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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하 Sep 06. 2022

나의 퇴사 일지

프롤로그. 너를 보고 나는 배운다

"엄마, 나 전교 부회장 나갈 거야!"

선언과도 같은 아들의 말에 "그래"라고 답했다.

그런데 아들,

"그거 공부 못해도 나갈 수 있어?"

내 기준에서 전교 회장, 부회장 하다못해 반장도 일단은 공부를 잘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타의 모범이 된다 라는 기준은 학교 안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공부일 텐데 내가 알기로 우리 아들은 공부를 영 못했으니 이미 기준을 벗어난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됐다.

"엄마, 학교는 공부가 전부가 아니에요, 학교는 체육도 있고 친구도 있고 즐거운 것이 많아요."


 만 스물여섯,

병원과 조리원에서 나는 아주 어린 엄마였다. 작은 키와 동안 탓에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나는 병원과 조리원에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산모라는 루머 아닌 루머에 시달렸고 저 스물여섯 살이에요 말해도 주변 산모들에 비해 너무 어린 나이였다.

 내가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아들을 낳았을 때, 나는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학사학위를 준비해야 하는 때였다. 그해 나는 내가 정말 공부를 평생 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그런 자신 없고 약한 고민들에 대한 탈출구처럼 오래 사귄 남자였던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결혼이 임신, 출산, 육아로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 못했던 건 나의 무지였다.

 그렇게 공부만 했던 학생 은 아가씨라는 호칭을 누리지 못하고 바로 엄마 가 되었다.

(엄마가 되어 겪은 일을 다른 글에서 계속하고 싶다.)

작고 어린 엄마는 작고 작은 아이를 낳았다. 내 아이는 내 뱃속에서 겨우 1.8kg밖에는 자라지 않았다. 저체중아였으나 신기하게 매우 작고 건강한 아이였다. 의사 선생님은 엄마 뱃속이 너무 작아서 그런 거라고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 너무 작고 너무 예쁘고 너무 건강한 아이, 아들과의 첫 만남은 정말 "예쁨" 그 자체였다.

아이가 필요 이상으로 불어있지 않아 신생아 특유의 빵빵함 없이 이목구비 또렷한 얼굴로 태어나 저체중으로 인큐베이터에 3일 있었던 걸 제외하면 아이는 매우 건강하게 자랐다.

 아이는 결코 빠르지 않은 발달 상태를 보이며 자랐으나 때를 넘기지는 않았다. 이유식을 하는 시기도, 젖병을 떼는 시기도, 기저귀를 떼는 시기도 남들보다 결코 빠르지 않지만 때를 넘기지는 않는 그런 신기한 아이였다.


 나는 아이를 처음 봤을 때부터, 키우는 동안에도 우리 아이가 그저 즐거운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고 바랐다. 정말 그게 다 였다. 아이가 첫 돌이 되어 돌잡이를 하며 사회자가 어떤 아이가 됐으면 좋을지를 물었을 때, 나는 사람 같은 사람, 즐거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직업군으로만 말하는 그 돌잡이가 싫었던 반골 같은 성격이 묻어난 대답이었을 수도 있었으나 정말 진심이었다. 무엇이 되는지는 난 알 수 없었고 유명하고 부유한 직업군이 아이가 되고자 하는 전부 가 되는 것은 싫었다. 그래서 나는 남들과는 다르게 키우고자 했고, 직업군=장래희망 이 아닌 장래희망은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그것을 위해 직업은 필요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아이는 즐겁게 놀아야 한다고 가르쳤고, 기관 생활이 너무 빠를 필요 없음을, 너무 앞서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됨을 가르쳤다. 가족과 함께할 시기는 지금뿐이라 늘 같이 놀고 어울렸고 다만 예의 바른 아이로 키우는데 집중했다. 그 결과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우리 아들은 또래보다 느린 아이가 되어있었다.

1학년, 키가 반에서 제일 작았다. 반에 아는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 한글을 몰랐다.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부족했다. 자기소개를 또박또박하지 못했다. 자기 물건을 잘 챙기지 못했다. 학교의 소식이나 알림을 엄마에게 정확히 전달하지 못했다.

인사를 잘했다. 처음 보는 아이든 어른이든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자기소개는 못해도 늘 열심히 했다. 발표하는 걸 좋아했다. 학습은 더디지만 주눅 들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늘 긍정적이었고 문제가 있으면 교무실에 가서 선생님께 이야기할 줄 알았다. 학교 가는 것을 좋아했다. 선생님을 좋아했다.  

객관적으로 아이가 사랑스럽다고 했다. 맑고 밝고 해맑다고 했다. 사랑스럽다고 선생님도, 학부모들도 말했다.

주관적으로 아이는 너무 답답했다.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은 것을, 일찍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을 것을, 친구를 만들어 주지 않을 것을 후회했다.


 내 아이는 내 걱정에, 내 후회에 아랑곳없이 잘 자라주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가 처음에 했던 걱정은 본인에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느낀다거나 선생님이 연락이 온다거나 하는 일도 없었고, 학교생활 전반에 내가 신경 쓸 일은 하나도 없는 아이가 됐다. '성적이 우수하지 않다'만 제외하면 아이는 건강하고 바르게 잘 자랐다. 걱정 많은 성격의 내가 어떻게 이렇게 해맑은 아이를 낳고 키운 것인지에 대해 늘 생각하게 하는 아이였다.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것에 대한 걱정을 하는 나, 못 할 것 같은 것은 절대로 시도조차 하지 않는 나, 숙제를 안 하면 학교 가는 것조차 싫어했던 나, 남에게 지적받는 것을 싫어해서 지적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던 나,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하지 않았던 나, 나 자신보다 남의 시선을 보며 살았던 나, 아주 예민하고 고민 많은 성격의 나, 안정적인 것들만 선택했던 나, 그런 내 모습을 단 한 번도 사랑하는 않았던 나. 그렇기에 내가 낳은 아이는 나와는 다르게 키우기 위해 노력했고 다행히 성향부터 달랐던지 내 아이는 정말 나와는 다른 아이로 자랐으나 막상 그렇게 자라고 보니 엄마로서 너무 걱정되는 아이가 됐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른 손이 필요 없는 아이였다. 나 스스로 뭐든지 알아서 하는, 야무진 아이였다.

 어린 시절, 아무것도 없으면서 늘 밝았던 어떤 아이, 공부도 못하고 특별할 게 없으면서도 늘 자신감 넘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아이가 늘 이상해 보였다. 쟤는 왜 저렇게,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걸까 생각했다. 그런 아이를 나는 몰래 질투하고 미워하고 부러워했다. 그런 아이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고 그건 사랑받고 자란 아이였음을 알았다. 

긍정적인 환경에서 안정된 사랑과 애착이 형성된 아이라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아이가 태어나면 꼭 저렇게 키워야지, 돈은 없어도 마음과 시간은 넉넉했던 우리 부부는 그렇게 키웠고 그렇게 아이는 자랐다.

나: 아들, 부회장이 정말 되고 싶은 거 아니야? 떨어지면 속상하지 않을까?
 아들: 엄마 나도 안될 수 있다고 생각해. 내가 인싸도 아니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나는 나의 추억을 위해 출마하는 거야. 친한 친구 몇 명은 찍어주겠지. 안 찍어 줘도 되고. 이 영상은 그냥 내 추억일 뿐이야. 당선이 꼭 될 필요 없어. 누구나 출마할 수 있는 거니까 출마할 뿐인 거야. 6학년인 떼 추억하나 쯤 있어야 되잖아.

그렇구나!!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닌 과정이 즐기고 싶은 거 구나,  그저 행동하는 그 '과정'이 좋은 거.

아들아, 너무 멋지게 잘 자라주었구나.


나는 늘 누군가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인정받아야 된다고만 생각하고 살았다. 자기만족이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행동한 적이 없었다. 튀는 행동을 한 적도 결과를 모를 일을 한 적도 없었다.  편안한 척하며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해보고 싶은걸 해본다' 내가 잘하지 못해 너에게는 꼭 알려주고 싶었던 것을 아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바라는 데로 자라고 있었는데 난 또 부족한 것만을 보며 걱정만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오늘 정말 아들에게 큰 것을 배웠다.

늘 글을 쓰고 싶었으나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수천수억 명 있으니 써볼 생각조차 안 했다. 포기와 용기 없음을 늘 같은 선상에 두고 살았던 나에게 큰 배움을 주는 너를, 그런 너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힘들었던  나의 5년을 기록해 보려한다. 덕분에 용기 없는 나를 채근해서 드디어 첫 글을 써본다. 부지런히 기록하고 적어서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보려 한다.<나의 퇴사일지>를.

그리고 조용히 너의 삶을 응원해 본다.



아들은 당선되지 않았다. 그리고 실망하지도 않았다. 추억을 하나 만들었노라고 말해주었다.

잘하고 있어. 잘할 거야. 즐겁고 건강한 사람으로 잘 자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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