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에 물든 가을(1)

내가 처음 물들인 가을 여행을 담다

by 나디아

2022. 09. 23


미국의 개강은 산뜻하다. '산뜻하다'는 말을 나는 '부담이 적어 가볍다' 정도로 쓰고 싶다.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다. 어쩌면 '교환학생'만이 가지는 특권일 수도 있겠다. 가을 여행을 가는 것이 내 오랜 꿈이었다. 많고 많은 계절에 꼭 가을이어야 하는 이유는 선선한 가을바람에 살랑거리는 몽글함이 좋아서다. 가을이라는 계절적 배경에 타지라는 설정은 야생 곰이 식량을 비축해 놓았다가 겨울잠을 자러 폭 들어가는 것처럼 딱 알맞게 느껴진다.


내가 머물던 나이아가라는 캐나다 여행에 최적이다. 폭포 하나만 넘어가면 미국과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나는 캠퍼스에서 셔틀을 타고 월풀이라는 곳에 내린다. 미국과 캐나다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동시에 공유한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보이는 폭포는 똑같이 나이아가라 폭포지만, 둘은 레인보우브리지를 사이에 두고 다른 모습을 띤다.


레인보우브리지를 건너 캐나다로 향한다. 두 발로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그 행운을 본래 가진 사람인 마냥 자연스럽게 누린다. 미국이 아닌 캐나다의 땅을 밟고 있는 나는 설레지만 한편으로는 두렵다. 핸드폰 신호가 약해지고, 불법 체류자가 아니라고 증명할 미국의 그 어떤 서류도 여기서는 통하지 않는다. 폭포 하나를 건너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


유심 없이 다른 나라를 여행한다니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모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무모해서 가능한 일들이 있다.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직관을 따라 두 발이 닿는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나이아가라에서 토론토로 가는 여정은 상당히 긴 시간과 많은 노동을 요구한다. 레인보우브리지를 건너 삼십 분 이상을 걸어 버스를 타고 기차로 갈아타고 다시 또 지하철을 탔다.


수업을 끝내고 바로 온 터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로 여행길을 올랐다. 새로운 풍경이 주는 설렘에 배고픔을 잠깐 잊었던 것 같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은 빨간 머리 앤의 초록 지붕 집을 연상하게 했다. 마치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있는 집들을 옮겨 놓은 것처럼 낭만적이었다. 신인 배우의 초연처럼 청초하게 내려앉은 가을 햇살, 그곳에서 빨간 단풍잎을 하나 주었다. 내 여정을 함께할 가을 벗을 구한 것이다.


나는 창가 자리를 좋아한다. 아무리 장거리 비행이어도 무조건 창가에 앉는다. 하늘에서 흘러가는 구름, 물결에 일렁이는 파도를 보면 생각에 잠기느라 지루할 틈이 없다. 이날도 어김없이 창가에 앉았다.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보이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들, 가을 햇살을 받은 자연과 건물은 색을 방금 도색한 것처럼 내게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하늘에는 기러기 무리가 떼를 지어 날아가고 있었다. 기러기만 보면 나는 그때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회장선거에서 나는 리더 기러기가 되겠다고 했다. 신뢰를 바탕으로 무리를 이끌어가는 리더 기러기가 되겠다고 했다. 어디서 본 과학 다큐를 가져온 거일 테지만 리더 기러기가 짊어질 책임감을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상당히 무거운 다짐을 했구나 싶었다. 어쩌면 지금의 나보다 더 단단해서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버스에 내려 기차를 기다리는데 하염없이 기다려도 기차는 오지 않았다. 도착 예정 시간을 알려주는 전광판 하나 보이지 않았다.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기차 취소됐으니 다음 거 타라는 말이었다. 기나긴 여정에 설렘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지치고 피곤했기에 얼른 숙소에 들어가 누워 짐을 풀고 싶었다. 하필 이런 상황에 취소는 웬 말이람 푸념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어떤 사람도 화를 내지 않았다. 익숙하다는 듯 저마다의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여유로워 보이면서도 본인들의 일이 맞는지 감히 의심스러웠다. 남 일 보듯 뻔하고 무심해 보였다. 기차 지연쯤은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암묵적 합의에 이른 듯 보였다.


나는 방전되기 일보 직전에 기차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승강장을 찾아 돌아다녔다.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아 아무나 붙잡고 물어봤다. 인도에서 왔다고 본인을 소개한 그는 나를 친절히 지하철 역까지 데려다줬다. 그의 친절은 낯선 곳으로 떠나온 나의 걱정과 불안을 잠재워줬다. 왠지 모르게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차올랐다.


지하철을 탔다. 퀸즈 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갔다. 순간 마주한 풍경은 지금까지도 '토론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생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피곤에 찌든 몸은 무감각한데 영혼은 살아남아 뭉클함을 느꼈다. 오랜만에 도심의 풍경을 보니 벅차올랐다. 휘황찬란한 불빛에 네온사인이 밝게 켜져 있어 도시에 온 실감이 났다. 그것도 잠시 친구를 만나는 게 급선무였다. 핸드폰은 터지지 않아 연락은 물론이거니와 길을 찾아갈 수도 없었다.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아 바삐 걸어가는 아주머니를 붙잡고 물었다.


그녀는 웃으며 쌩쌩 지나가는 도로를 가리키고는 건너라고 했다. 잠깐 당황했으나 금세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미국은 알고 있었지만 캐나다도 무단 횡단의 나라라니. 일단 은이에게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근처 아무 가게에 들어가서 (그곳이 약속 장소인 줄 알고 들어갔으나 우리가 만나기로 한 곳은 건너편 가게였다) 와이파이를 써도 되는지 물어봤다. 간신히 와이파이를 구해 은이에게 연락을 했고 그렇게 우린 도로를 사이에 두고 손을 흔들었다.


교환학생으로 토론토에 온 은이는 내 고등학교 친구이다. 엄밀히 말하면 초등학교 친구이나 알게 된 건 고등학교니 편히 이렇게 칭한다. 오랜 친구를 타지에서 만나는 상황을 나는 버스 안에서 기차 안에서 지하철에서 상상했다. 대개 껴안거나 눈시울을 붉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 역시 포옹을 했다. 은이는 물가가 엄청난 토론토 시내에서 숙소 값을 아끼게 해 줬다. 자신의 셰어하우스 방을 기꺼이 내준 고마운 친구이다. 은이는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있었는데, 미리 귀띔을 해준 덕에 나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12시간 공복 상태로 낯선 세계에 온 신경을 쏟은 탓에 피곤했다. 전혀 와닿지 않는 유머에 하하 호호하면서 대화할 기력이 없었다. 일단 먹어야 했다.


나 혼자 먹는 게 신경이 쓰였는지 친구들은 친절히 내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줬다. 토론토에서 처음 먹은 음식은 맥도널드에서 파는 '핫 크리스피 버거'였다. 포장된 종이박스를 열자마자 따끈따끈한 치킨 패티에서 김이 나왔다. 한 입 베어 물자마자 모든 피로가 사라지는 것 같지 않았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낯선 세계와 똘망한 시선들이 느껴져 도저히 잘 먹을 수 없었다. 다시 토론토에 간다면 맥도널드를 굳이 찾아가서 먹을 정도로 맛있었지만 쏟아지는 표정들에 체할 거 같았다. '무슨 반응이라도 해야 하는데..' 은이에게 SOS 눈빛을 보낼 뿐이었다. 영어를 못해서가 아닌 대화할 힘도 없었다. 그저 몇 마디 주고받으며 영혼 없는 반응을 보이며 정서적 유대 없는 사회적으로 학습된 가짜 미소만을 띠며 나는 낯선 이들과 밤을 함께했다.


폴란드와 스페인 친구들은(몇 마디 대화를 통해 그들의 국적을 알아냈다. 내가 아는 온갖 스페인어를 총동원해 통하는 척했다) 나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정확히는 그들이 평소 궁금해하기만 하고 가보지는 못했던 곳으로 걸음을 옮기는 것 같았다.


게이스트리트였다. 장정 6시간을 달려서 온 게이바였다. '망했다.' 얼른 숙소에 가서 눕고 싶다는 꿈이 와르르 무너졌다. 멋쩍은 미소로 '그래 내가 또 언제 이런 곳을 와보겠어' 합리화하며 게이바 문을 열었다. 말 그대로 충격의 도가니였다. 무대 위에서는 드랙퀸 쇼를 하고 있었고 그 뒤로 수많은 무리가, 수많은 남성 무리가 서로를 껴안고 각자의 방식대로 서로에게 키스를 퍼부어댔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여태껏 스스로 열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장면들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라 신기했다. 이상한 감정이 아닌 처음 보는 광경에 놀라웠다. 졸려서 반쯤 감겨있던 두 눈이 확 떠지는 순간이었다.


해리 스타일스의 'As it was'가 흘러나왔다. 미국에 오기 전 가르치던 한 학생에게 이 팝송을 추천받았던 게 생각났다. 그때는 별로 내 취향이 아니었는데, 토론토에서 다시 듣게 되니 반가웠다. 모든 것이 낯선 이곳에서 그 노래가 나를 안정시켰다. 웃겼다. 얼핏 한 번 들은 노래에 마음이 안정된다니. 노래는 과거를 추억하기에 좋다. 과거의 들은 노래는 기억 저편에 있던 시간을 현재로 끌어온다. 귀에 익어 익숙한 멜로디는 넘어져서 생긴 까진 상처에 연고를 발라준다. 토론토에 물든 가을 한 잎이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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