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 가을의 시작
지글거리며 뜨겁던 햇빛도, 바닷바람에 비릿하고 끈적이던 습기도 정리되어 가는 9월의 중반이었다. 햇빛도 바닷바람도 그대로인데, 가을이 온다는 이유만으로 쾌적하다. 다 그대로인데, 무엇이 계절을 바뀌게 하나 문과적 사고를 해본다.
나와 아이들은 그대로인데, 가을이라는 이유로 변화를 겪고 있다. 사춘기와 첫 생리를 6학년 여름방학에 시작한 큰 딸은 아빠에 대한 미움과 그리움으로 혼란스러워하고, 매일 자전거를 타고 다니느라 뒷바퀴를 두 번이나 교체한 작은 아들은 뒷목이 나무보다 더 갈색으로 변해있다.
그리고 나는 이 아이들의 개인적인 공간을 지켜주고자 새 집을 계약했다. 매매면 좋겠지만, 전월세로 1억 보증금과 매달 45만 원에 이사를 확정했다. 처음 해보는 대출에 걱정이 앞선다. 가전가구도 사야 하는데, 그 돈은 어떻게 충당할지 매일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기느라 예민해져 있다. 그 덕에 아이들은 내 눈치를 보느라 바쁘다. 일하러 나가는 주중엔 그나마 덜하지만, 주말엔 옴짝달싹 붙어있어야 해서 여간 미안하다. 티를 안 내려고 애를 쓰지만, 엄마의 표정 하나하나에 예민한 아이들이라 금세 눈치챈다. 이삿날은 10월 2일, 긴 연휴 전날이다. 지난 1월 춥디 추운 그 겨울, 언니네에서 쫓기듯 나와 갈 곳 없이 모텔로 전전하던 그때, 우리를 품어준 고마운 보금자리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려니 섭섭함이 앞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지.
부산으로 온 지, 딱 1년째 된다. 나는 회사일은 어느 정도 적응하고, 열심히 돈을 모아 가구와 가전 등을 현금으로 살 수 있을 정도이고, 일주일에 4일 정도는 갈맷길로 나가 운동하고, 멘토라고 할 수 있는 좋은 지인을 한 명 사귀었다. 시종일관 내 머릿속에 내가 바로 서야 한다” 고 되뇌었다. 그래야 나와 아이들이 함께 지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성경에는 그런 구절이 있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내 자리를 단단히 지키고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보상을 받을 것이다. 춥고 괴롭고 견디기 힘든 순간이 와도 나는 엄마로서 내 두 발을 굳건히 땅에 딛고 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