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빠를 위한 세가지 기도제목>

by 뇽뇽

외줄타기에 올라서 있는 듯, 아픈 아빠를 생각할 때마다 내 마음은 늘 불안했다.

타지에 있는 내가 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기에, 아빠를 맡겨드리며 기도하였다.


구체적으로 세가지의 기도의 제목이 있었다.


첫째, 예수님을 영접해서 구원받는 것이었다.

아빠는 대형 교회 권사님 아들로서, 교회를 아예 다니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삶의 우선순위가 하나님은 아니었다. 특히, 예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했다. 예를 들어, 물 위를 걷고,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않았고, 아내의 죽음 앞에서 마치 그것을 증명한 듯 아빠는 그렇게 신앙과 먼 삶을 살았다.

아빠의 구원을 내가 판단할 수 없지만, 대화가 깊어질 때마다 마음 중심에 신앙이 담겨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평소 늘 위험 가운데 펼쳐지는 삶을 바라보며, 나는 그가 영원한 나라의 평안함을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둘째, ‘상해’로 인한 죽음이 아니기를 기도했다.

난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기 전에도, 많은 장례식에서 입관식을 경험했다. 그러나, 엄마와의 특별한 관계, 또 하나의 이유로 장례식 이후 2년 정도, 살짝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되었다.

입관식이라는 건 고인과의 마지막을 고하는 시간이다. 즉, 그 시간에 본 모습이 마지막으로 내 뇌리에 입력된다는 것이다. 평안함 가운데 주무시듯 돌아가신 엄마는, 내 예상과는 다른 모습으로 있었다. 얼굴에 덮여있는 그것을 벗긴 후에야 평안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눈을 감아도 떠도 그 마지막 모습이 잔상에 깊이 박혔었다. 그쯤 활동한 어떤 가수의 뮤직비디오는 내게 좀 힘든 시간이었다.

자주 넘어져 응급실에 다녀오는 아빠를 생각하며, 그의 마지막 모습이 평안하게 잠든 모습이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셋째, 해외에서 거주하는 중에 아빠가 돌아가시는 일이 없기를 기도했다.

사랑하는 이의 임종을 지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나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병으로 돌아가신 엄마의 마지막 순간, 숨을 거두기 전에 기적같이 혈압과 체온이 잠깐 정상으로 돌아온 시간이 있었다. 분명해진 눈의 초점으로 엄마는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사랑의 고백으로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렇게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음은 슬픔 속 큰 위로이다.

아무리 가까운 옆 나라여도, 타지에 있는 중에 아빠의 마지막 소식을 전해 듣고 싶지 않았다.

우리 부녀에겐 우리 서로가 전부 되는 존재였다. 나의 유일한 혈육인 아빠. 평생 외로웠던 아빠를 마지막 순간까지 혼자 두게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정확한 귀국 날짜를 잡아놓은 것도 아니었지만, 아빠의 마지막 순간을 내게 꼭 허락해달라고 기도하였다.


돌아보면 하나님은 작고 연약한 나의 모든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다. 사실 이 중 두 개는,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기도의 제목이기도 하다. 아빠를 생각할 때마다 최선을 다했다는, 마지막 좋은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은 것, 모두 말이다. 나를 지키고자 기도했던 연약한 기도까지도 다 듣고 응답해 주심에 감사하다.

엄마의 마지막, 아빠의 마지막을 생각할 때 슬픔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더 크신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으로 내 삶을 매 순간 채워주고 계신다.

나의 모든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주시는 그분의 사랑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그리움과 감사 가득 담긴 한 방울의 눈물이 뚝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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