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전통? 스페인 전통?
마마 엘레나는 티타에게 부엌으로 가서 손님들에게 대접할 보카디요를 가지고 오라고 시켰다.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한 문장이다. 소설의 배경은 멕시코이지만 보다 카요는 스페인 전통 음식이라고 한다.
책 뒤표지를 보면 음식과 성(性)이 환상적으로 만난 재미있고 관능적이고 낭만적인 소설 '요리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라고 소개되어 있다. 세계문학전집 108번이라는 이름이 묵직하게 느껴져 어려운 내용의 소설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이 책을 선물해 준 나의 친구 지다는 '내가 이 책을 펼치는 순간 그 자리에서 다 읽었지 뭐야' 라며 내가 꼭 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그리고 책을 좋아하고 잘 읽는다고 자부했던 나였기에 펼쳐라도 보자 했다. 부끄럽지만 1년 넘게 책을 제대로 읽은 기억이 없어 좀 더 자신이 없기도 했다. 나 또한 요즘 젊은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도파민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그 중독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멕시코가 배경이 되는 이 책은 내가 자라온 한국과 사상이 다르기에 완전히 책 내용에 스며들기는 쉽지 않았다. 막내딸이라면 응당 부모를 끝까지 봉양해야 하며 고로 결혼을 할 수 없다는 '기괴한'문화로 인해 여주인공 티타는 그녀의 슬픔을 요리를 통해 승화시킨다. 모든 요리 과정에는 그녀의 희로애락이 녹아들어 있다. 국적과 문화는 다르지만, 슬프면 끝없이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것은 나와 타다가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에 동질감도 느꼈다. 티타가 숨 쉬는 매 순간에는 항상 요리가 있었다. 그 요리의 과정에는 그녀의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기에 요리와는 거리가 있는 나 또한 그 과정에 집중을 해야 했다.
'보카디요 : 토마토, 과일, 치즈 등을 바게트에 넣은 멕시코식 샌드위치'라는 주석이 달려 있었다. 재료가 간단하여 어쩌면 나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인터넷 검색을 했다. 하지만 많은 블로그들은 스페인식 음식으로 소개했고, 어원 또한 '한 입, 한 입 거리 음식을 뜻하는 BOCADO'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말로 스페인 전통 요리라고 한다. 문득 작년 9월 멕시코 과달라하라를 방문했을 때가 떠올랐다.
"이곳의 건물들은 유럽의 느낌이 물씬 풍겨."
"물론, 왜냐면 멕시코는 오랜 시간 스페인의 식민지였거든."
"그럼 이곳에는 멕시코의 전통적인 건물이나 문화가 거의 혹은 아예 없는 거야?"
"그렇지 않을까? 물론 약간의 언어 차이는 있겠지만, 그리고 데낄라도..."
그 당시 복잡한 생각들이 나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방문했던 곳은 과달라하라라는 도시와 부근 소도시인 데낄라시였다. 데낄라로 굉장히 유명한 곳인데, 데낄라를 생산하는 유일한 국가이고 지역이기에 그 나라 고유의 문화가 굉장히 잘 발달해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도시뿐만 아니라 시골마을 구석구석이 스페인의 식민지 영향으로 인해 대부분의 그 흔적들이었다. 물론 식민지로 인해 그들이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었고, 지금은 굉장히 큰 나라로 발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세계는 영어만큼 스페인어를 많이 사용하기에 세상과의 소통에 있어서 그런 부분은 굉장히 긍정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씁쓸한 생각도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세상을 여행하기 위해, 그리고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영어가 필수라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영어를 쓰기 힘든 환경의 우리나라에 대해 가끔 답답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영어를 정확하게 구사하려 노력하면 사람들은 이를 놀리기 바쁘다. 영어권 국가의 사람들의 한국을 놀러 오면 다양한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행동은 무의식 중에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한 반응이 아닐까? 그렇기에 오랜 시간 일본의 식민지 생활로 인해 고통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잘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은 보카디요를 만들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