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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병리사?

병리과 소속 임상병리사: 굿닥터 시즌 1, 9화를 본 뒤.

by 이와테현와규

굿닥터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션이라는 의사가 병원에 힘겹게 입사를 하게 되고 그가 겪게 되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드라마이다. 시즌 1의 9화를 보면 병리과의 임상병리사가 꽤 길게 등장하여 집중해서 보았다. (병리과와 관련된 사건에는 션이 아닌 선배의사가 등장한다.) 병리과에서는 실습을 제외하고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지만 병리과 업무를 너무 이상하게 표현한 것 같아 현재 병리과에서 근무하는 친구와 후배에게 해당 편을 직접 봐달라고 부탁을 했다.


내용을 잠깐 언급을 하자면, 팟캐스트의 아나운서(podcast audience)라고 자신을 소개한 엘리자베스는 목에 생긴 결절을 조직검사를 하게 된다. 조직검사의 결과를 토대로 후두를 완전히 절제할지 말지에 대해 정해지는 상황이었다. 드라마 상의 내용에서는 결절이 악성 신생물이라면 후두 전체를 제거해야 하고 목소리를 잃게 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의 목소리는 중요하지만 엘리자비스의 경우 팟캐스트 아나운서이기에 직업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 목소리이다. 아무튼 조직검사를 위해 결절을 생검(Biopsy)했지만 생검조직을 분실하게 된다. 조직을 분실한 클레어라는 의사는 병리과의 모든 검체를 샅샅이 뒤지고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병리과의 임상병리사는 검체가 검사실로 운반되지 않았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클레어는 분명 조직을 채취하한 뒤 옮겨 담는 모습을 봤다며 계속 병리과 내의 검체 분실을 의심한다. 그렇게 검체를 찾지 못한 클레어와 임상병리사는 중간에 운반한 직원에게 묻게 되고 운반직원이 이동한 경로를 뒤져보았지만 결국 찾지 못한다. 이후로도 계속 병리과 내를 샅샅이 뒤지게 된다. 조직을 찾지 못한 클레어는 엘리자베스에게 조직을 분실했다고 열심히 찾고 있다고 했지만 너무 많은 시간이 지체되어 결절이 양성인지 음성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며 후두 절제를 제안한다. 엘리자베스의 수술은 결정되고 수술대에서 수술이 진행되기 직전에 클레어는 검체 바뀜을 의심하게 되고 기억을 되짚어 결절 조직을 찾아낸다. 급하게 조직 표본을 제작하여 확인한 결과 악성 종양이 아니었기에 엘리자베스는 후두 절제를 할 필요가 없었다는 훈훈한 결말로 끝이 난다. 아마 드라마였으니 가능했던 따뜻한 결말이었지만 이 상황은 병리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의 검체 관리 소홀이 아닌 수술실 내에서 조직을 조직 고정제인 포르말린 통에 옮겨 담는 과정에서 검체 정보 표시를 잘못하여 발생한 사고였고 몇 초만 더 늦었다면 환자의 신체에 큰 문제를 일으킬 뻔한 사건이었다. 환자 및 검체 정보를 이중 삼중 확인을 하지 않았기에 발생한 오류였던 것이다.

해당 편을 보면서 아무리 내가 근무해 본 적 없는 병리과라 하더라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에 친구에게 한 번 봐달라고 부탁을 했고 그 내용을 본 본 친구들의 첫 번째 반응은 ‘말이 안 되는 것투성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실제 병리과의 업무 내용이 드라마와 무엇이 다른지 설명을 해주었다. 조직의 경우는 운반되어 병리과에 도착하면 운반하는 직원과 함께 2중 확인을 하고 장부에 검체를 받았음을 확인한다. 조직은 재채취가 거의 불가능한 검체라 운반 및 접수과정 그리고 검체 다루는 과정이 더 신중해야 하고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전산으로 ‘접수’를 한다. 병원 실습을 한 학생이라면 접수의 의미를 알 것이다. 접수는 ‘도착’이라는 의미이다. 즉 검사실에 접수가 되었다는 것은 검체가 검사실에 도착을 했다는 것으로 접수가 되었다면 이 이후에 발생하는 문제는 병리과의 소관이 된다. 하지만 드라마상에서는 이런 과정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병리과에 검체가 없었다면 검체 채취장소인 수술실도 수색해야 하고 해당 직원을 다 소집해야 하는데 의사 한 명과 상황을 모르는 병리사 한 명만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조직검체를 분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웃으며 아름답게 마무리된다. 사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직원으로서 의학 관련 드라마를 본다면 말이 안 되는 부분이 꽤 많다. 더욱이 내가 가지고 있는 '임상병리사'면허와 관련된 업무 내용이 언급되는데 "이 무슨 말 같잖은 소리를? 심지어 저렇게 규모가 큰 미국의 병원에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드라마의 특정 내용을 언급한 이유는 그 내용의 핵심이 ‘조직’의 분실이었고 그것이 환자에게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진단검사의학과에서 다루는 혈액검체의 경우는 재채혈이 잦다. 물론 드라마와 같이 분실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혈액채취 또는 채혈과정 중 발생한 혈액의 상태나 결과 이상 등의 이유 때문이다. 입원한 환자들은 컨디션이 많이 나쁜 상황이기 때문에 이러한 재채혈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조직은 재채취가 불가하다. 물론 하려면 할 수는 있겠지만 드라마 상에서는 분실한 조직을 대신한 검체 재채취를 선택하지 않고 후두 절제라는 수술을 선택하였다. 조직은 재채취가 매우 어렵다는 문제뿐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바꿀 뻔할 수도 있는 위험한 검체이다.

이렇게 병리과는 임상병리사의 업무 중에서도 더욱이 신중해야 하고 긴장해야 하는 업무를 하는 곳이다. 주로 환자로부터 채취한 조직검체 또는 세포검체를 이용하여 검사를 하고 조직검체의 경우는 검사 결과를 토대로 최종진단을 하기도 한다. 세포검체의 대표적인 예는 갑상선이고 갑상선은 얇은 바늘을 이용하여 세포를 채취한다.(Find Needle Biopsy) 이렇게 채취된 세포검체를 이용하여 만든 표본을 관찰한 뒤 수술 방향을 정하고 갑상선을 떼어내는 수술을 하게 된다면 그 떼어낸 갑상선 조직으로 최종진단을 하게 된다. 드라마의 내용처럼 수술 전의 치료 방향을 설정하기 위함도 있지만 수술실에서 수술 중에 오는 조직을 검사하여 이후의 치료방향을 정하기도 한다. 여기서 잠깐 언급한 것은 후두의 결절이지만, 병리과에서 다루는 검체는 매우 다양하다.

조직검사학은 넓은 의미로 정상 및 병적 조직의 형태 관찰을 위해 필요한 현미경적 표본제작기술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여기서 조직이라 하면 세포들의 집단으로 조직을 구성하는 세포의 형태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 그 문제의 세포들이 모여 이상한 형태의 조직을 만들게 될 것이다. 이렇게 세포가 모여 조직을 형성하는 신체의 모든 부위는 조직검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생물체를 이루는 세포, 조직 등을 살아있는 상태로 연구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그것의 미세구조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현미경이 필수적이며 현미경 경검을 위해 목적에 맞는 적절한 표본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 표본을 만드는 곳이 병리과이다. 세포가 채취되어 오기도 하고 다양한 크기의 조직 또는 기관이 통째로 병리과로 운반되기도 한다. 병리과에 접수가 되면 그때부터 조직표본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친다. 워낙 신중해야 하는 검체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표본 제작 전에 육안 검사를 하면서 사진으로 담지 못하는 내용을 말로 설명해서 녹음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세한 관찰이 끝난 조직을 변형되지 않게 고정한 뒤 여러 과정을 거쳐 4um의 얇은 절편으로 자른다. 이후 세포의 형태를 자세하게 관찰하기 위해 가장 기본인 H&E염색을 진행한다. 이후 필요에 따라 특수염색이나 면역염색 또는 분자검사 등을 추가 처방하게 된다.


진단검사의학과의 경우는 채혈실이라는 환자와의 접점이 있기도 하지만 병원을 방문한다면 기본적으로 진행하는 검사들을 하는 곳이기에 병원 업무에 관심이 있는 비 의료인들도 아는 경우가 있지만 병리과의 경우는 환자와의 직접적인 접점이 전혀 없을뿐더러 기본검사를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좀 더 비밀스럽다는 특징이 있다. 이 조용한 곳에서 많은 환자들의 최종 진단이 이루어지는데 그 진단과정 중 핵심적인 '진단을 위한 잘 만든 표본'을 제작하는 사람이 병리과 소속의 임상병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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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검사의학과에서는 '주로' 혈액학 검사실에서 세포를 관찰한다. GIEMSA염색한 혈액세포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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