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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하 Sep 06. 2022

아빠와 딸

나는 알 수 없는 관계

 딸은 엄마 껌딱지다. 8살이지만 아직도 엄마 바라기.

엄마만 있으면 아빠가 며칠씩 집을 비워도 아무렇지 않다.  아빠를 찾는 일도 거의 없다.

그런데도.


"엄마 아빠 언제 와?"

7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간, 평소에 잘 묻지도 않던 딸이 갑자기 아빠 언제 오는지 묻는다.
8살, 아빠의 귀가시간에 관심 없는 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평소보다 조금 늦었을 뿐인데 갑자기 아빠의 귀가를 묻는다.
오늘 회식인데 어떻게 알고...

"아빠 오늘 회식인데 전화 한번 해봐."
했더니 잘 안 받을 것 같은데..라고 웅얼거리더니
전화를 건다. 언제 올 건지 묻는다. 빨리오라고도 한다.
씩씩하게 전화를 끊고,
"맥주 한잔하고 이제 곧 온데."라고 통화내용도 알려 준다.
아빠가 늦으면 걱정되고 보고 싶단다, 아빠는 장난꾸러기 지만 다정하단다.
아빠가 늦으면 걱정된단다.

그렇구나...
주말부부를 꽤 오래 했던 우리 부부였다.
남편은 금요일 밤 집에 와서 일요일 저녁에 서울로 갔는데 토요일엔 늘 아이들과 밖에 나가 놀았다.
물론 나도.
혼자 나가서 아이들과 열심히 놀아주는 남편은 아니었지만 토요일(가끔은 1박 2일도)은 늘 나들이였고 나들이의 기준은 아이들이었다. 덕분에 주말부부였어도 아이들은 아빠의 부재를 크게 느끼지 못했고 아빠와의 시간과 추억이 부족하지 않게 자랐다. 결혼생활 13년 중 10년을 주말부부로 지낸 우리지만 아이들이 아빠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친구 같은 아빠인 것이다.
직장생활이 얼마나 피곤한가.
주말에 서울에서 3시간 걸리는 집까지를 반복하는 건 또 얼마나 힘들까?
나 역시 워킹맘이 었으니 주말은 쉬고만 싶었다. 어디 나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고, 노는 게 노는 게 아니란 걸 알기에 남편의 저런 모습을 늘 높게 평가한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주말에 누워 TV를 보고 싶은 쪽은 나였다. 남편은 늘 에너지 넘치게 아이들과 나가서 놀아주었다.
(다만, 늘 나도 같이해야 하는, 혼자서 놀아주는 남편은 아니었음을.  좋은 남편과 동의어는 아님.)
 문득 딸아이의 한마디에 남편의 지난날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아이들은 받은 사랑을 다 차곡차곡 쌓아 두는 게 분명하다. 그 사랑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아빠 몫은 아빠가 직접 적립하고 쌓아 두어야 하는 거였다.
먹고사는 게 너무 급해서, 조금 더 잘 먹이고 키우려고 회사일에 매달려 집에 오지 못했던 우리 시절의 아버지들.(나는 그마저도 없어서 아빠에 대한 롤 모델이 없다.)
아이들의 잠든 모습만 바라봤다면(잘 때 출근 잘 때 퇴근) 아이는 적립된 아빠의 사랑은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그건 아빠 혼자만의 사랑이었을 뿐, 그런 관계에서 그저 나이가 들었다고 혹은 그저 시간이 지금 생겼다고 갑자기 가는 여행이나 소소한 일상을 같이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 되는 것이다. 그때 함께 적립하지 못한 사랑은 그저 흘러가버린 것이다. 혼자만 적립된 사랑일 뿐이다.


운동하는 부녀

9시 30분쯤

살짝 취해 돌아온 남편의 손에 복숭아 한 박스와 초콜릿이 들려있다.

퇴근길에 뭔가 사 오는 남편이 아닌데 딸아이의 전화에 기분이 좋았나 보다.

굳이 아들과 딸에게 각각 초콜릿을 나눠주고 피곤하다며 씻으러 간단다.

어리둥절한 아들은

"엄마, 아빠 초콜릿 왜 사 왔어?" 하고 그저 제 방으로 들어갈 뿐이다.

딸은 아빠 최고를 외치며 복숭아를 씻어 달라고 한다.

아빠가 이걸 왜 사 왔을지에 대해 본인의 생각을 종알종알 이야기하며 아빠를 칭찬한다.

아.. 이래서 아빠에겐 딸이 최고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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