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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

미지근한 사람이 되고 싶다.

by 여운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가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다시 땅 끝까지 떨어진다.


"연예인 00 닮았어요."

"오늘 발표 진짜 좋았어요"


그런 말을 듣고 나면 하루 종일 머릿속에 그 단어들이 맴돈다.

진짜 그런가 싶어 연예인의 이름을 검색해 보기도 하고,

오늘 좀 되는 날인가 싶어 오늘의 운세를 찾아보기도 한다.


그리고 밤이 되면

나의 오랜 연인에게 자랑하듯이 오늘 들은 말을 재잘재잘 떠든다.

기분 좋았겠네. 예뻐.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느끼며

더 기분이 좋아진 나는 편안한 잠에 든다.




그리고 얼마 뒤,

비슷한 상황이지만 안 좋은 말을 들은 날이 있었다.


"안경 쓰니까 좀 깬다."

"오늘 발표는 좀 아쉽네요."


하루 종일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단어들을 지워내려 애쓰지만

며칠 전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지워내려 할수록 더 강렬하게, 의식에 파고든다.


밤이 되어 연인에게 오늘 들은 말이 얼마나 기분 나빴으며

그 사람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둥

잔뜩 불만을 토로했다.


며칠 전과 180도 바뀐 나의 태도에도 연인은 비슷한 말을 했다.

기분 안 좋았겠네. 괜찮아.

단조로운 말을 듣자니 기분이 나아지는 건 아니었지만

쓰다듬는 손길이 좋아 가만히 있었다

그래도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물었다.


"넌 내가 이런 말 들었는데 기분 안 나빠?"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니까, 기분 안 나쁜데."


남이 하는 말 너무 새겨듣지 마.

그게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그건 그 사람 판단이고.

내가 생각하는 '나'가 제일 중요한 거니까.

연인은 이렇게 덧붙였다.




생각해 보면 그는 누군가의 말에 쉽게 영향을 받은 적이 없다.

기분 나빠보일 수 있는 말을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고

누가 들어도 좋은 칭찬을 받아도

감사합니다, 한 마디가 전부였다.


그래서였을까.

그가 항상 편안해 보이고

안정적이어 보였던 것은.


앞으로는 나도,

누군가의 따뜻한 말이나 차가운 말에도

흔들리지 않는

미지근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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