후 교육부에서는 회계사 등을 고용한 듯, 구체적인 회계자료들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나는 기숙사 담당자와 TF 내 회계사 출신의 직원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필요시에는 내가 직접 나서서 담당관과 1시간 이상 논쟁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모든 방어를 완벽히 해냈고, 좀 시간은 걸렸지만, 대학기숙사 연장승인 건은 잘 해결됐다. 교육부 승인 공문이 떨어지던 날, 부서 내 최초 담당자를 불러 앉혔다. 녀석의 첫마디는 '제가 처음부터 안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고요'였다 그냥 ‘네가 시작했으니 네가 마무리해라’ 하고 말았다.


미션 2. 융복합 학과를 지원하라

어느 날, 처장님이 불러서 갔더니 어느 교수님이 면담을 다녀갔다며 대학원 내 융복합 학과들에 대해 행정지원 방법을 마련해 달라는 요구가 떨어졌다. 총장님의 지시로 대학원에 융복합 학과들을 여럿 신설했는데, 다른 학과들과 달리 학부 베이스가 없다 보니 행정적 업무부담이 학과장님들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돌아와서 해당 학과들의 재적인원들을 살펴보고 필요한 지원사항들을 도출했다. 처장님께 재적인원 기준으로 두세 개 학과를 묶어 행정조교 정원을 배정하는 기준과 공간배정안을 보고 후 대학원 측의 협조를 받아 즉시 조치에 들어갔다. 이후 학과장님 한 분으로부터 감사의 전화를 받았다. 개인적으로 기존학과의 통폐합 없이 무분별한 융복합 학과를 신설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이 당시엔 당장 벌어진 상황을 수습하는 게 우선이었다.


미션 3. 연구지원처 신설

기숙사 건부터 밀린 과제들을 처리하다 보니 주변 현실을 살피지 못했다. 내 성격 탓이기도 했지만, 이때엔 좀 더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았어야 했다. 명분에 따라 일하는 게 맞지만, 조직에서의 상황은 옳고 그름의 문제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기도 했다.

전임 팀장은 기숙사 건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총장의 지시사항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다. 그 결과 나를 잘 아는 비서실장님의 추천으로 내가 기획팀으로 오게 됐고 내 주요 할 일은 그동안 멈춰있던 총장님의 지시사항들을 원활하게 추진하는 것이었다. 평소처럼 명분을 따져서 해야 할 일이라면 적극 추진했다.

연구지원처 신설 건도 그런 일 중 하나였다. 오래전부터 정부 재정지원사업을 비롯해, 각종 정부 과제들을 수행하려면 산학협력단과의 긴밀한 협조가 필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H 대학의 사례들을 조사해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연구지원처 신설은 당시 산학협력단이 비협조적으로 나와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위원회부터 꾸리고 명분을 쌓아갔다. 최종적으로는 법인이사회로부터 승인 불가 판정을 받았다.

산학협력단의 비협조가 컸지만, 내부적으로도 자충수를 둔 게 있었던 모양. 알고 보니 총장님이 부임하면서 연구처라는 조직을 없애놓고 다시 만들겠다 하다 보니 명분을 떠나 이사회의 반발을 사게 된 게 컸다. 이런 상황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추진했어야 했는데 그저 명분만 생각하느라 제대로 상황을 살펴보지 못한 나의 미숙함이 잘 드러난 사례였다. 총장님과 이사장님 간의 사내 정치가 전개되고 있었던 걸 사전에 인지하지도 못했다. 단장이 처음부터 비협조적으로 나왔던 이유에 대해서도 잘 따져봤어야 했었다. 이런 나의 미숙함이 불러온 파문은 매우 컸다. 당장의 결과는 우선 부총장과 기획처장 경질이었다. 내가 발령받은 지 6개월 만에 벌어진 사태였다. 여담이지만 차차기 총장님의 부임과 함께 결국 연구처가 재신설되었다. 목적은 산단 자금 확보와 재정지원사업 추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임이 너무나도 명약관화했다,


파국

애초에 발령받았을 때의 불안한 예감이 다시 떠올랐다. 정치적 야심이 생긴 총장님이 무리하게 일정을 강행하는 바람에 이사장님과의 사이가 틀어졌고, 그 파장은 생각보다 컸다. 즉시 총장님에 대한 직위해제와 징계 조치가 들어갔다. 다음 해 정기인사 때에는 인적 쇄신도 진행됐다, 원치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총장님의 사람이 돼버린 나 또한 쇄신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이런 혼란기에 누군가는 기회를 얻고자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나는 또다시 같은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는 우스운 결과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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