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사이가 좋지 않았던 조아빠와 백엄마였지만, 외동딸인 나만큼은 각자의 방법으로 많이 사랑해 주었다. 사실, 아빠의 사랑을 깨닫고 느낀 건 아주 한참 후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의 부모에게 받은 그 사랑 덕분에,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지금 이 시간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몸과 마음 모두 말이다.
암을 발견한 지 채 2달도 되지 않아 떠나버린 엄마 앞에서 올려드린 기도처럼, 아빠의 모든 병세와 상황을 내가 맡아 책임질 수 있었다. 아니, 책임을 져야만 했다. 혹시, 이래서 미리 나를 기도로 준비시키셨던 거였을까?
해외에서 생활하던 나는, 최소 3개월에 한 번씩 한국에 들어와 아빠와의 시간을 보냈다.
아빠는 낙상 고위험군이었다. 오랜만에 방문한 아빠의 집에선 늘 쾌쾌하고 무거운 냄새가 났다. 침대 옆에 늘 끼워져있는 소변 용기, 환기하지 않는 집에서 나는 냄새들의 콜라보였다.
환기 겸 창문을 열면, 왕년의 왕(王)자 근육도 이제는 다 빠져버린 그는 추위 앞에 벌벌 떨었다. 아빠에게 이불을 덮어 준 채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상쾌하고 맑은 공기 마실 시간 또한 자기 스스로 만들 수 없게 된 아빠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몇 개월에 한 번씩 아빠를 만나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몸과 발을 씻겨드리는 거였다. 평소 의료용 의자에 앉아 머리를 감고 샤워했다. 씻는다는 것은 그에게 아주 고된 작업이었다.
아빠의 발은 매일 휠체어, 소파에 앉아 있던 탓인지 늘 퉁퉁 부어있었다. 발가락 사이사이 희끗하게 낀 때를 나 말고 누가 없애줄 수 있을까. 대야에 따뜻한 물을 담아 두 발을 담근다. 이젠 남아있지도 않은, 아빠를 미워했던 그 기억과 함께 때를 밀어 버린다. 원수같이 날 힘들게 했던 사람의 발을 주무르며 깨끗하게 씻기는 내 모습에서 다시 한번 예수님을 떠올린다. 도저히 내 스스로 나올 수 없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몸을 씻을 차례였다. 처음엔 딸 앞이라는 이유로 사각팬티를 입고 씻었지만, 번거로워 그마저도 오래 가지 않았다. 수건 한 장을 사타구니 위에 얹어두고 물을 틀었다. 물줄기를 따라 수건이 바닥으로 흘러내렸지만, 씻느라 눈을 감고 있는 아빠 옆에서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때밀이에 집중했다. 뽀송하게 광이 나는 아빠의 얼굴과 몸에 로션을 바르면 나의 할 일이 마무리된다.
자주 마려운 소변 때문에, 잠을 이룬 몇 시간 되지 않아 깨어나기 반복이었다. 새벽같이 날 깨워서는 배고프다고 밥 달라는 아빠가 귀엽기도, 밉기도 했다. 역시 자기밖에 모르는 귀여운 조아빠였다.
한국에서 잠깐의 짬을 내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육아에 많이 지쳐있었다. 나는 나보다 더 큰 아기가 된 아빠를 돌봐야 했다.
오랜만에 온 친정에 내 온 에너지를 바친 후, 너덜너덜해져 비행기에 오르곤 했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아빠에게 쏟은 사랑으로 기쁨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