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합리적이지 않은 것을 말하지 않나
어디 감히 며느리가! 이 말은 내가 결혼 생활동안 열 번도 넘게 들은 말이다. 물론 나의 남편도 어디 남자가 거길!이라는 말을 수십 번 들었다. 하하.
한국적 사고방식에서 혹은 전통적인 가족관계에서 라고 시작하는 말 들 중에 합리적인 것들이 과연 몇 개가 있는 걸까? AI가 등장하여 그림도 그린다는 시대에 아직도 가문 타령 하는 걸까? 나는 그렇다. 사고방식이나 가족관계가 건강하지 않음을 덮고 감추기 위하여 앞에다 포괄적이고 대중적으로 호감 가는 단어인 한국적 또는 전통적인 이라는 단어를 붙인 거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남이 부대껴 사는데 왜 거기서 한국적, 전통적이란 조어가 웬 말인가. 본인이 편할 때는 글로벌 시대에 발맞추어라고 시작하며, 나를 찍어 누를 때는 한국적과 전통적이라고 말을 시작한다. 그렇기에 내게는 결혼과 직장에서 동시에 나오는 한국적, 전통적 조직문화는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단어들이다.
직장에서 나는 HR업무를 주로 하고 있다. 이곳의 이사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이 분은, 자주 “상식적으로”라는 말을 쓴다. 본인은 상식적이고 나는 상식적이지 않다는 건가? 상식적으로 추가 근무를 했으면 합당한 금액을 지불하는 게 법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그것이 상식이라 배운 내가 순식간에 비상식인이 되어버린다. 다행히 합리적인 어른이라 조율이나 편의를 많이 봐주는 편이라 앞서 말한 “상식적으로 “라는 단어 빼고는 이 분에게는 감사함이 더 크다.
지혜롭지 못한 사람들이 본인이 가진 편협한 사고방식을 남에게 밀어붙이기 위하여 한국적, 전통적, 상식적을 쓴다. 정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은 오히려 발전적인 단어를 이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는 생각을 멈추고 싶지 않아서다. 흘러가야 한다. 프레임에 갇혀서 본인이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내기보다는, 남의 의견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면 얼마나 좋은가.
어른이라면, 너의 말이 일리는 있지만, 이 상황에서는 적용이 불가하니 이런 식으로 타협하면 어떨까?라고 제시해야 한다. 직장도 고여있으면 안 되기에 외부 강사를 들여서 바뀐 대화 트렌드에 대하여 학습하고, 어린 직원으로부터 배울 점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직장보다 훨씬 폐쇄적인 가정에서는, 어른이 먼저 여유를 가지고 들어주고 격려해 줘야지, 젊은 아이들의 기세를 꺾고 눌러서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는 이들로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결국 이런 방식의 대화나 태도는 소통 불가라는 단절을 맞이한다.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외롭게 만들며, 종국에는 파멸이 아닐까 싶다.
지금 나의 시어머니는 아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 나의 되바라짐으로 인하여 생긴 일이라고 믿고 있다. 아직도 나의 서울 지인들에게 있지도 않은 사연팔이나 해대고 있으나, 누가 믿는가. 다들 그동안 조용히 참았던 나의 인내심에 측은함을 보내지... 두 손녀손자를 평생 보지 못할 것이며, 아들은 홀로 쓸쓸하게 늙어가겠지, 비참하게 외롭게. 그게 나의 최대 복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