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움에서 시작된 벅참의 눈물>

마지막

by 뇽뇽

“너무 힘들게 애쓰지 않아도 돼. 사랑해. 아빠”

아빠는 그제야 안도한 걸까. 딸의 간절한 바람 위에 천국으로 떠났다.

전화를 받고 달려가 본 아빠의 체온은 아직 따뜻했고, 평소 주무시던 모습 그대로였다.


아빠는 평소 고려장에 관해 자주 이야기했다.

당신은 죽어도 요양원이나 시설은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 했다. 하지만 3차 대학병원에서 거의 쫓겨나다시피 된 아빠의 마지막 장소는 요양병원뿐이었다. 의료시설이 아니고서는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신랑이 귀국하기 전이었기에 그때 돌아가신다면, 나 혼자 임종과 장례를 준비해야 했을 터였다.

아빠를 요양병원에 모시게 된 것도 결국은, 나를 위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달리 방법이 없기도 했지만.


아빠를 위한 여러 기도의 제목들이 있었다. 오래 걸렸지만, 감사하게도 전부 응답을 받았다.

늘 어렵게 살아온 아빠에게 ‘돈’이라는 건 신과 같은 존재였다. 꾸준한 직업 한번 가져보지 못한 단타 인생 아빠는 늘 돈 앞에 쩔쩔매는 삶을 살아왔다. 병원에 있을 당시 아빠의 전 재산은 150만 원이었다.

“아빠, 여기에서 십일조(헌금) 할까?” 평소 같이 정색하며 얘기하기를 중단할 줄 알았다. 그런데, 병상에서 가까스로 “그거 십일조 헌금 해” 그 말이 내겐 아빠의 신앙고백으로 들렸다. 사실 기도했었다.

구원이라는 것은 남이 판단할 수도 없고, 단지 말의 고백만으로 믿을 수도 없는 것이기 말이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이라면 아빠의 구원을 저에게 보여주세요. 제게 이보다 큰 위로가 어디 있겠습니까..’ 기도 중 듣게 된 아빠의 고백이었기 때문이다. 신과 같았던 돈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아빠의 주인이 누구인지 엿볼 수 있는 힌트가 되었다.



13년 전 엄마의 장례식에서 빈소를 같이 지키었던 그가 그 시간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번에는 그를 대신해 신랑이 내 옆을 지켜주었다. 사위 덕에 해병대식으로 장례를 진행하였다.

평소 명품 사위라고 늘 입에 칭찬과 자랑을 달고 지냈는데, 장인어른의 마지막 길까지 멋지게 배웅해 드렸다.


화장터에서 납골함을 전달받으며, 고인의 유해가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아빠가 통뼈였나 보다.

내 손목에 보호대 없이는 안 되었던 시간을 그제야 이해하며, 아빠의 집에서 함께한 5일의 시간을 추억하고 웃어보았다. 이제 그 시간을 기억하는 건 나뿐이다. 너무 아름답고 꿈 같았던 시간이었다. 그 아름답고 소중함을 표현할 방법이 없어, 그 자체로 내 기억 속에 영원히 간직하려 한다.


장례식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빠에게 너무나도 미안하게도, 난 너무나 홀가분하고 산뜻한 기분을 느꼈다.

친구들에게 “우와. 너희는 평소 이렇게 가볍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지냈던 거야?” 말하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아빠의 외도와 부모님의 싸움 등으로 늘 조마조마하게 살았던 나였다.

원수 같은 아빠와의 관계, 엄마의 암, 내가 책임져야 했던 엄마의 병간호, 가장 사랑하는 엄마의 죽음, 아빠 파킨슨 발병, 나의 해외 거주, 중증 아빠의 병간호, 아빠의 죽음까지..

외동인 내가 감당해야 했던 15년, 아니 평생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나를 만나주신 십자가 은혜로 아빠를 용서하게 되고, 사랑의 영역까지 나를 부르신 그분의 세밀하신 계획 가운데 이 눈물의 시간을 기쁨으로 달려오게 되었다.

아니, 매번 기쁘지만은 않았다. 정말 셀 수 없는 수많은 눈물이 있었다. 하지만, 버거움에서 시작된 눈물이 벅참의 눈물로 변화된 내 평생의 시간이었다.

나의 모든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주신 그분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지속된다.



To. 사랑하는 나의 조아빠, 백엄마.

엄마 아빠를 기억하며 매주 한편씩 글을 쓰는 이 시간은 내게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어.

오랜만에 다시 만난 것 같은 즐거움도 느꼈고, 힘들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눈물도 흘리곤 했어. 그래도 글쓰기를 통해 상실감을 건강하게 애도하게 된 것 같아.

엄마 아빠를 통해 값지게 배운 소중한 것들이 있어. 나는 엄마 아빠를 통해 철이 들었고, 이제야 타인을 사랑하게 되는 법을 배운 것 같아. 이 마음으로 가장 사랑하고 싶은 대상은 나의 엄마랑 나의 아빠인데, 정작 내 곁에 없네.

그 마음 담아 주변 분들 돌아보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따듯하고 좋은 사람 되도록 노력할게.

엄마의 딸로, 아빠의 딸로 태어나서 정말 행복해. 다음 생은 없지만 있다해도, 난 엄마와 아빠의 딸로 태어날 거야!

내게 가장 귀하고 값진 삶을 선물해 준 엄마 아빠. 사랑해. 그리고 정말 고마워.



[그동안 연재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부족한 글에도 응원과 격려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만간, 또 다른 이야기들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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