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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퇴사를 꿈꾼다.

신규직원은 해외여행도 마음대로 갈 수 없었다.

by 이와테현와규

"신규가 해외여행을 가려면 최소한 1년은 근무를 하고 가야지."

현재 직장에 처음 입사했을 때, 나는 상당히 멍청했고 불쌍했다. 일머리가 부족하여 몸으로 때우는 성격의 나는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퇴근시간보다 1-2시간 늦게 퇴근하는 것은 일상이었고, 출근도 1시간 이상 일찍 했었다. 일이 너무 버거웠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체력으로 버티지 않았나 싶다.

그런 나의 부서는 나를 크게 좋아하지도 혹은 싫어하지도 않는 선배들만 있었다.(싫어하는 쪽이 맞지 않나 싶다.) 은근한 혹은 대놓고 태움도 매일 당했었다.

그런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준 선배는 같은 부서가 아닌 옆 부서의 선배님들이었다. 항상 먼저 인사해 주셨고, 식사여부를 확인해 주셨다. 한 번씩은 그들의 친목에 나를 부르기도 했다. 하루는 나를 불러 어디로 데려가셨다. 병원 내의 '보드동호회'가 있다고, 그냥 다른 직종의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도 나의 병원 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시며 나를 데려가셨다. 대학생 때도 해보지 않았던 동호회를 직장에서 참여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너무 신이 났었다. 교수님, 전공의, 간호사, 행정직 등 다양한 직종의 선생님들께서 일이 아닌 '보드'라는 취미를 공유하기 위해 모였고, 모두 에너지가 가득 차 보였다. 물론 내가 이 모임에 참여하게 된 것은 나의 부서에는 '비밀'이었다. 신규는 무슨 제약이 이렇게 많은 건지.

그렇게 시작하게 된 보드동회 활동을 한 지 1년이 되었을 무렵,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는 1년이 넘은 시점이었다. 그즈음에 몇 명이 다 같이 세부에 스쿠버다이빙을 하러 가자는 제안을 했었고, 가능한 사람들 7명이 모였다. 그 7명 중에 옆 부서 선배도 포함이 되어 있었고, 나에게 제안을 해주셨었다.


"너도 같이 가자. 입사한 지 1년이 지났고, 아직 해외여행도 해본 적 없다며? 이번 기회에 같이 가면 좋잖아?"


물론 나도 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 동료들과 세부를 가기 위해서는 퇴근 후 후 화요일 밤비행기를 타야 하기에 수, 목, 금 3일의 연차를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3일의 연차를 쓸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원칙상 사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는데, 그 당시에 연차를 쓰는 것으로 많은 제약이 있었다. 월요일은 바빠서 안되고, 금요일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쓰기 때문에 안되고 2일 이상 쓰는 것은 허락을 받아야 하고... 무슨 제약이 이렇게도 많은지. 심지어 결혼도 실장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2일 이상의 휴무사용과 월요일은 지금도 제약이 있다.)

부서원들과 부서장님의 허락까지는 받았었다. 하지만 실장의 허락이 문제였고, 나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한 선배와 함께 실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우리의 사정을 설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신규직원이 입사를 했으면 1년 동안은 해외여행을 갈 생각을 하면 안 돼. 뭐 동호회에서 가는 것이고 연차 높은 선배가 같이 간다 하니..."

일단 실장의 말에 토 달지 않고 맞장구를 쳤다마는 나는 입사한 지 1년이 넘었고, 후배직원이 있었기에 사실상 신규는 아니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까지가 끝인 줄 알았더니 하나가 더 남아 있었다.

"옆구리 찔러 절 받기는 싫지만 올 때 거기 망고가 유명하니?"

예상 못했던 것은 아니다. 아주 유명했다. 신규직원들의 첫 월급은 '가족'이 됐다는 이유로 내 것이라 생각하면 안 됨을 가르쳤고, 신규의 첫 명절은 조공을 요구했다. 다행히 이 악습들은 내 시대에서 끝이 났었지만, 해외여행 후 선물은 이 실장님이 퇴직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첫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 나는 쥐 죽은 듯이 일을 해야만 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나의 부서에는 불화(정확히는 태움)로 인해 퇴사를 하게 되었고, 공석이 발생한 상황에 혼자 즐겁게 놀러 간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나의 휴가 계획은 부서가 화목하던(정확히는 태움의 대상이 나였던) 시기에 결정된 것이었다. 그래서 별 문제가 없었지만, 어떠한 모종의 이유로 태움의 대상이 다른 여자선배로 바뀌면서 문제가 커졌고, 갑작스레 선배는 퇴사를 결정했다. 그것도 아주 빨리 말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일이고, 그 누구도 그 여자선배가 퇴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갑자기 퇴사하게 돼서 미안해. 하지만 난 도저히 여기서 일할 수가 없어. 너도 봐서 알잖아?"

"선생님이 나가시면 저는 누굴 믿고 의지해요"

눈물을 글썽이며 붙잡았지만 의미는 없었다. 그녀는 떠났고, 나의 여행은 취소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부서에도 소문이 퍼졌다. 어떤 식으로 퍼졌는지는 모른다. 태움으로 인해 퇴사를 했고 사람이 없는데도 놀러 가는 는 막내 직원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러한 이유로 첫 휴가를 다녀온 뒤 평소보다 더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너 한동안은 눈치를 조금 보는 것이 낫겠다."

함께 갔던 옆부서의 선배가 나에게 말을 했다.

해외여행에 대한 즐거움을 알게 되자마자 그것을 마음속 깊이 숨겨놔야 했다. 이후 1년간은 여행의 'ㅇ'도 생각하지 않고 살던 대로 살았고, 하던 대로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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