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단호하자, 힘들 땐.
나는 작가가 아니기에 작가들을 좋아하고 동경한다.
흩어져있고 보이지 않는 생각들을 활자로 구현시키고 쉽게 풀어놓은 그 놀라운 일들을 하는 그들을 정말 존경한다. 그리고 그 글들 중에 나를 발견하는 순간은 정말 행복하다.
꾸뻬 씨는 예민하고 자기애가 강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했다. 내가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이다. 태생이 예민하기에 주변 상황들을 빠르게 잘 읽고, 한 번이라도 보거나 말한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잘 기억하며 (고객센터 제외), 누군가의 서포트를 굉장히 잘한다. 그리고 자기애가 강한 만큼 모두에게 친절하고자 하며 특히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잘 알아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곧 2025년 3월, 이혼 숙려기간을 거치는, 즉 파나마 운하를 지나가는 중이다. 이 결정을 하기 전까지 10년 넘은 결혼 생활은 나의 예민함이 괴로움의 태풍을 불러왔다. 그 결과 나를 무척이나 사랑해 주는 아이들을 당연시했고, 나를 천하게 대한 시어머니의 눈치에 맞춰 한껏 몸을 낮추었다.
새벽마다 그런 옳지 못한 나의 모습을 참을 수가 없어서 침대 위 잠자는 아이들 옆에서 웅크려 숨을 참았다가 쉬었다를 반복했다. 나 스스로에게 이유와 해결책을 물어봐야 하는데 증오하는데 바빠서 자문할 여유도 없었다. 이 상황을 만든 그녀와 남편에게 모든 원인과 책임을 묻느라 나는 어리석은 쳇바퀴만 돌렸다.
나는 어리석게도 남편이 내편으로 바뀌길 바랐다. 잠을 줄여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던가 식이와 운동을 통하여 좀 더 건강한 사람으로 변한다던가 아님 그의 부모에게서 정서적 물질적 독립을 계획한다던가... 그렇다면 그동안 나는? 어리석게도 나를 잊고 지내면서 더 나아질 방법을 찾지 않고 머물러 있었다. 나의 본래 모습은 사라지고, 남에게 친절하지만 내 아이들에게는 혹독하며, 더 이상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 눈치 없는 사람처럼 비위를 맞추며 구역질 나는 모습으로 말이다. 늪에서 빠져나갈 생각 대신 먹잇감이 오길 기다리는 흡사 악어와 같았다.
어느 날은 지독한 우울감에 빠졌고, 어쩔 수 없이 아이들과 집 근처 다산 성곽도서관으로 갔다. 갈 곳이 없었기에...
그곳에서 나는 키티라는 사춘기 소녀가 아빠와 써 내려간 오렌지 베이커리라는 책을 발견했다. 키즈 베이킹 수업을 하던 때라, 이끌렸는지도 모르겠다. 감정이 밑바닥으로 내려가던 그때, 아이의 아빠는 함께 해결책을 찾아나갔다. 그 글을 읽는 동안, 나는 키티가 되었다. 그래서 내리막길을 혼자가 아닌 단단한 누군가가 묵묵히 동행해 준다는 사실이 부러웠고, 나는 혼자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다가와서 슬펐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는 집 뒤편에 있는 응봉산 산책길에서 마무리했다. 책을 덮어 옆구리에 끼고 걷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아빠가 되었다. 내 아이들에게 나는 그런 아빠이자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렁였다.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걸까? 또 이렇게 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내버리는 건 안되지. 어서 정리하고, 단단한 사람으로 되어야지. 이 한 권의 책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의 글은 왜 그토록 이해하기 쉬울까? 바로 그 글은 쉽게 이해 가도록 단호하게 전달하기 때문인 것 같다. 적절한 예시와 딱 맞아떨어지는 단어들로 한 번에 알아듣게 만들어준다.
힘든가? 뭐가 그리 힘든가? 쉽다. 단순하게 정리하여 바로 단호하게 자답하라. 우린 아직 우리를 너무 귀하고 아깝기 때문에 스스로를 구해야 한다. 나의 따스한 봄날은 아직 진행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