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잃은 소녀는 어떻게 어른이 되었을까

이루지 못한 꿈보다 더 오래 남은 삶에 대하여

by 황인득


프롤로그 – 꺼내기까지 오래 걸린 이야기


이 글은 내가 처음으로 써보았던 책의 일부다.
완성하지 못했고, 출판까지 가지도 못했다.
지금 다시 읽어보면 여전히 서툴고, 여전히 어렵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꺼내보고 싶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카페 이야기, 일하는 사람의 삶,
그 모든 시간의 중심에는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아내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함께 지나온 삶의 기록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그리고 오래 망설이다가
이 자리에 놓아본다.


1장. 꿈이라는 이름의 시작


노래는 내가 나를 설명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학교에서는 평범한 아이였다. 눈에 띄는 성적도,
특별한 재능도 없었다.


하지만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달랐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고, 그 시선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더 오래 받고 싶었다.


그래서 혼자 노래학원을 찾아갔다.
누가 시킨 것도, 대단한 결심도 아니었다.
그저 이걸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예술고등학교 진학은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보였다.
꿈을 가진 아이에게 가장 빠른 길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 선택이 용기였는지 무모함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그때의 나는 정말로 가수가 되고 싶었던 아이라는 사실이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꿈은 간절함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걸.


2장. 무너지기 시작한 집


가족의 균열은 조용히, 그러나 깊게 시작되었다.
부모님의 사업 실패, 그리고 이혼.
그 과정에서 남은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빚이었다.


집안의 분위기는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꿈은 사치가 되었고, 노래는 현실을 모르는 선택처럼 여겨졌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입시를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대학 원서 마감이 다가오던 날,
정말 원망스러웠던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서비만 있으면 다시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아온 말은 짧았다.
“나 돈 없다.”


변명도, 설명도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바랐던 건 돈이 아니라 말 한마디였다.
‘미안하다’는 말.


그날, 꿈은 그렇게 끝났다.
포기라기보다는 단념에 가까웠다.
마음속에서 무언가 조용히 꺼져버리는 느낌이었다.


어떤 포기는 크게 무너지지 않는다.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렇게 끝난다.


3장. 사회로 던져진 스무 살


졸업 후 작은 회사에 취업했다.
처음 받는 월급, 처음 느끼는 책임감.
어른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벌어들인 돈은 모두 집으로 흘러갔다.
빚을 갚아야 했고, 엄마의 삶을 함께 책임져야 했다.
돈을 벌어도 내 것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되뇌며 하루를 버텼다.
돈을 번다는 건,
언제나 나를 위해 사는 일은 아니었다.


4장. 무너짐과 버팀의 사이


회사가 사라지며 실업자가 되었다.
그 무렵 엄마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몇 달 동안 병원과 집을 오가며 병시중을 해야 했다.


그 사이 남동생은 취업 사기를 당했다.
집안은 다시 한번 무너졌다.


모두가 힘들어했고,
나는 기댈 곳이 필요했지만
정작 기대어 쉴 사람은 없었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다시 집으로 향했다.
이해는 했지만 마음은 따라주지 않았다.
기대와 책임이 모두 나에게만 몰린 것 같아 숨이 막혔다.


그 시기에 우울증이 찾아왔다.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무기력과 죄책감.
그 시간을 버티게 해 준 건 말없이 곁에 있어주던 반려묘였다.


버틴다는 건,
무너지지 않는 게 아니라
무너질 틈을 미루는 일이었다.


5장. 다시, 일하는 사람으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대기업 계약직이었다.
이름은 컸지만 자리는 불안정했다.


재계약 실패 소식을 들었을 때
생각보다 많이 아팠다.
‘또 한 번 선택받지 못했다’는 기분 때문이었다.


그러다 다시 제안이 왔다.
촉탁직이라는, 정규직에 준하는 자리였다.
기대했다가 상처받고 싶지 않아 망설였지만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흘렀고, 정규직이 되었다.
인생이 갑자기 달라지지는 않았다.
다만 처음으로 조금 안심이 되었다.


꿈과는 다른 자리였지만
‘내 몫의 자리’라는 감각이 있었다.


6장. 결혼이라는 선택


결혼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빚도 있었고,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럼에도 결혼을 선택한 건
이 사람과는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함께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이제 엄마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결혼 후에도 책임은 줄어들지 않았다.


떠났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선택은 자유였지만
책임은 여전히 나의 몫이었다.


7장. 상실의 시간


아이를 낳고 삶은 더 현실이 되었다.
꿈 대신 하루를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


그 삶은 불행하지 않았다.
힘들었지만, 하루하루 자라는 아이를 보는 일은 기쁨이었다.

그러다 가장 오래 곁에 있던 반려묘가 세상을 떠났다.
가장 힘들던 시간을 함께 버텨준 존재였다.


어떤 이별은
소리 없이 삶의 한 조각을 가져간다.


8장. 늦게 완성된 이름표


마음 한편에 늘 남아 있던 것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학교를 선택했다.
늦었지만, 이번에는 포기하지 않았다.


졸업장을 받던 날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원하던 꿈과 학교는 아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완성되지 않은 꿈도
사람을 끝까지 데려다준다.


9장. 지금의 어른


나는 지금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다.
여전히 상처를 기억하지만
그 기억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꿈을 잃은 소녀는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화려하지도, 완벽하지도 않게.
다만 포기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으로.


어른이 된다는 건
꿈 없이도 하루를 살아낼 수 있게 되는 일이었다.


에필로그 – 남겨두는 말


이 이야기를 언젠가는 한 번쯤 쓰고 싶었다.
아내의 삶을 내가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가까이에서 지켜본 시간만큼은 분명히 있었다.


내가 보기엔 너무 많은 것을 견뎌왔고,
너무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건 노력이나 성실함이라는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글은 존경이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삶에 대한 인정에 가깝다.
그리고 그 삶과 함께 살아온
나 자신의 시간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나는
내 카페 이야기, 일하는 사람의 삶을 계속 써갈 것이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이렇게 한 번쯤은 아내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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