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부녀의 행복한 5일>

갑작스런 귀국

by 뇽뇽

2023년 2월.

완전한 귀국을 2달 앞두고, 한국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미리 준비하러 잠깐 나왔었다.

아빠와 함께한 일주일 넘는 시간에서, 전과는 달라진 아빠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예전보다 사래 걸리는 횟수도 잦아지고, 폐 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기침 소리를 자주 듣게 되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식도로 넘어가야 하는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는 이유였던 것 같다.

우리가 함께 마주 보고 밥 먹을 때도, 기도로 넘어간 음식물이 내 얼굴에 뿜어진 적이 몇 번인지 모르겠다.

아빠의 깊은 기침 소리가 신경 쓰여 병원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1층까지 내려오는 그 많은 계단을 아빠의 다리가 감당할 수 없었다. 게다가 추운 겨울 몸이 더 경직될 수도 있기에 외출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설마 괜찮겠거니, 좋아지겠지, 생각하며 난 다시 해외 우리 집으로 향하였다.


거의 10년 동안의 해외 생활을 정리해야 했기에, 도착해서는 정들었던 주변 지인들과 여행을 다니며 함께 추억을 쌓는 시간들을 보냈다. 그날도 날 엄마같이 챙겨주셨던 분과 몇 분 더해서 멋진 산을 구경하고 있는데, 보이스톡으로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아빠 집에 매일 3시간씩 와주시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전화였다. 아무래도 기침 소리가 불안해서 119를 불러 응급실을 가셨다는 연락이었다. x-ray 결과 한쪽 폐엔 이미 물이 꽉 찼고, 반대쪽도 물이 거의 다 차서 바로 당장 물을 빼지 않으면 위독할 수 있다는, 가슴 철렁 내려앉는 이야기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아빠는 바로 입원하였고, 나는 10년의 생활을 마무리도 못 지은 채 그 즉시 귀국길에 오르게 되었다. 한국에 도착해 코로나 검사 결과 기다리며, 간단히 입원 짐을 챙겨 아빠의 상주 보호자로 병원에 들어섰다.


아빠는 기흉 치료를 진행하였다. 꽉 찬 물로 인해 쪼그라져 있었던 폐를 펴야 하기에, 당분간은 음압기를 호스에 연결한 채 생활해야 했다. 정상대로라면 조금씩이라도 폐가 부풀면서 펴져야 하는데, 아빠의 폐는 그렇지 않았다. 이런 경우라면 폐암의 가능성도 높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게 되었다.

결국 3주가 넘는 기간 동안 아빠의 폐는 펴지지 않았고, 병상에 누워만 있어 다리는 더욱 굳어만 갔다. 휠체어에 오를 힘도 없어 대소변까지 병상에서 해결해야 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침대에 걸터앉아 소변을 봤더라면, 이제는 기저귀를 차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간호조무사님들의 도움을 받았고, 나는 살짝 자리를 피해 아빠를 지켜주었다.


대학병원에서 조직검사로 암 여부를 확인해야 했기에, 당시 2차 병원에서 이전해야 했다.

그러나, 대학병원 대기가 긴 탓에 중증 상태인 아빠와 나는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혼자 몸도 가눌 수 없는 아빠를 모시고 집에 오는 것은 내게 엄청난 용기와 결단이었다. 그래도,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아빠의 바람을 지켜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짐작했기에 난 용기를 내었다.


자녀 양육의 경험이 없는 내게 적지 않은 어려움의 시간이었다.

몇 시간에 한 번씩 확인해야 하는 기저귀, 식사, 약 복용, 씻기 등의 반복을 감당해내기에 나는 너무 약하기만 했다. 하지만, 몸은 나중에라도 쉬면 다시 회복되지만, 평생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이기에 난 혼신의 힘으로 버텼다. 나중 언제 꺼내보아도 웃을 수 있도록, 매 순간을 기억하고, 추억하려 노력하였다.

무너진 발란스로 인해 옆으로 기울어지고, 뒤로 쏠리는 아빠의 몸을 붙잡고 식사를 하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다. 기도로 넘어가지 않도록, 몸을 최대한 앞으로 숙인 채 음식물을 섭취해야 했다. 요양보호사님과 2인 1조가 된 점심시간이 그나마 가장 수월한 시간이었다.

아빠는 국, 물 등 모든 액체에 연하 보조제를 섞어서 마셔야 했다. 얼마나 맛이 없었을까.


식사가 끝나면 아빠를 씻겨드려야 할 시간이다. 그날이 아빠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날이기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은 혼자 간직한 채, 그 얼굴을 광날 정도로 매일 깨끗하게 닦았다. 양치 후 헹군 물을 시원하게 내뿜을 마저 힘도 남아있지 않은 아빠였지만, 뽀얗고 반짝반짝한 조아빠의 얼굴은 그 어떤 연예인보다 내게 멋지고 사랑스러웠다.


가장 어려운 관문이 남아있었다. 아기 기저귀라도 갈아봤으면 수월했을 텐데, 간호조무사님께 배운 너머로 바로 실전에 투입되어야 했다. 환자 성인 남자와 여자의 기저귀 착용 방법을 배우고, 남자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아빠의 묵직한 대변 기저귀를 갈고 있는 동시다발적으로 나오는 소변으로 인해 처음 신고식을 해야 했다. 나에겐 당황스러움이 가득한 것이었지만, 딸 앞에서 하체를 드러내놓을 수밖에 없는 아비의 마음을 자식이 다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의지적으로 조절하지 못하는 그 스스로 당황해하며 내게 미안하다고,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아빠의 말이 내게 사무치게 다가왔다. 울며 웃으며 아빠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괜찮다고, 나 정말 괜찮다고 말하는 것밖에 그의 마음을 위로할 수 없었다.


아빠와, 그의 집에서 함께한 5일의 마지막 시간은 내 인생 가장 고단하기도 했으며, 인생 가장 행복한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 누구의 제약도 없이 아빠에게 마음껏 사랑을 고백할 수 있었고,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할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이 시간 함께했던 아빠와의 시간이 제일 많이 기억되고 추억된다. 그렇게 우리 부녀는 헤어짐의 시간을 천천히 준비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5일의 선물 같은 시간을 보낸 후, 우리 부녀는 대기하던 대학병원으로 갔다.

혼자 앉지도, 아니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까지 된 아빠를 모시고 검사하러 대학병원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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