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SPAPA Mar 30. 2023

좋은 향기가 남는 사람

A

작년에 부서 이동을 해서 A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나보다 2년 늦게 입사한 후배였지만, 지금의 부서에는 1년 먼저 합류해 있었던 사실상의 선임이었다.

새로운 일들을 추진해야 하는 우리 부서에서 그녀는 열과 성을 다해 많은 성과를 이뤄내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했고, 명실상부한 부서의 에이스 중 하다.


같은 부서에 일하기 전에도 그녀의 자자한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사내 핵심부서 한 곳에서도 계속 영입을 노렸던 인재.

그녀가 신입사원 때부터 오랫동안 몸담았던 부서에서 놔줄 리 없었던 핵심인물.

그렇게 '조금만 더' '내가 있는 한 해만 더~' 등으로 부서장들에게 잡혀 있다가,

그나마 상대적으로 이동이 용이하고 본인 커리어 연속성이 있는 우리 부서로 옮긴 것이라는 재작년의 소문.




그녀와 같이 일을 해보니 왜 그녀의 미담이 전사에 은은하게 퍼졌는지 알게 되었다.

먼저 여려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업무 진행에 확실한 강단이 있었다.

부서에 급하거나 자질구레한 일이 생기면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미루지 않고 본인이 도맡아 하였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 고를 거듭하며 상사들의 방향성이 번복되거나 아예 방향성이 부재한 상태에 주어지는 성가신 과제들이 있다.

  과제들에 대해서도 녀는 적극적으로 안을 만들어 낸 후 상사들에게 수정방향이나 피드백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과적으로 빛을 보는지 사장되는지를 떠나  성된 형태의 무리를 지다.


도 그렇지만 대부분 이런 경우 어차피 다시 수정될 것을 핑계로 많은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 보여주기용 자료로 구색만 갖추든가,

구체적 지침이 다시 내려올 때까지 버티기 혹은 장 담그듯 묵히 작전을 쓰는 경우도 다하다.


부하 직원으로서는 쉬이 꾀를 부리면서 상사의 입장 되진짜 일을 하고 있는 사람과 요령을 피우는 사람이 아주 잘 구별되기도 한다.

동료인 나도 남들과 다른 그녀의 업무 진행에 경외를 느끼는데, 상사들이 어찌 그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뜨거운 감자인 MBTI.

우연히 특정 유형의 특징이 인터넷 포탈의 인기글로 게시된 걸 보고 '근데 이거 A의 성격을 설명해 놓은 거 아니야?'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MBTI 유형이 맞냐고 물었더니 실제로 맞다는 대답을 들었다.


조용하고 다정하며 신중하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책임을 다하고,
이를 꾸준하게 실행해 나간다.
소중한 주변 사람에게 헌신적이며,
관련된 구체적인 사항을 잘 알아차리고 기억한다.
직장과 가정이 정돈되고 조화로운 환경이 되도록 노력한다.

[출처 : 심리검사백과]


그녀 바로 'ISFJ(속칭 잇프제)' 이었다.




작년 한 해, 부서에 합류하자마자 그녀와 전우조(pair)로 몇 건의 굵직한 프로젝트를 맡았다.

메인 프로젝트는 오롯이 1년을 함께 맡았고 그 과정 정말 많은 스트레스와 분노가 수반된 고된 행군이었다.

부서에 가장 오래 있었고 직무역량이 뛰어났던 선배가 하반기에 상위조직으로 이동하면서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도 부담이 중되었다.

럼에제일 큰 프로젝트가 무사히 완수될 수 있었던 건 그녀의 역할이 컸다.


잘된 건 우리가 도와 서고 안된 건 너희가 못해서라는 유관부서의 태도, 수차례 연락에도 돌아오지 않는 피드백으로 늘어지는 일정 등.

좋아하는 일에는 열성적이지만, 내 기준에서의 불합리함을 잘 못 참는 나로서는 사기가 꺾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실직고하면 내려놓는 마음으로 휴가를 다녀오거나, 에서 먼저 해결책을 언급할 때까지 손을 놓고 배짱을 부려본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위에서 언급한 성격대로 그녀는 본인이 나서서 프로젝트가 어떤 형태로든 계속 굴러갈 수 있도록 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솔직히 일에 대한 책임감이 아닌 죄책감에서 다시 일을 시작한 적도 많다. 

최소한의 내 몫이라도 제대로 서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어주자고 스스로를 부추기도 했다.

마지막 능선까지 좌초를 겪었던 프로젝트였지만, 그렇게 완주를 향해 올 수 있었다.




그녀도 사람인지라  하얗게 불태우고 난 뒤에는 꼭 반차나 연차를 내고 자신만의 충전을 하고 돌아왔다.

웬만해서는 미소를 잃지 않는 그녀의 표정이 희미해질 무렵에는 어김없이 그녀의 책상이 하루나 반나절 정도 비져 있었다.

그리고는 약간은 억지스러운 웃음을 띠며 잘 쉬고 왔다 말한 뒤, 다시 그녀만의 페이스로 일을 진행해 나갔다.


메인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그녀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마지막 걸림돌을  잘 넘다고 생각했을 때쯤의 일이었다. 

그녀가 평소와는 다른 단정한 정장을 입고 오후에 출근하는 날이 있었다.


"다음면접 보러 갈 때는 미리만 말해줘요."

"..... 나중 말씀드릴게요."


같이 퇴근하는 길 엘리베이터 홀에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한 얘기에 얼굴을 피하며 황급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는 그녀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리고 퇴근 후 1시간쯤 지났을 때 장문의 메시지를 받았다.


얼굴 보고 얘기하기가 용기가 안 나서 차마 말을 못 했다고.

퇴근 직전에 오전에 본 최종 면접 합격을 연락받았.

얼마 전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관심을 보인 공고가 었는데, 역시나 그 자리를 위해 준비된 인재는 그녀였던 것이다.




그녀는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수없이 썼지만 정작 미안한 사람은 나였다.

내가 힘들었던 상황 속에서 그녀도 똑같이 힘들었을 텐데, 그녀는 괜찮을 것이라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었다.

그녀의 힘듦은 헤아리지 못하고 나 혼자 힘들다는 엄살을 피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자리로 이동하게 되어 정말 잘된 일이지만, 금의 사를 떠날 결심을 내리기까지 그녀도 얼마나 많은 고충이 있었을까.


그리고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만큼 힘들었던 상황 속에서 그녀는 다른 사람들까지 챙기며 얼마나 최선을 다해왔을지를 알기에.

그녀는 회사를 떠나기 전까지 최소한의 휴가만 사용한 채, 본인이 맡고 있던 업무들의 상당수를 마무리하고 떠났다.

마지막까지 한결같은 그녀 다운 모습이었다.


마지막 출근일.

그녀는 부서원들에게 화분 하나씩을 선물해 주고 떠났다.

아직 꽃 피지 않은 히아신스에서 짙은 여운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은 ,

좋은 향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그녀의 이름이 생각나서일지도 모르겠다.



함께 일할 수 있어서 다행이고 영광이었습니다.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많이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본인만의 좋은 향기를 잃지 마시고
더욱더 성장해 나가시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새로운 출발을 다시 한번 응원합니다.








이전 01화 [Prologue] 우리 모두의 회사 이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