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 새벽의 일이다.
목이 말라 잠에서 깼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다시 잠에 들지 못했다.
결국 잠이 안 올 때 종종 선택하는 방법인
음악을 듣기로 결정했다.
몇 곡을 잔잔한 인디 음악을 듣다가
허회경의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흘러나왔다.
이 노래 참 좋지.
무심코 본 앨범 커버에 할아버지와 꼬마아이가 보였다.
그때, 혼비백산이 된 엄마가 방 문을 벌컥 열었다.
노이즈 캔슬링을 뚫고 비명 같은 소리가 들어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대.
시골로 내려가는 차 안은 어느 때보다 고요했다.
평소 같았으면 뒷자리가 비좁다며 투덜거리는 소리를 하거나
조용하게 라디오 소리가 울리곤 했는데
그러한 일말의 소음도 들리지 않는 침묵이었다.
나는 잠은 오지 않았지만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사이로도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처음으로 가본 장례식장은
무거운 공기가 내리누르고 있는듯한 느낌이었다.
한발, 한발 천천히 내딛어 할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갔다.
항상 안방에서부터 천천히 걸어나와
무심하게 '왔나'하시던 할아버지가,
이제 사진 속에 멈춰져 있었다.
사진 속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뜨거운 것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애들이 드디어 다 모였는데 영감은 어디 갔소..."
할머니 말씀이 구슬프게 들렸다.
나를 포함해 9명의 사촌들이 모두 모인 것은
몇 년 만의 일이었다.
시험 준비, 아르바이트, 여행 등 각자의 사정으로
한 두명씩 빠지던 우리였기에
오랜만에 다 모인 것이 할아버지의 장례식이라는 게 너무 슬펐다.
3일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한 거라고는 자리에 앉아있다가
누군가 오시면 나가서 안내해드리고
때가 되면 같은 밥과 국을 먹는 것이 전부였는데,
어느새 발인날이었다.
할아버지는 당신께서 살아생전에 묻어달라던 곳에서
오랜 잠에 드셨다.
내 인생 처음으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었다.
친가와 그렇게 가깝게 지내지 않았어서, 딱히 친하지 않아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맺히는 걸 보면
아직 나에겐 누군가와의 이별이 너무 어렵다.
다들 그렇게 나이가 듦에 따라
조금씩 이별에 익숙해지며 살아가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