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제 편히 쉬어도 돼>

by 뇽뇽

입원 중이던 아빠와 함께한 어느 날, 나의 결혼기념일이었다.

아빠에게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싶어, 결혼사진을 보여주고 신랑(사위)을 가리키며 물어봤다.

“아빠, 이 사람 누구야?”

“나”
“응? 이 사람이 아빠라고?”

“응”

“(나를 가르키며) 그럼 이 사람은?”

“내 마누라. 참 예쁘기도 하다”

“............”


병원에 장시간 있으면 가끔 섬망 증세를 보이는 어르신들의 얘기를 듣긴 했지만, 아빠 입에서 실제로 들었던 이 이야기는 날 너무 놀라고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 이후로 오늘이 며칠인지, 현재 대통령이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물어보는 모든 질문에 아빠는 전부 답을 맞추지 못했다. 아빠의 시간은 2013년 그 어딘가에 멈춰있는 것 같았다.


이제 3차 대학병원에서도 더 이상 방법이 없어 퇴원해야 했고, 집으로 모시기에는 바로 돌아가실 상황이었다. 선택권이 없이 요양병원으로 모실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빠의 병세로 급하게 먼저 귀국했고, 신랑은 두달 뒤 4월에 귀국 예정이었다. 회사 일로 일정을 변경할 수 없기에 우린 그저 기도했다. 아빠가 사위를 제발 기다려주기만을.

평소 아빠는 신랑에게 ‘명품 사위’라고 불렀다.

해병대 장교로 멋진, 그리고 딸의 학자금 대출금까지 갚아준 늘 고맙고 미안한 사위였다.

엄마가 돌아가신 2010년, 남자 친구였던 그가 장례식에서 해줄 수 있는 건 신발 정리뿐이었다. 그래도 이번엔 사위로서 그의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었다.


사위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로 착각하는 아빠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평소 그렇게도 좋아하는 사위를 보고 싶어 했고,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감사하게도 아빠는 사위가 귀국하는 날까지 혼신의 힘으로 견디고 기다려주었다. 보고 싶었던 사위를 만난 아빠는 이제 마음을 놓은 건지 조금은 편안해 보였다.

그동안 내가 아빠를 돌보며 힘듦을 투정할 새도 없이, 우린 아빠를 모시고 바로 요양병원에서 입원 수속을 밟게 된 것이다.


아빠는 요양병원 내 중증 환자들이 모여있는 3층 한 곳에 자리를 배정받았다.

더 이상 음식물도 삼킬 수 없고, 물도 기도로 넘어가는 탓에 경관영양(코에 연결된 튜브로 식사를 대체)을 하게 되었다. 콧줄이 답답해 손으로 뜯는 경우가 있어,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하게 벙어리 장갑을 껴놓는다는 병원 측의 설명을 들었다. 더한 경우엔 장갑 낀 손을 끈으로 묶어 놓아야 할 때도 있다는 설명까지도 말이다. 튜브를 빼면 식사를 못하기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빠의 손에 채워질 수갑 같은 그 끈. 그것으로 내 목이 졸리는 듯, 생각만 해도 견딜 수 없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파킨슨으로 굳어져 버린 아빠의 다리, 그나마 남아있던 팔의 자유마저 묶어져 버렸다.

갑자기 간지러움이 느껴져 시원하게 긁고 싶을 때, 무기력하게 묶여 있는 팔을 바라보며 견뎌야 하는 환자의 고통은 누가 알 수 있는 걸까. 대체 무엇이 맞는 걸까.


코로나로 인해 면회도 일주일에 한 번밖에 안 되었다. 키트로 음성 결과 확인 후, 아빠 곁에 갈 수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아빠의 얼굴을 씻어 줄 수 없고, 그 무엇도 내가 책임질 수 없었다. 아빠의 눈썹 정리부터 양치까지 전부 내가 해주고 싶었다.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내가 지켜주고 싶었지만, 일주일 한 번의 면회라는 우리에게 생긴 시간의 거리는 내게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내었던 우리 부녀는 그렇게 조금씩 멀어지게 되었다.

아빠가 이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닌데도, 그 빈자리가 너무나 커서, 마치 이미 이 세상에서 사라진 듯한 이상한 기분이었다.


입원 수속 시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 싸인했다. 내가 생각한 연명치료의 종류는 ‘기도삽관, 심폐소생술’ 같은 것이었다.

아빠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산소 수치가 낮아져서, 코로나 환자들도 사용한다는 코에 씌우는 간단한 호흡기를 부착해야 할 것 같다는 의사의 전화를 받고, 난 동의하였다. 점점 더 떨어지는 수치에 산소를 더 세게 넣게 되는 것을 보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보는 아빠의 모습은 점점 야위고 앙상해져 갔다. 대답도 하지 못하고, 날 바라보며 눈물 한 방울로 마음을 전달했는데, 이제 그마저도 힘들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 오늘을 넘기시기 힘들 것 같다는 병원의 연락을 받고 신랑과 부리나케 아빠에게 향했다.

나는 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눈을. 아빠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사랑을 고백하고, 천국의 소망을 이야기하며 찬송을 부르며 그 시간을 가득 채웠다.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언제 걸려올지 모르는 전화기를 붙잡고 매일 검정옷을 입으며 지냈다. 그러나 전화기는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다. 며칠 뒤, 금요일. 주말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는 의사의 전화였다. 또 다시 아빠에게 뛰어갔다. 또다시 사랑을 고백하고 돌아왔다. 우리의 주말은 또 무서울 정도로 조용히 지나갔다.

월요일 오전에 병원에 방문했다. 아빠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동공도 보이지 않는, 아니 이미 영혼이 떠나고 육체만 남아있는 것 같은 아빠의 귀에 속삭였다.


“아빠, 너무 힘들지 않아...?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 우리는 천국에서 만날거잖아.. 너무 힘들게 견디지 않아도 돼.. 아빠.. 사랑해”

3시간 후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아빠를 향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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