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콧 온타리오 호수에서 어느 여행자가 보내온 일기
2023년 4월. 부활절이 시작되어 사람들이 하나둘 어디론가 떠나간다. 나와 동행들은 미국 나이아가라 북쪽 끝 광활한 온타리오호를 품고 있는 올콧 지역으로 떠난다. 택시 기사님도 의아해한다.
"혹시 거기 살아요?"
"아니요. 그냥 놀러 가려고요."
"관광으로요?"
"아니요. 그냥 쉬러 가요."
평소대로라면 몸보다 큰 캐리어를 끌고 여행길에 오를 나였지만 '쉼'의 목적으로 떠나는 이번 여행에는 배낭 하나에 의지한다. 금방이라도 터질 거 같은 나의 배낭에는 미국에 와 처음으로 알게 된 호손의 책 한 권과 노트북이 있다. 구불구불 길을 지나고 핸드폰의 신호가 차츰 약해질 무렵 파아란 호수가 나를 반긴다.
‘저게 호수라고?’
흔들리는 차창으로 보이는 호수의 첫인상은 바다였다. 전날 빗물에 올라온 흙탕물은 마치 해변의 모래사장 같았고 바람에 일렁이는 물의 움직임은 파도를 닮았다. 호수냐 바다냐 정체성을 밝히기도 전에 우리가 묵을 작은 별장에 도착하였다.
어느 여행이든 체크인과 동시에 숙소에 들어서게 되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와이파이 비밀번호다. 내가 스마트폰 없이 못 사는 핸드폰 중독이라기보다는 오늘날 현대인에게 있어서 스마트폰은 훌륭한 길잡이이자 여행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열람할 수 있는 파일인 셈이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스마트폰의 영원한 단짝 와이파이는 현대인에게 있어서 생명수인 것이다.
"와이파이 비밀 번호가 맞지 않습니다."
주인이 알려준 비밀 번호는 무용지물이었다. 신호가 터지지 않아 문의할 수도 어디를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전파가 닿을 듯 말 듯 그런 외지에서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다는 건 곧장 미아가 된다는 뜻이었다. 통신망 한 칸에 의지해 다른 친구들이 주인과의 연락을 시도하고 있을 즈음 난 와이파이 기기가 있을만한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텔레비전 바로 옆에 설치된 기기는 올바른 비밀번호를 알려주었고 다행히 '미아'는 되지 않았다.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기기를 찾는 동안 나의 표정 어디에도 당황한 기색은 없었다. 마치 기기가 어디 있는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왠지 모를 차분함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껏 여기저기 여행하면서 얻은 깨달음이 하나 있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에 죽으란 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유심 없이 토론토 시내 한 복판을 돌아다녔을 때도, 파리에서 비행기를 놓쳤을 때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해결할 방법은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세상을 잃은 듯 심각한 얼굴을 했을 내가 당장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데도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는 게 낯설었다. 여행은 이렇듯 나도 모르게 나를 변화시킨다. 당장은 피어오르지 않은 꽃이 삶에 어떤 부분에 닿아 만개하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맞이한 풍경은 따스로운 봄이다. 커튼을 열어젖히고 창문 밖을 바라본다. 날씨를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흔히 날씨가 좋으면 여행의 반은 성공이라는 말이 있다. '날씨요정'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아침 햇살이 포근했다. 흔들리는 천막을 보니 바람은 꽤 불고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느긋하게 준비를 마치고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온타리오는 마치 소꿉친구들이 귓속말을 건네듯 가까워졌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풍경은 풀 위에 놓인 초록색 벤치와 그 위를 그늘로 덮는 커다란 나무였다. 나는 푸른 풀 위 초록색 벤치 그리고 초록 나무를 보면서 빨간 머리 앤이 살던 초록 지붕 집을 떠올렸다. 건너편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서 당장이라도 앤이 손을 흔들어줄 거 같았다. 바다처럼 드넓은 호수는 눈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가까이 있는 물빛은 갈색을 띠었다. 뒤로 갈수록 여행자가 흔히 기대할 에메랄드 색이었다. 사람들은 여행을 인생에 비유한다. 어릴 적 나는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있다. 힘들게 정상에 올라갔는데 내가 기대한 풍경이 아니면 어쩌지 하는 고민 말이다. 여행자는 장밋빛 안경을 통해 본 장소에 부푼 기대를 안고 여행길에 오른다. 여행을 통해 만나는 세상은 동전의 앞면과 같다. 환상 속에 존재하던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흥미를 잃어버린다. 막상 가보면 별거 아닌 거 같고 마음속 품고 있던 기대의 싹이 피어나는 대신 실망의 그늘이 드리운다. 환상 속 원더랜드가 현실이 된 것이다.
"물 색이 더 파랑파랑했으면 예뻤을 텐데…”
같이 온 친구가 아쉬움에 내뱉은 말로 생각에 잠긴다. 이윽고 다시 호수를 바라본다. 빗물로 올라온 흙은 물빛을 갈색으로 만들었지만 시선을 조금만 멀리 떨어뜨리면 점점 맑아지는 파란 물빛이 보인다.
'이런 풍경은 지금 여기 서 있는 나만 볼 수 있다'
갈색과 파란색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온타리오 호수였다. 그 양면을 다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인 우리 인생처럼. 비 온 뒤에 탁해진 물은 서서히 맑아진다. 나는 흙탕물과 에메랄드 색을 동시에 품은 온타리오 호수를 보면서 비극이 희극으로 변하는 과도기를 포착했다.
고요한 햇살에 바람이 차갑게 분다. 호수 반대편을 향해 걸어 크럴 파크에 이르렀다. 미국에 있는 넓디넓은 공원들은 잘 정돈되지 않아 자연과 야생 그 중간인 경우가 많다. 여행 중 사소한 시련은 뜻하지 않게 발생한다. 공원을 가로질러 조그마한 놀이터에 가는 길이었다. 어느 때와 다를 거 없이 잔잔해 보이는 풀 위로 아무 생각 없이 걸음을 옮겼다. 머지않는 순간 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빗물이 다 마르지 않아 흙이 젖어있던 것이다. 새하얀 운동화는 진흙에 빠져 한 순간에 순백을 잃었다. 더러워진 운동화를 바라보며 나의 부주의함을 탓했다.
"운동화에 못 보던 문양이 생겼네요."
놀리듯 건네는 말이 구렁텅이로 빠질 뻔한 오늘의 행복을 구했다.
비록 운동화는 더러워졌지만 흙이 남긴 문양 덕분에 나는 추억 하나를 얻었다. 더러워진 운동화를 신을 때면 오늘을 더 잘 기억할 거고 흙이 지나간 자리를 지울 때면 나는 또 한 번 오늘을 추억할 것이다. 여행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고난과 위기는 작가에게는 글감이, 예술가에게는 소재가 되듯 나는 비록 새하얀 운동화는 잃었을지언정 오늘을 추억할 매개 하나를 얻은 것이다.
나에게 여행은 순간의 고비가 비극이 아니었음을, 비 온 뒤 피는 무지개처럼 희망을 발견해 준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여행의 결과도 당장 피어나지는 않는다. 여행의 기억들은 그저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여행의 궤적은 은밀하게 새겨져 있고 나도 모르는 어떤 순간에 살며시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