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라, 나의 봄들아

제13화. 다시 입학팀으로

by 나춘봉씨

당시 원장과의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원장 뒤에는 S단장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었다. 본인과 대립했던 총장을 도와 연구처를 신설하려 했던 일에 반감이 있었고, 형평성과 업무량 등을 고려, 전체적인 계약직 처우개선 건으로 다뤄야 한다며 산단 인력들의 단독 급여 인상에 반대했던 것에 악감정을 가졌을 사람이었다. 결국 이곳에서 1년 만에 입학팀장으로 발령받게 되었는데, 이게 내게 위로받았던 후배 인사팀장이 모종의 움직임을 읽고 날 위해 밀어붙인 대책이었단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어쨌거나, 일종의 피난처인데 좋은 곳으로 오게 됐다.


합리적 개선 시도

당시 나와 같이 발령받은 담당 중에 예산팀 출신이 있었다. 예산팀에서 일할 때 좀 고지식한 면이 강해서 사람들에게 한마디씩 들었던 적도 있었다. 이 친구에게 예산편성과 고사 관리 업무를 맡겼더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나 보다. 일 처리가 늦고 마음에 들게 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녀석에게 한마디 했다.

"남의 서류를 검토만 하다 직접 서류를 만들려니까 쉽지 않지? 남들 만든 서류 지적할 땐 몰랐겠지만, 하나하나 쉽게 만들어진 서류는 없는 법이야. 어때? 직접 해보니까 알겠지?"

녀석에게 고사본부 지원 인력 배치 관련해서 개선점을 찾으라고 했다. 기존처럼 단순히 고사 인원만 보지 말라고 했다. 고사본부의 일은 수험생 수 외에 고사실 수와 감독자 수와도 관련이 있으니 그런 점을 고려해서 지원 인원을 재배치하라고 지시했다. 입시예산은 어차피 소진하는 게 목적이니 새벽에 나와서 고생하는 관리실 인원들과 그 외 입시지원 인력들에 대해서 너무 박하게 굴지 말라고 했다. 최우선으로 일이 문제 없게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말고 작은 것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무능한 리더

대학원에 근무할 때 대학 본부에서 행정조직 개편을 위한 외부 컨설팅을 시행했었다. 당시 컨설턴트들과의 면담을 통해 일이 잘될까 의문을 가졌었다. 매켄지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규모 있고 경험이 많은 업체였으면 좋았겠지만, 이 회사는 그렇지 않았다. 실제 컨설턴트들과 면담해보니 교육행정에 대한 경험과 이해도가 많이 떨어졌다. 나중에는 보고서조차 별도로 동원된 직원들이 쓰고 있다는 소리가 들렸다. 입학팀 직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녀석은 스스로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조언을 해주긴 했으나 소용없었다. 그러다 수시가 시작된 후에도 동원 요청이 들어와 기획팀장에 또 한마디하고 말았다.

"지금 입시가 시작되고 있는데 기획팀에서 내 직원을 계속 쓰겠다고요? 처장님이 된다 해도 난 승인 못 합니다."

당연히 돈 받은 외부 업체가 써야 할 결과보고서를 내부 직원들을 동원해서 쓰게 하는 것도 어이없는데, 입시팀 직원을 입시가 시작된 후에도 계속 자기네 일에 동원하겠다는 게 너무 괘씸했다. 도대체 기획팀 직원들은 뭐 하는 사람들인가 싶었다. 얼마나 능력이 없으면 타 부서에서 일 좀 한다는 직원들을 자기네 일에 동원할까 싶어서 화가 났다. 내 밑에 있던 그 직원은 결국 1년 후에 본인의 욕망대로 인사팀으로 발령받았다. 이후에 이런 행태가 당연한 것이 되고 본부부서가 지시만 내리는 갑질 부서가 돼버린 결정적 출발점이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 했다. 무능한 리더가 조직의 발전에 미치는 해악을 직접 경험하고야 말았다.


부실한 컨설팅의 폐해

잘못된 컨설팅의 해악은 내가 속한 부서에 즉시 영향을 발휘했다. 마땅한 개편 거리가 없다 보니 타 대학 사례를 들면서 입학팀과 사정관실을 통합시키는 걸 결과로 제시한 것이었다. 업체 컨설팅 비용과 보고서작성에 동원된 이들에 대한 추가수당까지 감안하면 그 결과는 너무나 참담했다. 입학팀 통합은 타 대학에서 이미 실시했다가 다시 분리되고 있음에도 이런 결정을 한 이유가 뻔했다.

이와 관련해서 내가 통합팀장으로 결정이 됐다. 거의 스무 명쯤 되는 팀원들을 거느리는 거대 팀의 팀장, 게다가 입시라는 중요하고 강도 높은 부서의 팀장이라니 그저 속으로 헛헛한 웃음만 나왔다. 이 발령과 관련하여 총장실로부터의 호출이 와서 총장님을 만났다.

"팀장님, 이번 개편으로 많이 부담되지요? 그래도 팀장님이 역량이 되실 분이라 해서 중책을 맡겼으니 잘 부탁합니다."

처음에 그저 듣고만 올 생각이었다. 따질 수 있는 상대도 아니거니와, 이미 많은 실망감을 겪어온 터라 자포자기 심정이었다. 그런데 총장님이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니 더는 가만있기 힘들었다.

"총장님을 자주 뵐 기회가 많은 것도 아니니 이참에 제 의견을 드릴게요. 이 정도 규모의 팀을 이끌려면 체력적으로 40대 후반에 와서 50대 초반까지가 적절합니다. 이미 저는 그 나이가 지났으니 다음번에 적절한 인물로 교체를 고려해주셨으면 합니다."

총장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이후 정기인사 때에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통합팀장 신고식

수시를 앞두고 개편이 되는 바람에 통합팀장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계속된 입시 일정으로 3주 연속 휴일 없이 학교에 나와야 하는 경우도 생겼다. 새벽 두 세시까지 회의하고 점검한 후 집에 가서 옷만 갈아입고 다시 나오는 날도 몇 번. 거의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팀장이니 어쩔 수 없이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다.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기어이 사달이 났다. 담당 사정관이 개인 면담을 신청하더니 조퇴하겠다는 거였다. 자세히 말하지도 않고 근무 도중에 그렇게 말하고 떠나니 정말 황당했다. 책임자급 사정관들을 불러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를 물으니, 아마도 업무 부담감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정규 임용된 지 겨우 1년 된 사람에게 합격 사정에 관한 책임을 부여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이 업무 분담은 내가 통합팀장이 되기 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사안이었다지만 합격자 발표를 위해 당장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책임자급 사정관들을 총동원해 전화 연락과 면담을 시도했다. 다행히 다음 날 녀석은 나타났고, 무사히 수시 합격자 발표를 마쳤다.

업무 관련 출장 중이던 책임자급 사정관 한 사람과 전화 통화할 일이 생겨서 통화했는데, 관련 사항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내게 짜증을 내고 예의 없이 굴었다.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다음 날 출근해서 전 직원을 회의실로 소집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 사정관을 지목하며 공개적으로 질책했다. 원래 부하 직원에게는 다른 사람이 없는 데서 지적하지만 이번 경우는 개인적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 사정관은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즉시 내게 사과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로 팀원들은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을 해줬다. 참 감사했다.


처음이었던 인사청탁

팀원들 덕분에 정시까지 무사히 마쳤다. 하지만 내 이동 발령 인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내 몸은 질병을 얻었다. 위기감이 들었다. 정기인사가 끝난 후 후배인 인사팀장에게 면담 요청을 했다.

"왜 이번 인사 대상자에 내가 왜 빠졌지? 총장님께 별도 언급 없었는가?"

"계속 입학팀에서 계시고 싶어 하는 줄로 알았습니다. 총장님이 따로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저번 학기에 통합팀장 발령 후 총장님께 다른 곳으로 보내달라 했었는데. 암튼 됐고, 내가 직접 분명하게 말을 할게. 내가 건강이 무척 안 좋아졌다. 계속 일하면 정말 죽을 것 같다. 그러니 다음 인사 때 다른 곳으로 보내줬으면 좋겠어. 내가 처음으로 인사 관련 부탁 하는 거야. 후임을 내 밑에 있는 A로 하는 건 두 사람 역량이니까 내가 따로 부탁은 안 할 테니 그리 알고…."

"네, 알겠습니다. 참고하겠습니다."

어차피 내 자리는 누구나 오고 싶어 하는 직책이다. 체력 좋고 능력 있고 젊은 팀장이 와서 나보다 더 잘해줬으면 싶었다. 그리고 정말 나는 살고 싶었다. 처장님도 대놓고 내 건강을 염려할 정도이니 이게 맞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속상한 건 참을 수 있지만 몸이 아픈 건 참기가 힘들었다.

여담이지만 입학팀을 나온 후 나는 원형 탈모로 일 년 넘게 치료받았고 고지혈증이 도졌으며 관절염을 얻어서 고생 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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