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계속된 대립
징계위기에 몰렸던 총장님의 퇴임과 함께 기획팀장 자리에서 물러나 대학원으로 가게 됐다. 대학원 행정실장과 자리를 맞바꾸는 인사였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월급쟁이 주제에 뭘 할 수 있을까. 불쾌하고 속이 많이 상했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날 물러나게 하는 게 S 단장의 의도였다는 말이 들렸다. 그리고 그렇게 무주공산이 된 자리들은 새 총장의 취임을 도운 이들의 몫이었다. 입학과장 시절 내 뒤통수를 쳤던 녀석은 비서실장이 됐다.
코로나 이슈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해였다. 행정실에서는 외국인 유학생 관리 문제가 큰 골칫거리였다. 석박사 유학생은 수백 명인데 이들을 관리하는 인력은 단 1명.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이 되긴 했지만, 이들을 상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통신비용도 문제였다. 담당자와 상의하여 별도 비용처리가 가능하게끔 처리하긴 했지만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이 1년간 지속됐다. 학교에서는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주관부서를 기획팀으로 정했다고 했다. 총무팀이 있고, 안전팀이 있음에도 기획팀이 이 일을 담당하는 게 개인적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별도의 수당이 지급됐다는 소리도 들었다.
어느 날, 논문 제출 건으로 행정실을 거쳐 갔던 한 원생이 코로나에 걸렸다. 이에 행정실 직원들 전체가 검사받아야 한다고 해서 보건소에 가는데, 위원회를 주관하는 기획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보고 학생의 소속 학과장에게 연락해서 이 사실을 알리고 전원 검사받도록 하라는 얘기였다. 너무 어이없어서 소리를 질렀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나나 우리 직원들도 모두 검사받는 상황인데 우리보고 뭘 하라고요? 그리고 교수님들은 모두 학부 소속이잖아요, 그럼 소속 단과대학으로 연락하던지, 직접 학과사무실로 연락하든지 해야지 대체 위원회는 뭐 하는 겁니까?"
결국 본인들이 직접 조치하는 걸로 결론이 났지만, 너무 무책임하고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약직 직원의 눈물
하루는 대학원 수업업무를 담당하는 계약직 여직원으로부터 개인 면담 요청이 들어왔다. 수원에서 출퇴근하는 것도 힘들고 본인이 가장 노릇을 하는 것도 힘들다면서 눈물을 보였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솔직히 업무량이 많은 데다 개인적 상황마저 어렵다고 하니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녀석은 이직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너무 일을 잘해줬기에 붙잡고 싶어서 조금만 더 나와 같이 일을 해보자고 했다. 다행히 좀 더 생각해보겠다고 해서 한시름 놓았지만, 원생 수 2천 명도 안 되는데 1년 동안 개설되는 수업 수가 1,000개 가까이 된다는 건 개선의 필요성이 있었다.
대학원 구조조정의 필요성
면담 이후 본격적으로 대학원의 문제점에 대해 분석해 봤다. 원생 수가 2천 명에 1학기 개설과목 수가 500개라는 건, 누가 봐도 비효율적이었다. 이에 대한 이유는 분명했다. 석박사 합쳐봐야 10명도 안 되는 학과가 수두룩했고, 심지어 세부 전공별로 나눠서 교육과정을 개설, 필수로 이수하게 하는 문제점은 비용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몇몇 대학을 살펴보니 이미 한 학과에 1개 전공만 개설하도록 조치하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BK21사업 등에 전략적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학과 구조조정이 시급해 보였다
새로 부임한 원장님에게 관련 사항들에 대해 보고하고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원장님은 며칠이 지나도 묵묵부답이셨다. 몇 번을 건의해도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BK21사업 지원 결과가 저조해서 문제가 됐는데도 개선 시도조차 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대 교수님들과 상의하여 본인 전공 관련 학과를 신설했다. 학칙에 어긋나는 부분을 지적했지만 소용없었다. 대학원위원회 회의자료에 관련 규정을 포함했지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신임 원장님과의 대립이 나를 위태롭게 할 음모가 작동하는 계기가 되고 있었음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결정적 사건은 학부생의 졸업요건에 관한 규정 개정건이었다. 사실, 학부생 졸업에 관한 요건은 학칙에서 반영해야 하고 개정도 해야 하는데, 생뚱맞게 대학원 석사 예약제 관련 규정에만 기술되어 있었다. 내용은, 학부생이 석사예약입학제로 미리 들은 대학원 과목의 학점은 학부 졸업학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원장님은 이 규정 개정을 통해 해당 학부생을 졸업시키고 대학원에 입학까지 시키고자 했다. 위원회 소집이 있던 날, 이미 처장님 등과 입을 맞춘 듯 일사불란하게 추진이 되었다. 난 회의내용을 녹음하고 모든 행정실 직원들을 입회시켰으며 입학 담당에게는 어떤 발언도 하지 말라고 일러두었었다. 위원들이 모두 규정 개정에 동의하고 회의를 마치려는 순간, 기어이 입학 담당이 나섰다.
"잠깐만요, 다 좋은데 이 학생이 석사예악제로 대학원 입학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대학원 입학 여부도 결정해주십시오."
그 순간, 당황한 원장님의 표정이 보였고, 이를 계기로 찬찬히 내용을 살펴보던 한 학장님이 진지하게 다른 의견을 표명했다.
"현재 규정에 따르면 대학원 입학은 허용할 수 없겠는데요?"
결국 규정 개정은 진행하되, 해당 학생의 대학원 입학은 불허되었다. 그리고 다음 학기에 이 발언을 하셨던 학장님만 교체가 됐다. 대학원은 새로운 총장님이 부임한 후 내 의도대로 전면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